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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IS에 참수된 아들 놓고 정부와 국민에게 폐끼쳐 미안하다는 아버지

먼저 조선일보 칼럼을 먼저 읽어보시라. 나의 분노는 이 기사 뒤에 글로 풀어보련다.

 

<조선일보로 가서 이 칼럼 읽어보기>

 

테러 집단 IS(이슬람국가)에 두 명의 자국민이 참수당하자 온 일본이 충격에 빠졌다. 그렇지만 일본 사회의 반응은 20년 전 고베 지진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첫 번째 피해자 유카와 하루나의 아버지는 아들의 참수(斬首) 소식을 접하자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두 번째 피해자 고토 겐지의 어머니 역시 카메라 앞에서 "죄송합니다"로 말문을 열었다. 무엇이 죄송하고, 무슨 폐를 끼쳤다는 것일까.

참혹한 상황에서도 일본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타고난 민족성이 원래부터 차갑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일본 연구자들은 이걸 '메이와쿠(迷惑) 콤플렉스'로 설명한다. '메이와쿠'란 우리 말로 '민폐(民弊)'쯤으로 번역될 용어다.
일본인들의 잠재의식엔 남에게 폐(메이와쿠) 끼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유전자가 뿌리 박혀 있다. 사무라이의 '칼의 위협'이 그렇게 길들였다는 지적도 있고, 교육의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처참한 비극 앞에서도 어김없이 인내의 심리 기제(機制)가 작동한다는 점이다.

 

* 난 일본인이 그런 것을 유전자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국시대, 이후의 군국주의 시절에 잔뜩 주눅들어 착한 양이 되어 있을 뿐이다.


IS 참수극을 지켜본 유족들로선 일본 정부가 몹시도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인질 두 명이 살해당한 최악의 결과엔 아베 정부의 실책이 컸기 때문이다. 두 피해자가 인질로 잡힌 것은 작년 10월이었고, IS와의 협상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치명적인 악수(惡手)를 두었다. 중동에 가서 "IS와의 전쟁에 2억달러를 지원하겠다"며 IS를 코앞에서 도발한 것이다. 아베 발언 직후 IS는 인질 2명의 참수 계획을 밝혔다. 불필요하게 IS를 자극한 전술적 실패였다.

하지만 두 피해자의 가족은 아베 정부를 단 한 번도 탓하지 않았다. 탓하기는커녕 "인질 구출에 애쓴 정부에 감사한다"는 말을 틈날 때마다 반복했다. 유족들이 내놓은 메시지는 철저하게 절제되고 준비된 내용이었다. 마치 말할 내용을 미리 써놓고 연습까지 한 듯했다. 그래서 '작위적(作爲的)'이란 일부 지적도 나오지만 이것이 바로 한 국가의 품격이다.

 

* 이 기자는 일본판 <양들의 침묵>을 '철저하게 절제되고 준비된 국가의 품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신시대, 군부시대 우리 국민들이야말로 이처럼 철저하게 절제되고 준비된 국가의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 짭새가 점령하고 있는 캠퍼스를 주눅들어 살그머니 드나들고, 경찰이 입구에 늘어선 지하철 입구를 어깨 움츠리며 들어갔다. 경찰이 달려들어 책가방을 뒤져도 얌전히 꺼내 보여주었다. 머리칼을 자르고, 치마를 걷어올려도 참았다. 독재시대의 국민은 품격이 있는 것이고, 민주시대의 국민은 '서로 싸우고 탓하는 분파성(分派性)'이라는 그 해석은 바로 아베 신조의 신념과 다르지 않다. 또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생각 그 자체요, 일제 때의 일본 총독들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개인에게 '침묵의 인내'를 강요하는 일본식 문화가 구시대적이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무책임한 나라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유족들은 정부가 최선을 다했고 자기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개인이 국가와 일체가 되는 '공(公)의 가치관'이다.

 

* 논란이 있을 수 있다니! 논란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거기에 '있을 수 있다'니. 그것은 잘못이다. 그러니 이렇게 써야 한다. <개인에게 침묵의 인내를 강요하는 일본식 문화는 구시대적이다.> 이게 바른 글이다.

게다가 정부가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 때문에 침묵한다고? 어쩌면 이리도 독재자 시절의 조선일보 논지와 똑같단 말인가. 학생들은 시위 현장을 떠나 공부에 매진하라. 이것 아닌가. 개인이 국가와 일치되다니, 그건 히틀러의 나치와 히로히토의 제국주의에 유린된 독일, 일본처럼 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2004년 무역업체 직원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전 세계 신문을 장식한 것은 유족이 오열하는 한국발(發) 외신 사진이었다. 야당과 좌파 단체 등은 이 문제를 대(對)정부 공격의 소재로 들고 나왔다. 국회에선 여야가 격돌했고, 좌파 진영은 이라크 파병을 문제 삼으며 거리로 나왔다. 몇달 뒤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국가적 비극 앞에서 우리와 일본이 보이는 반응은 극과 극이다. 격정적인 한국과 냉정한 일본, 어느 쪽이 좋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열정과 에너지에 넘치는 한국인의 정서는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놀라운 폭발력을 발휘하곤 한다.

그러나 공통의 적(敵) 앞에서도 서로 싸우고 탓하는 분파성(分派性)은 우리의 치명적 약점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영원히 일본을 따라잡지 못한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은 여전히 무서운 나라다.

 

*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우리 국민의 공통의 적이 아니었나? 그래서 조선일보는 독재자들을 옹호하고, 국민만 그를 반대했던가. 일제는 공통의 적이 아니라서 조선일보는 우리 국민더러 징병에 나서라 외치고 국민은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군이 목숨바쳐 싸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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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보고>

조선일보는 일제 때는 <천황 폐하>에 굴종하고. 독재자 시절에는 <각하>에 굴종한 전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는 마시라. 기자의 결론은 <이런 일본이 부럽다>는 것인데, 한 마디로 같잖다.

 

내가 보기에 일본인들은 국가라는 괴물 앞에서 벌벌 떠는 양떼로 보인다. <양들의 침묵>에서 울음을 멈추고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그 양들과 같다. 도살자인 삼촌이 양들을 차례차례 도살하고 있지만 양들은 누구 하나 달아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겁에 질려 울지도 못한다. 바로 조선일보가 일제 시절 일본군에게 보인 그 모습이고, 독재자에게 보인 모습이고, 재벌에게 보인 모습 아닌가. 그래서 지금 일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거꾸로 말하는 그런 태도를 보고 절제되었느니, 성숙한 품격이니 평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양이 되기를 거부한다. 줄 지어 선 채 국가의 수탈을 기다리지 않겠다. 우리 국민의 존엄을 무시할 때 분연히 그것을 지적할 것이다. 독재자에 의해 우리 국민 5천만이 모두 순한 양이 되었다면, 나는 양을 한 마리라도 가슴에 안고 우리를 뛰쳐나가는 조디 포스터가 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득표율 70%,

유신헌법 국민투표 찬성률 73%,

이후 치러진 대선 두 번 박정희 득표율 모두 100%, 전두환 득표율 100%)

일본인들 중 거의 대다수는 일제 시대에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인 위안부 강제 모집 및 운영이 있었고, 조선인을 징집해다가 총알받이로 쓰고, 쌀과 쇠붙이를 쓸어다가 무기로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다. 731부대의 악명이나 난징대학살에 대해서도 잘 안다. 하지만 국가가 무섭게 째려보기 때문에 감히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베 신조는 지금 일제시대의 그 탈을 쓰고 일본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다. 저항하는 양심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일본인들이 다 기억상실자인 것은 아니다. 다 양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안다. 다만 두려울 뿐이다.

 

조선일보는 어쩌면 독재자에 대항하여 시위하고, 돌을 던지고, 전단지를 날리던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깝다고 여기던 그때 그 마음으로 이 글을 썼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독재자에 대항한 사람은 고문당하거나, 징역을 가거나, 강제징집을 당해 전방에 끌려가거나, 퇴학을 당하거나, 갖은 불이익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저항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일궈낸 것이다. 조선일보 식 아부와 굴종으로 민주주의가 이뤄진 게 아니다.

 

우리가 일제에 해방된 것은, 일본이 자비심을 베풀어서가 아니라 원자폭탄을 맞아 할 수 없이 물러간 때문이다. 이 땅에서 독재자가 사라진 것은, 그 독재자를 하와이로 쫓아내고, 총을 쏘아 죽이고, 체포하여 형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분파성이 아니라 정의를 향한 열정이다. 굴종이 몸에 배인 종의 눈에는 그것이 분파성으로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피끓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보인다.

 

지금도 30% 미만 지지를 받는 불통 정권의 대변인처럼 구는 조선일보와 종편조선이 이래는 안된다. 조선일보도 이제는 굴종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되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 당신들이 말하는 그 국민의 품격을 실컷 보았잖은가. 지금 그 품격을 다시 갖자고 말하는 것인가. 최루탄이 터지고, 눈알을 바삐 굴려대는 짭새들이 캠퍼스를 점령하고, 전단지가 눈발처럼 날리던 그곳에서 얌전히 도서관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여 판검사되고, 고위공무원된 그 사람들처럼 살란 말인가.

 

"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 일본인들의 속마음이 정녕 안보인단 말인가. 아마도 IS에 처형된 두 일본인의 가족들은 집에 가서 창문 닫고 커튼 내리고 목을 놓아 울었을 것이다. 불쌍하지 아니한가. 난, 우리 국민에게 이런 정서, 이런 품격을 요구하고 싶지 않다.

 

<'예의바른 일본인' 주제로 이야기하다>

<너는 왜 참지 못하느냐고 묻는다면...>

<너는 왜 불의에 맞서 싸우지 않았느냐?>

<사실이라고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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