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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전시재상유성룡의 임진왜란 7년기록

내가 유성룡을 류성룡으로 적지 않는 이유

<소설 징비록> 재판을 찍으면서 출판사 사장이 전체바꾸기를 해서 류성룡으로 바꿔볼까 생각도 했다는데, 작가한테 무슨 뜻이 있겠지 하고 그만두었다 한다. 믿어주니 고맙다. 그러니 그 뜻을 밝혀야겠다.

 

요즘 징비록이 드라마와 번역, 소설로 각기 뜨면서 유성룡의 인명 표기로 혼란을 겪는 분들이 많다.

알아보니 언론이나 출판물에서 유성룡과 류성룡이 혼용되고 있는 중이다.

유성룡의 후손들은 류성룡으로 표기해주기를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류가 아닌 유로 성명을 표기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호적까지 정리하려면 아마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柳씨인 유관순도 아직 류보다는 유로 적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나도 내 성을 <이>에서 <리>로 바꾸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다. 하늘 가신 아버지 허락없이 내 마음대로 못바꾸겠다.

 

- 유성룡 공식 영정

 

내가 유성룡을 고집하는 이유는, 역사인물 성명을마음대로 표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유성룡으로 알고 역사를 공부해온 세대가 있다. 앞으로 오랜 세월이 흘러 류성룡으로 통일된다면 그때는 류성룡을 바꾸면 된다.

 

나는 역사소설을 쓰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 인명을 표기할 때 매우 애를 먹는다.

<소설 징비록>에는 수많은 중국인, 일본인 인명이 나온다. 예를 들어 나는 풍신수길이라고 적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적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왜란의 괴수를 풍신수길로 알았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아는 사람은 통사들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인명은 우리 발음으로 읽고, 다만 독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괄호 안에 일본 발음을 넣어주었다.

이여송의 경우도 중국 발음은 리루쑹이지만 나는 이여송이라고 적었다. 중국의 경우 과거 역사 인물은 우리 한자 발음대로 적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공자를 콩츠라고 하는 사람은 도올 김용옥밖에 없다.

 

중국인의 경우 신해혁명을 기점으로 그 이전은 우리 한자 발음으로 적어주고, 이후는 중국 발음으로 적어주는 게 외래어표기원칙이지만 아직도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장쯔이는 되지만 주윤발은 여전히 주윤발이고, 성룡은 아직 청룽이라고 불리지 못한다.

 

일본인의 경우 우리한테 알려진 인물들이라곤 임진왜란 때 장수들 밖에 없다보니 과거와 현대를 불문하고 현대 일본 발음으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일제 식민지로 산 덕분에 이런 비극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징비록이 저술된 시점에 맞춰 일본의 지명과 인명을 우리 한자 발음으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내가 유성룡을 굳이 류성룡으로 바꾸지 않는 것은 많은 독자들의 기억 속에 그는 아직 <유성룡>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명 중 덩샤오핑보다는 등소평이, 마오쩌뚱보다는 모택동이 더 친숙한 것과 마찬가지다. 시진핑처럼 처음부터 시진핑이었으면 그를 습근평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이게 우리나라 어문 관습의 현실이요, 한계요, 특징이다.

 

그런즉 독자들께서는 내가 <유성룡>으로 표기하는 의미를 이해해주기 바란다. 어쩌면 후손들이 내 이름을 리재운으로 표기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이재운으로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