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시대에 소설가로 살기가 참으로 어렵다.
20년 전만 해도 소설이 떠야 드라마가 나왔는데, 요즘은 거꾸로 드라마가 떠야 독자들이 실눈을 살그머니 뜨고 소설을 찾기 때문이다.
주로 남들이 건드리지 않은 소재를 다뤄온 나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정도전의 경우도 드라마가 나오기 6년 전에 소설을 발표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드라마가 나온 뒤 정도전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안들어 드라마를 보다 말다 하다가 이인임, 이성계, 이방원 역을 맡은 이들의 연기가 압도하는 때부터 그나마도 그만뒀다.
전에 내 원작 드라마 중 하나는 한 회만 보고 집어치운 적도 있으니 소설과 드라마가 같이 가기는 사실 쉽지 않다.
이번에 드라마 징비록을 보면서 후배작가 정형수의 스토리텔링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흡족하다. 15년 전에 쓴 내 소설 징비록과 플롯이 유사한 면도 있고, 무엇보다 드라마에서 표현하기 힘든 내면의 세계까지 깊이 묘사를 하는 걸 보고는 기쁘기도 했다. 드라마 전체를 보면 대만족이다. 피디 연출력도 좋고, 카메라도 아주 좋다. 부산성 전투 장면의 경우 소설로는 도저히 안되는 부분이니 어쩔 수없다.
다만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둘 다 주인공인 유성룡 관련이다.
사람들은 흔히 드라마 주인공이 되면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데, 그래서 내 소설 징비록을 읽은 이 중 유성룡이 영웅처럼 그려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정확히 말해 유성룡은 영웅이 아니다. 그 역시 실패한 관료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잘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하면서 반성을 하고 대책을 세워보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그의 책은 조선조 내내 철저히 외면받을만큼 무가치하다고 대접받았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갑자기 유성룡이 영웅이 되고, 징비록이 명저가 될 순 없다.
아쉬운 점, 두 가지 말한다.
일단 유성룡 역의 배우가 마음에 안든다. 종결어미를 너무 질질 끈다. "전하!" "아니옵니다." 등을 말할 때 끝 자의 발음이 너무 길다. 비단뱀이 지나가는 것처럼 한이 없다. "전하~~~~~~.", "옵니다~~~~.", 이런 느낌이다. 리얼리티가 확 떨어진다. 잘 나가다가 장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드라마 작가나 피디가 빠져든 함정일 수도 있겠는데, 유성룡이 지나치게 제3자처럼 군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1인칭 소설이 아니다. 유성룡이 관찰자가 돼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는 늘 관찰자다.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처럼 군다.
물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그는 전시총사령관 도체찰사가 아니다. 나도 내 소설 징비록에 '전시재상 유성룡'이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그건 일본 측에서 붙여준 별칭이고 실제는 그게 아니다. 좌의정도 조금 있으면 떨어진다. 후퇴 중에 전쟁책임을 지고 삭탈관직된다. 그런 뒤 평양성수복작전 때 관서도체찰사가 되고, 정유재란 때 도체찰사가 되었다가 또 삭탈관직된다. 도원수도 아니고, 도체찰사는 행정지원 책임자일 뿐이다. 그러기로 말하면 전쟁 안난다고 핏대 세운 김성일도 영남도체찰사를 지냈다.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유성룡이 그야말로 개인적으로 굉장한 노력을 하였기에 일본 측에서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쉽다. 유성룡은 영웅이 아니다. 전쟁 책임을 병조판서 홍여순에게 뒤집어씌운다면, 병조판서의 상관인 좌의정 유성룡도 책임을 피해갈 수가 없다.
시청률을 따지다보면 역사의 진실이 아닌 거짓말을 더러 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두 가지는 개선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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