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파란태양*

메르스를 맞는 모범 환자와 모범 병원 이야기 / 중앙일보

접촉자 ‘제로’… 서울성모·이대목동, 응급실 밖에서 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2015.06.11 02:17 / 수정 2015.06.11 02:45

격리진료 유도한 서울성모, 105번 환자 마스크 쓰고 방문
입구에서 문진 후 격리실로 … 강남의 대형병원 확산 차단
격리하고 문진한 이대목동,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 온다”
음압격리실로 옮긴 뒤 문진 … 병원 내 환자와 동선 안 겹쳐

“강남 한복판 서울성모병원에서도 첫 메르스 환자 발생!” 지난 9일 오후 7시 통신사가 이런 내용의 긴급속보를 내보내자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이 소식이 순식간에 전파됐다. 방송들도 TV 자막으로 이 소식을 알렸고, 인터넷에선 ‘서울성모병원’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번진 메르스 확진환자에 의해 서울아산병원·여의도성모병원에 이어 서울성모병원도 뚫린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10일 오전 상황은 반전됐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이날 서울성모병원에 대해 ‘위험 접촉 대상자 0명’이라고 발표했다. 105번 환자(63)가 삼성서울병원에서 14번 환자(35)에게 감염돼 8일 서울성모병원을 찾았으나 접촉자는 없다는 게 발표 내용이었다. 전국의 대형 병원 응급실이 메르스 감염환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가운데 확진환자는 있으나 접촉자는 없는 상황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선 그는 병원에 방문해 격리되기 전까지 병원 내부에는 한 발짝도 들이지 않았다. 105번 환자는 서울 강남에 사는 조모씨. 그가 마스크를 쓰고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 도착한 건 8일 오후 2시20분쯤이다. 잔기침을 반복했고 열은 38도에 가까웠다. 본관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의 발길을 잡은 건 본관 앞 안내문이었다. ‘메르스 의심 환자는 외래를 직접 방문하지 말고 임시 진료소로 오세요.’ 안내문엔 지도도 있었다. 조씨는 일단 건물 외부를 돌아 임시진료소 방향으로 갔다.

 임시진료소 근처에는 응급실이 있었지만 조씨는 응급실로 들어가지 못했다. 응급실 입구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병원 직원이 응급실 내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메르스 의심 선별표’를 작성받고 있었다. 조씨는 근처에 비치된 손 세정제를 사용한 뒤 직원으로부터 선별표를 받았다. 그런 다음 선별표에 발열 증상이 있으며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했다고 적었다. 병원 직원은 선별표를 확인한 뒤 조씨를 컨테이너 박스 두 개를 붙여 만든 임시진료소로 안내했다.

 임시진료소도 감염에 철저히 대비돼 있었다. 여기엔 헤퍼필터(무균실 등에 사용하는 필터)가 설치돼 있었다. 진료소 안 직원은 고글과 보호복, N95 마스크, 수술용 고무장갑 등을 착용하고 그를 맞았다.

 “객담(가래)을 뱉어보세요.”

 조씨는 헛기침을 몇 번 했는데도 잘되지 않았다. 임시 진료소 직원은 그에게 “입을 벌리세요”라고 말한 뒤 면봉을 목구멍 안에 넣었다. 조씨는 수차례 기침을 뱉어냈다. 임시진료소 직원은 “환자가 기침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대비를 허술하게 하면 감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체 채취 후에도 조씨는 철저히 격리됐다. 곧장 응급실 입구 오른편에 마련된 음압병실(외부보다 기압이 낮아 바이러스가 외부로 나가지 않는 병실)로 격리됐다. 음압병실은 일반 응급실 환자가 출입하는 병실과는 별도로 마련돼 있다.

 병원 측은 자체적으로 메르스 진단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양성판정이 나왔다. 이어 9일 오후 보건소로부터 최종 확진판정을 받은 뒤 조씨는 국가지정격리 병원으로 전원 조치됐다. 승기배 서울성모병원장은 “환자 스스로 마스크를 끼고 손 세정제를 이용하면서 피해를 안 주려 했으며 우리도 원내 감염 차단을 위해 안내문을 곳곳에 비치하고 검사시설 등을 외부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메르스가 서울 강남 한복판 대형병원으로 확산되는 걸 막은 비결은 조씨와 같은 확진환자가 일반인 환자와 섞이지 않도록 동선을 구별한 데 있었다.

 98번 환자를 맞은 이대목동병원도 같은 방식으로 폐렴으로 진단됐던 메르스 환자를 조기에 격리하는 데 성공했다. 98번 환자는 서울 양천구 메디힐병원에서 입원 치료 받던 중 상태가 악화되자 8일 오전 11시55분 이대목동병원으로 후송됐다. 이 과정에서 병원의 응급실 코디네이터는 메디힐병원으로부터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코디네이터는 즉시 병원 감염내과 의사에게 알렸다.

 담당 의료진은 마스크와 수술용 장갑 등을 갖춘 뒤 98번 환자를 맞았다. 98번 환자는 즉시 응급실 내 음압격리병실로 이송됐으며 그곳에서 문진 및 검체 채취가 이뤄졌다. 최희정 이대목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 병원은 원인불명 폐렴환자가 내원할 경우 역학관계에 상관없이 우선 격리 조치를 취하도록 준비하고 있었다”며 “격리 후 문진을 통해 삼성서울병원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신속히 검사해 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메르스대책위원장은 “환자들은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병원으로 오기 때문에 병원은 곧 최전선”이라며 “메르스 사태가 한동안 확산되면서 이제 병원들이 메르스 확산 경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확산을 막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