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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사도세자, 나는 그들의 비밀을

사도세자, 진실은 아직 뒤주에 갇혀 있다

<영화 사도>를 본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거짓과 사기는 늘 달콤하다. 이에 비해 진실은 얼마나 쓸쓸하고 재미 없는가.

진실이란, 세월호와 함께 침몰되어 깊은 바닷속에 묻히고, 천안함의 찢어진 잔해 속 어딘가에 산산이 부서지듯 바람을 타고 흩어지거나 바위가 모래되듯 그렇게 갈려나간다.


나는 <소설 사도세자>를 썼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박제된 역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아직도 거친 숨을 쉬고 있는 듯한 직계 조상들의 역사다. 그래서 진실을 파보려고 더 노력했다. 내 소설이 반드시 진실이거나 전체가 진실인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내 능력의 한계 내에서 진실을 뼈대로 삼았다.


이런 내 눈으로 바라보니 <영화 사도>는 감히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사도세자 이선의 부인이자 정조 이산의 어머니이면서, 실은 영조 이금을 왕으로 만든 노론세력의 대표 집안인 홍씨 일가의 독점이익을 대리하는 혜경궁 홍씨가 임의로 쓴 책 <한중록>을 텍스트로 삼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한중록>은 태생적으로 진실을 적을 수 없는 책이다. 박정희가 쓴 유신의 역사, 이완용이 쓴 조선역사를 읽고 싶다면 한중록을 믿어도 된다.


* 혜경궁 홍씨라고 할 때의 씨는 요즘 쓰는 일반인에 대한 호칭이 아니라 사대부 이상 부인에 대한 경칭이다. 그 아래에는 성이라 하여 김성, 최성이라고 불렀고, 평민 여성은 황소사, 박소사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성, 소사가 사라지고 씨로 통일되어 가치가 낮아졌지만 조선시대에는 매우 높은 경칭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사도는 두 번 죽는다. 

사도가 죽을 때 영조가 죽인 형 경종 역시 두 번 죽는다.

희빈 장씨는 거듭 죽는다.

이 뿌리깊은 권력 게임을 <영화 사도>는 외면했다. 


당시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권력의 주류는 <인현왕후전>, <사씨남정기>, <천의소감>, <한중록>, <숙종실록 수정본>, <경종실록 수정본>, <단암만록> 같은 거짓 책을 지어내 민간에 유포시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당시 피비린내나는 당쟁의 원인 제공자였던 핵심 인물 송시열을 송자(宋子)라는 과분한 칭호로 추앙했다.


  <사씨남정기> ; 인현왕후를 옹호하는 정치 소설이다. 즉 한림학사로 나오는 유연수는 숙종이다. 성품이 곱고 후덕한 아내지만 유연수에게 쫓겨난다는 사씨는 인현왕후다. 또 유연수의 첩으로 교활하고 간악하다는 교씨는 희빈 장옥정이다. 장주는 교씨가 낳은 아들인데 살해당한다. 두 부인은 사씨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이다. 말할 것도 없이 영빈 김씨다.

사씨남정기는 정철의 가사에 이은, 수준 낮은 정치 문학이다. 김춘택이라는 당인은 한글로 쓰인 이 소설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궁중으로 들여보내 궁인들이 읽게 하였다. 하지만 숙종은 이 소설의 저자 김만중을 죽을 때까지 남해로 유배시켰다.

<인현왕후전> ; 김만중 쪽에서 누군가 지어 퍼뜨렸다영빈 김씨가 김만중 부인 이씨와 인척 관계다. 이 소설로 장희빈은 희대의 악녀가 되었다.

<천의소감> ; 경종이 독살된 뒤 영조가 즉위하자 그간에 벌어전 노론과 소론의 분쟁을 정리한 책. 당연히 영조를 옹립한 노론 중심의 논리를 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자서전쯤 되는 승자의 기록이다.

<한중록> ; 친정인 홍씨 집안을 걱정하여 쓴 글이 대부분이다. 당색을 확실히 드러냈다.

<숙종실록 수정본> ; 숙종실록이 훗날 사도세자를 죽이는 노론에 의해 쓰여지자 뒤에 일시 권력을 잡은 소론이 재빨리 자신들의 주장을 반영하여 보궐정오한 책이다.

<경종실록 수정본> ; 역시 노론과 소론의 권력 교체기에 실록이 편찬되고, 따라서 편향된 시각이 반영된 결과 나중에 수정본이 나왔다.

<단암만록> ; 노론 영수 송시열의 제자이자 소론 공격 선봉장이던 민진원이 숙종 말에서 경종, 영조 초기까지 내용을 적은 책이다. 당연히 극렬한 노론 관점이다.


'아들을 죽인 아버지' 영조를 비유하자면, 그 자신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했다지만, 해방 이후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해 겨레의 살을 찢고 피를 뽑아낸 친일세력과 손을 잡은 이승만과 똑같다. 이승만은 해방된 조국에서 척결돼야 마땅한 친일세력을 도리어 보호하고, 정권의 전면에 배치하여 이 나라를 제2의 친일식민지로 만들었다. 일본인이 아닌, 일본인으로부터 교육되고 훈련되고, 겨레를 배반하는 것이 곧 출세의 길이라고 믿던 이들 친일파들이 정계, 법조계, 군, 경찰, 학계, 예술계, 산업계, 금융계 등 요소에 포진되어 이 나라를 지배한 지 70년이 되었다. 


<영화 사도>는 거짓말하고 있다. 이승만을 국부로 모시자는 세력들의 사고방식과 같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이 비록 천만관객을 모았다지만 대한민국 현대사가 마치 흥남철수, 독일광부간호사파견, 월남전, 남북이산가족찾기 등 4가지 밖에 없는 것으로 거짓말한 것과 같다. 주인공이 죽기까지 4.19혁명, 5.16쿠데타, 10월유신, 10.26사태, 12.12쿠데타, 5.18광주항쟁, 1997년 외환위기 등이 폭풍처럼 질주했건만 그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사나운 친일정권이 할퀴고 간 아픈 상처가 거짓 역사로 덮인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영화는 단지 오락물에 지나지 않으며, 일제의 선전영화나 다름없다. 진실을 추구하는 목소리는 멀리 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