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아침 7시(내게는 한밤중)에 전화기가 울어댔다.
내가 자주 마실가는 화실의 불모다. 용인 보문정사에 인도 쿠시나가라의 열반사(Mahaparinivirwana) 주지 가네슈와르 큰스님이 오셨는데, 오늘 아침 아니면 친견이 어렵다고 어서 일어나란다. 붓다처럼 숨쉬고 붓다처럼 생각하고 붓다처럼 보고 붓다처럼 닦자고 결심했으니 아니갈 수 없다.
* 쿠시나가라 ; 쿠시나가라는 붓다께서 열반에 드신 땅이다. 붓다는 고향 룸비니로 가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인생을 마칠 생각이셨다는데 가는 길에 말라족이 사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금세공사 춘다가 공양한 버섯죽을 드시고 식중독에 걸려, 노환과 장기간의 여행으로 기력이 쇠해진 때문에 이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거기서 붓다는 "진리를 등불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셨다. 나는 이 원칙을 굳게 지키며 살고자 노력한다.
- 라마바르탑. 이곳에서 80세에 열반하신 붓다를 다비했다. 아난, 가섭, 사리불이 여기에 있었다.
* 열반사 ; 붓다 입멸 후 다비를 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리가 나왔다. 이에 사리를 8등분하여 인도 전역에 나누어 탑을 세우게 했다. 이때 쿠시나가라 현지에도 1/8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 이후 인도는 힌두교가 장악하여 불교가 쇠퇴하자 대부분의 진신사리는 미얀마와 중국으로 넘어갔다. 쿠시나가라의 진신사리도 마찬가지로 13세기에 이슬람교도의 침공을 받자 불교도들이 진신사리와 열반상을 파묻었다. 그때 전각은 모두 불타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뒤 세월이 흘러, 1876년 인도인 10만 명을 불교도로 개종시킨 찬드라마니 스님에 의해 발굴, 1956년에 재건되었다. 이때 5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붓다의 열반상이 발견되었다. 이 스님의 제자가 가네슈와르 스님이다. 현재 쿠시나가라의 유적지인 열반당은 인도국가와 열반사가 공동 소유하고 있다.
- 5세기 작품 붓다의 열반상. 그동안 묻혀져 있다가 찬드라마니 스님이 발굴해냈다. 이 열반상은 굽타왕조(서기전 280년-서기전 550년) 시절의 승려 하리발라가 조성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길이 6.1미터, 재료는 붉은 사암이다. 황금 가사를 벗기면 붓다의 맨몸이 드러난다. 때에 따라 가사를 바꿔 드린다.
- 오른쪽이 열반사 열반상의 붓다의 발. 왼쪽은 가네슈와르 큰스님이 내게 주신 기념품.
붓다 열반 후 제자 가섭이 늦게 찾아왔다. 이때 제자들은 다비 준비를 마치고 큰 제자인 가섭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가섭은 장작더미를 헤치고 붓다의 발을 찾아 밖으로 드러낸 뒤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그뒤 불가에서는 스승의 발 앞에 절하는 풍습이 생겼다.
* 가네슈와르 ; 현재 인도 쿠시나가라 열반사 주지다. 인도국가유적지인 열반당의 소유권을 인도국가와 공동으로 갖고 있다. 인도불교최고지도자 모임인 Mahabodhi Society의 5인 중 한 명이다. 열반당 소유권 문제 때문에 미얀마에서 인도로 국적을 변경했다. 가네슈와르 스님은 인도 불교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공격을 받을 때 붓다의 진신사리가 미얀마로 많이 이동했는데, 오늘날 불교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한국에 붓다의 진신사리 대탑을 세우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쿠시나가라 열반당에 있던 붓다의 진신사리 일부를 가져와 경기도 용인의 OO정사와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맨 아래 사진이 그 사리다.)
- 가네슈와르 큰스님. 쿠시나가라에 묻혀 있던 진신사리 일부를 한국으로 가져오셨다. 큰스님은 우리들에게 "(진신사리를 봉안할) 황금대탑이 세워지도록 꼭 도와주세요."라고 두 번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는 출처가 가장 확실한 붓다의 진신사리는 가네슈와르 큰스님이 가져오신 아래 사진의 사리 밖에 없다. (아래) 친견 후 기념사진.
* 붓다 진신사리 ; 붓다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을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적멸보궁은 붓다가 화엄경을 설했던 장소다. 우리나라에 5대 적멸보궁이 있는데, 자장율사가 중국 종남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 진신사리 100과를 얻어 국내 여러 사찰에 봉안했는데, 이것이 5대 적멸보궁의 시초다. 그래서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두지 않는다. 영취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에 5대 적멸보궁이 있다. 그밖에도 붓다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는 사찰은 더 있다. 특히 미얀마, 중국 등에서 모셔왔다고 주장하는 사리들이 꽤 있다. 하지만 붓다가 열반하신 쿠시나가라 현지에 모신 붓다 진신사리가 한국에 직접 온 경우는 가네슈와르 큰스님이 가져오신 진신사리가 유일하다. 즉 족보가 확실한 붓다 진신사리는 현재 용인의 보문정사만이 모시고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불모 두 분과 함께 용인 보문정사로 갔다.
쿠시나가라 열반사 주지인 가네슈와르 큰스님이 보문정사 주지 덕산 스님과 아침 공양을 드신 뒤 미얀마에서 온 분들 접견하고 계셨다.
삼배를 드리니 우리들에게 기념품을 주셨다. 불모에게는 금박지를 몇 뭉치 주시고, 내게는 부처님 발바닥이 그려진 기념품, 염주, 팔찌를 주셨다.
통역이 없어 스님을 모신 가운데 덕산 스님과 황금대탑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네슈와르 큰스님께서 다른 곳도 아닌 쿠시나가라 열반당에 모셨던 진신사리 일부를 가져와 황금대탑을 세우기로 했다는 말씀이었다. 덕산 스님은 인도에서 온 사리 말고도 미얀마를 거쳐 온 여러 가지 불사리를 보여주셨다. 웬 사리가 이렇게 많으냐니 사리가 스스로 분열한다고 한다. 불교 용어로는 분신이다. 사리를 붓다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말이다.
붓다의 진신사리가 분열하는 현상은 종종 있는 일이다. 분신, 증과 등으로 불린다. 현등사에서 모셨던 붓다의 진신사리 2과가 도난당한 적이 있는데, 2004년 호암미술관에서 발견되어 소송이 벌어졌다. 2006년 삼성이 불교중앙박물관에 반환하였다. 그런데 2014년에 5과로 증과했다는 것이다.
가네슈와르 스님은 이후 통역을 통해 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진신사리는 분신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조선 태종 때 기록에도 분신 사리 이야기가 나온다. 태종이 김계란(金桂蘭)과 노희봉(盧希鳳)에게 흥천사 사리전에 가서 분산 과정을 직접 살피라고 한 것이다. 이에 두 사람은 사근(思近)ㆍ설오(雪悟) 등 승려 100명을 모아 정근법석을 열어 분신을 기원했는데 실제로 분신이 일어났다. 이에 사리 하나를 보합에 담아 태종에게 바쳤는데, 태종이 뚜껑을 열자 하얗게 부서진 잿가루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원문 보기>
덕산 스님께서 최근에 찍은 보문정사 진신사리 사진을 보여주셨다. 인도 쿠시나가라에서 온 사리와 미얀마에서 온 사리다. 작년 5월에 친견했는데 그때 본 사리는 여기에 있다. <붓다의 진신 사리>
오늘 아침 덕산 스님께서 메신저로 보내오셨다.
붓다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미얀마에 보존되어 있는데, 저절로 움직이는 동영상을 보았다. 사진은 전에 보았는데,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동영상은 처음 보았다. 이 파일도 보내주시면 함께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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