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256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29세에 출가하시었다.
35세에 아나파티(수식관) 사티를 하시다가 연기와 실상을 깨우쳐 우주의 실상이자 궁극의 지혜인 다르마를 보시고
80세까지 제자를 가르치고 중생을 제도하시다 '오신 곳의 오신 곳' 즉 다시 오지 않을 곳으로 돌아가셨다.
붓다가 열반하시자 수제자 마하가섭이 주요 제자 중 아라한과를 얻은 500명을 따로 소집했다. 이들은 아사세왕의 보시를 받으며 7개월간에 걸쳐 시자 아난이 본대로 들은대로 말하는 경을 듣고, 이발사 우팔리가 본대로 들은대로 말하는 율을 들었다. 500 아라한들은 "나는 이와같이 들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붓다의 한 말씀 한 말씀을 자신들이 붓다로부터 배우고 깨우친 다르마의 거울에 비쳐가며 이 위대한 말씀을 검증하여 마침내 초기경전을 완성시킨다.
이때 참석한 500명의 장로를 가리켜 오늘날 500나한이라고 하여 큰절마다 나한전을 두어 따로 모시고 있다. 아라한, 즉 궁극의 지혜를 깨달았으나 인연의 사슬을 아직 끊지 않은 분들이다.
이때 마하 가섭이 이끄는 500나한은 만장일치로 결집된 붓다의 경과 율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토의한 끝에 자신들의 입에 새기기로 했다. 즉 구비(口碑)다.
당시 인도인들은 팔리어를 쓰고 있었는데 이 말을 적을 수 있는 문자는 있었다. 하지만 붓다가 남기신 신성한 경과 율을 그 문자로 새길 수는 없었다. 문자는 천박한 것이고, 깨닫지 않은 이들이 누구나 상스럽게 쓸 수 있는 벽돌이나 망치나 도끼 같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하 가섭은 이 위대한 경을 '천박한' 문자의 그릇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직 계정혜를 지키는 아라한과 승가의 깨끗한 입으로만 염송할 수 있다 하여 구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초기 경전은 아라한들이 일제히 합송하는 것으로 경을 유지해나가기로 했다.
오늘날 절에서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이나 천수경 등을 여러 승려들이 합송하는 것도 이런 이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아라한이나 승가의 입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던 이 성스러운 말씀은 그뒤 200년이 지나 아소카왕이 출현했을 때 마침내 팔리 문자로 기록되어 오늘에 이른다. 글로 적을 때까지 200년간 붓다의 제자들은 모든 경전을 합송하는 것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지켜온 것이다.(지금도 미얀마에서는 이 전통에 따라 팔리어 대장경 전체를 외우는 승려들이 여섯 분 정도가 있다 한다.)
- 미얀마 Kuthodaw 사원에 보존 중인 팔리어대장경 일부.
그런 뒤 팔리어는 한자한문 등 여러 가지 문자와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 있다.
그뒤에도 붓다의 말씀을 입으로 새기고, 글로 새기는 걸 넘어 돌에 새기고 비단에 새기고 종이에 새기면서 불상이 나오고 불화가 나오고 찬불가와 범패 등이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붓다의 말씀은 2560년이라는 기나 긴 세월에도 변함없이 우리의 귀에 눈에 또렷이 드러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이수자 월암 신진환>
<마하가섭이 부처님 말씀을 문자로 기록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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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열반하신 뒤, 수제자 마하가섭은 칠엽굴에서 500명 아라한과 더불어 경전을 처음으로 결집했다고 한다. 이때 그는 문자를 쓰지 않고 일부러 음성으로 기록하는 합송(saṃgītī)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거룩한 말씀을 어찌 문자에 담느냐는 의문이 있었던 듯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글은 말보다 더 사납고 거칠고 본능적이며 심지어 동물적인 것같다. 우리말 사전 10여권을 편찬하면서 늘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다. 말이라면 가려쓰고 골라쓰고 예를 생각할 텐데 글은 그냥 하품 하듯이 비명 지르듯이 그냥 쏟아져나오는 것같다. 그래서 말하기 글쓰기 생각하기를 배워야 하는데 우리 교과과정에서는 다 빠졌다. 유신 때부터 '시키는대로 하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글과 말을 질긴 힘줄처럼 경직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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