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씨 그림 논란 이후 우리 사회가 판단력을 잃고 있는 것같다.
같은 그림을 비교해가며 조영남 씨보다 A씨가 더 잘 그렸다느니, 10만원 20만원 주면서도 찌질하게 원천공제했다느니, 이런 비정상적인 무식한 평론이 종편에서 쏟아져나온다. 종편이 아무리 난장판이라지만 세금원천징수까지 비난하는 건 차마 봐줄 수가 없다. 1000원 짜리 상품에도 세금이 붙는데 그럼 수천만원 가는 거래에 세금을 안매긴단 말인가.
모사는 아무리 잘 해도 모사일 뿐이다.
이중섭 그림을 모사하라면 이중섭보다 더 잘 그릴 사람이 수만 명이 있을 것이다. 피카소 그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면 천막을 뜯어 청바지를 만들 수 있고, 애플1 같은 컴퓨터쯤 더 먼저 조립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카카오톡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페이스북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건 조영남이 화투를 소재로 이런 발상을 기획으로 옮기고 있을 때 그 모사 작가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A 작가가 조영남이 처음 그린 작품보다 더 잘 그렸다고 해서 그가 훌륭한 화가라느니 말하는 건 억지다. 남의 그림을 복제하는 그림을 그려 놓고 "봐라, 내가 더 잘 그린다." 이런 망발이 어디 있는가.
남이 한 일은 쉬워 보이겠지만, 그 첫 발상은 위대한 것이다. 그 좋은 능력으로 왜 창의적인 발상은 못하고 남의 그림이나 베끼고 사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조영남 사건을 보면서 그가 너무 잘 나가 기분 나쁘다, 늙은이가 여자들 잘 꼬셔서 기분 나쁘다, 딴따라 주제에 너무 비싼 집에 살아 기분 나쁘다, 화가도 아닌 것이 이름값으로 그림 비싸게 팔아먹어 기분 나쁘다, 나는 20만원 받고 그렸는데 조영남은 수백만원 받고 팔아먹어 기분 나쁘다, 이런 식의 감정 대응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가 얼마나 아프냐가 사실 왜곡의 척도가 돼서는 안된다.
-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가 살아 있을 때 그의 그림을 제대로 알아본 사람은 오직 그의 동생 테오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그림은 대개 수백억원에 거래된다. 대중이란 이처럼 천박한 것이다.
- 이중섭의 황소 그림. 이 위대한 화가 이중섭은 1956년 굶어 죽었다. 그래 놓고 지금은 수억원, 수십억원에 그의 그림이 거래된다. 고흐를 자살시키고, 이중섭이 누렇게 뜬 얼굴로 병사할 때 누가 그들의 그림을 알아보고, 작은 손길이라도 내밀었던가. 앞서 나가는 자 발목 걸어 넘어뜨리는 건 쉽지만 묻혀 있는 진짜를 찾아내는 데는 소홀한 게 대중이다.
<조영남 화투 그림 논란, 우리가 이런 수준이니 큰 작가가 못나오지>
<조영남이 사기쳤다고 믿는 우리 국민 73.8%에게 묻는다>
<조영남 원작보다 대작 작가 그림이 더 좋으니 사기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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