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자를 섞어 쓰자는 세력들이 한글만 쓰라고 규정한 <국어기본법>이 위헌이라는 소송을 내어 헌재에서 심리 중이다. 나는 무작정 한글만 쓰자는 사람은 아니다. 아직 과도기에 있으므로 잘 안쓰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꿔 써가면서 서서히 우리 말과 글을 고쳐나가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즉 한글만 쓰자는 사람 중에는 한자어를 무작정 한글로만 적어 쓰자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 주로 북한에서 이런 방식을 쓴다. 그러다보니 순우리말 교육이 소홀해지고, 사람들도 어려운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꿔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난 어려운 한자어 대신 우리말로 바꿔쓰자는 주장을 한다.
전에 한겨레신문에 우리말 관련 연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지방대 국문과 교수란 자가 나를 가리켜 <국민을 曲學阿世하는 저런 危險한 인간이 있군요. 저런 論理는 너무 單純無識하여 제가 反論을 쓸 價値도 없으나, 혹시 저런 幼稚한 글에 속아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봐서 反論을 적겠습니다. 하면서 비난한 바가 있다.> <한겨레연재글로 망신당하다>
국어기본법 제3조 정의에 국어와 한글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다.
1.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
2.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
국어기본법 제14조 공문서의 작성에 이렇게 나온다.
① 공공기관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
괄호 안에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는 기준이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불편하다고, 우리 문자 속에 시커먼 한자 집어넣어 어지럽게 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그래서 아래에 전문을 싣고 그 사이사이에 초록색으로 내 의견을 단다. 변론 이유서 제목은 임의로 단 것이다.
漢字를 國字에서 제외, 한자 사용을 금지시킨 국어기본법이 違憲이다
법률 대리인 金汶熙 변호사(법무법인 신촌)
이 사건에 대한 변론의 기회를 주신 데 대하여 재판장님과 재판관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청구인들은 이미 제출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 보충의견서, 준비서면을 통해 청구취지와 이에 대한 위헌논증을 상세하게 밝혔습니다.
문자언어(文字言語)로서 한국어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우리의 선조들이 2천년 이상 사용해 온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와 5백여 년 전에 창제된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을 혼용(混用)하여 두 문자의 장점(長點)을 절묘하게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고려 말에 100여년간 쓴 몽골의 파스파 문자는?
* 일제 때 36년간 쓴 일제의 가나는?
그 상징적인 표현이 바로 制憲헌법 이래 現行헌법까지의 우리 헌법의 表記이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집현전의 학사로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깊이 관여하고 동국정운의 공동저자인 성삼문의 충의가(忠義歌)(별첨서류1)가 바로 그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제3726호)은 國字인 한자를 국자에서 제외하고, 한글만을 國字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서 심판대상이 된 국어기본법의 각 법률조항과 그 부속법령에서 한자를 교과서에 쓸 수 없게 하고 정규수업에서 이를 배제하여 한국어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인 表意 문자인 한자와 表音 문자인 한글을 함께 사용해 온 언어체계를 송두리째 타파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고자 청구인들은 2012. 10. 22.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의 訴를 제기한 것입니다.
국어기본법 제3조는 제2호에서 ‘한글은 국어인 한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라고 정의하여, 韓國語를 표기하는 公用문자에서 漢字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호에서는 語文규범의 개념을 ‘어문규범이란 한글맞춤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 국어사용에 필요한 규범’이라고 정의하면서, 한글표기법만 언급할 뿐 한자의 어문규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한자표기는 사실상 외래어 표기법에 귀속시키고 있습니다. 이로써 국어기본법은 ‘한자를 배제한 한글專用의 국어’개념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국어기본법은 제18조에서 초중등학교의 교과용 도서를 편찬하는 경우에는 교육부장관으로 하여금 어문규범을 준수하도록 규정함으로써, 교과용 도서에서 한자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부장관의 고시를 통해 초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 교육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어기본법은 제14조 제1항에서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공문서에서 한자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어기본법은 제6조에서 한글전용의 국어정책의 수립과 시행의 의무를 국가에게 부과하고 있으며, 제15조와 제16조에서 ‘국어문화의 확산’과 ‘국어 정보화의 촉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여기서 ‘국어’란 ‘한자를 배제한 한글전용의 국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일상적 언어생활에서까지 漢字의 사용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심판대상 규정들은 서로 결합하여 전체로서 국민의 어문생활(語文生活)에서 한글전용을 강요하고 한자문화(漢字文化)를 의도적으로 배척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한글과 한자가 상생할 수 있는 규범질서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헌법의 어문질서를 명백히 거스르는 위헌입니다.
이 점을 네 가지로 나누어 간략히 말씀드립니다.
첫째, 심판대상 규정들은 한국어를 표기하는 공용문자 즉 국자(國字)는 오로지 ‘한글’뿐이라는 규범적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한자(漢字)가 한국어의 공용문자라는 점을 부정하면서 외국문자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정식명칭: “大韓民國憲法”)은 국가의 근본질서를 한자‧한글의 혼용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헌법전(憲法典)에 담긴 글자는 전체 14,313자이고, 이 중 한자의 수는 6,235자(43.5%)입니다. 어휘로 계산하면, 전체 4,101개의 낱말 중 한자어 어휘가 2,848개(69.4%)이고, 이들 한자어 중 한자로 표기된 것이 2,276개(79.9%)에 달합니다. 예를 들어, “大韓民國의主權은 國民에게 있고, 모든 權力은 國民으로부터 나온다.”(第1條 ➁)와 같은 표기방식입니다.이처럼 우리 헌법은 한자‧한글의 혼용체가 대한민국의 올바른 국어정서법(國語正書法)임을 온 몸으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한자는 한글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표기하는 공용문자로서 동등한 법적 지위를 헌법적으로 보장받고 있습니다. 이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심판대상 규정들은 곧 헌법의 어문질서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 우리말로 가다듬지 않은 잘못이지 헌법에 한자어 많다고 한자 쓰자는 건 억지다. 사실상 법전 용어에 나오는 한자어는 조선시대에 쓰던 한자어도 아니고 대부분 일본에서 쓰는 한자어다. 한자의 탈을 쓴 일본에 불과한 것이다.
- 이게 바로 한자 쓰자는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한자어 정체다. 조선총독부가 일본어 사전 들여와 발음만 한글로 적은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어 사전이다. 법전에 나오는 한자어 대부분은 이 조선어사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말에 한자어가 많으니 한자 쓰자는 말은, 솔직히 말해 일본인이 쓰는 일본식 한자어 쓰자는 말이다. 정작 중국에서 쓰는 한자어는 우리말에 별로 없다. <국어사전에 한자어가 70%나 된다고?> <초등한자 교육 주장하는 친일학자들, 조선총독부 사전 내다버려랴>
둘째, 심판대상 규정들은 ‘한글전용의 표기원칙’을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에서 강제하고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의 교과용 도서에서 한자의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국어’ 교과에서 한자 교육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세대가 자신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정확히 배우고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가능성을 국가가 봉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이 공교육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인격발현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며 동시에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입니다.
셋째, ‘한글전용의 표기원칙’은 국가의 모든 공적 문서의 작성에서 강요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국민은, 국가기관과 문서로 의견교환을 할 때, 한국어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고 헌법이 허용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어의 공용문자인 한자로 자신의 모국어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선택권(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에서 보장)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입니다.
넷째, 심판대상 규정들은 국민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 한자문화를 의도적이고 편파적으로 억압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어를 반쪽짜리 언어로, 절름발이 언어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의 한글세대는 한글로만 쓰인 한자어를 흐릿하게 이해합니다. 글은 읽어도 그 뜻은 정확히 모릅니다(‘불후의 명곡’에서 ‘불후’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모른 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자어가 소리만 남고 뜻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어에 특별히 많은 동음이의어는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어휘는 현저히 줄어들고 그나마 남아 있는 한자어는 모호해져 사고의 폭과 깊이를 확장할 수 있는 언어적 도구의 다양성과 정교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십년 전에 한글‧한자 혼용체로 쓰인 수백 만 권의 도서관의 책들이 한글세대에게는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소중한 앞 세대의 지식들이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이 자신의 모국어를 온전하게 보전하면서 이 모국어를 통해 인격을 형성하고 발현할 헌법상의 권리 즉 ‘언어를 통한 인격발현권’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 이런 분들이 꼭 시비거는 게 불후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고락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며 혀를 차는 것이다. 사실 웬만큼 공부하는 아이들은 불후가 뭔지 고락이 뭔지 안다. 설사 몰라도 그건 나와 당신들 같은 어른들 잘못이지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불후'를 아직 쓸 수 밖에 없도록 우리말 환경을 방치한 내 잘못이고 우리 잘못이다. '불후'가 '썩지 않는'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해서 아이들이 꼭 '썩지 않는'이란 의미로 이 말을 쓰는 건 아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영원히', '오래 가는', 외래어 '클래식' 정도로 쓸 것이다. '천년의 노래'라고 해도 된다. 따라서 불후를 한자로 적을 이유가 없다. 앞으로는 안쓰면 된다.
- 내가 지은 우리말 숙어, 우리말 어원, 우리 한자어, 우리말 관련 전문 교양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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