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독일군 치하에 있던 네덜란드는 나치에 부역한 매국혐의자들을 줄줄이 체포하기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한스 반 메이허런이라는 화가도 나치 부역자로 체포되어 법정에 선다. 그는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나치에 팔아넘긴 혐의로 기소되었다. 언론은 그를 가리켜 네덜란드의 영혼을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한스는 자신의 작품을 혹평해온 평론가들의 허상과 위선을 폭로하기 위해 일부러 페르메이르의 위작을 만들어 화상(畫商)을 통해 나치 실력자 괴링에게 팔아넘겼다고 주장한다. 모조그림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술 감정가들이 진품으로 판정한 페르메이르의 초기 작품들은 사실 내가 그린 것입니다. 특히 괴링에게 판 위작들은 파란색을 표현할 때 17세기 안료인 울트라마린 대신 코발트블루를 섞어 나중에라도 위작임이 밝혀지도록 했습니다.”
그의 증언으로 네덜란드 미술계는 발칵 뒤집힌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나치 실력자 괴링에게 위작을 팔고 약 1500억 원(165만 굴덴)을 받은 그를 가리켜 나치를 조롱한 위대한 화가로 추켜세웠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와 판사들은 그에게 실제로 그림을 그려볼 것을 명령한다.
- 재판 받는 한스 반 메이허런(왼쪽), <박사들 사이의 그리스도>를 실제로 그려 보이는 한스(오른쪽).
캔버스가 들어오고, 붓과 물감이 마련되었다. 판사, 검사, 변호사, 정부 관료 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그는 붓을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스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기막힌 솜씨로 그려낸다.
그는 나치 부역 혐의는 벗지만, 네덜란드 미술계를 조롱한 죄가 인정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한스 사건 이후 수백 점이나 되던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78점으로 줄어들고, 나중에는 56점만이 진품으로 인정되었다. 그마저도 정밀 감정 결과 페르메이르가 그린 진품은 약 30점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30점에 대해서조차 누구도 페르메이르의 진품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진품과 위조품을 물감이나 종이의 질 차이 등으로 구분하려는 것은 골동품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화가의 혼이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 이를 감정할 방법이 있지 않는 한 진품과 위조품의 싸움은 끝날 수가 없다.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한스는 이 작품도 위작으로 만들어 괴링에게 팔았다.
'이재운 작품 > 가짜화가 이중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풍이 올라오는 지금, <가짜화가 이중섭>을 인쇄한다 (0) | 2016.07.04 |
---|---|
에필로그 / 나는 다시 미쳐가는 것 같아요 (0) | 2016.06.23 |
표지용 이미지가 나왔다 (0) | 2016.06.23 |
이중섭 화가 가족이 살던 서귀포 집 (0) | 2015.11.20 |
<가짜화가 이중섭>, 고니 김순곤 씨가 편집 중 (0) | 2015.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