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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가짜화가 이중섭

에필로그 / 나는 다시 미쳐가는 것 같아요

에필로그

 

내 사랑에게

나는 다시 미쳐가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회복되지 못할 것 같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 들리고,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어요.

 

조울증을 앓아온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하기 사흘 전에 쓴 편지 일부이다.


 

작곡가 슈만은 조울증의 조증 상태에 있을 때 맹렬하게 작곡을 했다. 하루에 22시간씩 잠을 자지 않고 작곡에 매달렸다. 이 같은 폭발적인 정열로 슈만은 2주일 동안 세 곡의 현악 4중주를, 그리고 1년 동안 무려 138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그러나 조울증의 조증 상태가 사라지고 우울증이 찾아오면 그의 창작력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조증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작곡에 매달리다가, 우울증 상태에서는 발작을 일으켜 라인 강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결국 슈만은 46세의 나이로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과 일곱 자녀를 남겨둔 채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차이콥스키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되는 교향곡 6<비창>을 작곡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살했다. 이때는 그의 우울증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결국 우울증 때문에 그는 걸작을 남기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서머타임>의 작곡가인 미국의 조지 거슈윈은 재즈와 클래식을 결합한 작품을 많이 작곡해 젊은 나이에 유명세와 부를 거머쥔 세계적인 천재 작곡가였다. 그러나 거슈윈은 30대 중반부터 심각한 정신병에 시달렸다. 매주 5일씩 2년간이나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는데도 그의 병은 낫지 않았다.

병으로 고생하던 2년 동안 거슈윈은 자신의 최대 걸작인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작곡했다. 그리고 1937년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미 뇌 속에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종양이 퍼져 있었다. 결국 거슈윈은 39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이 종양 때문에 그의 정신병이 나타났던 것이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바실리 칸딘스키, 알브레히트 뒤러.

작곡가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엑토르 베를리오즈,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구스타프 말러,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루트비히 판 베토벤.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 에드거 앨런 포, 찰스 램, 에밀 졸라, 레프 톨스토이, 기 드 모파상,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 버지니아 울프, 조너선 스위프트, 루이스 캐럴, 윌리엄 블레이크, 어니스트 헤밍웨이, 샤를 보들레르, 오노레 드 발자크, 찰스 디킨스, 월트 휘트먼.

과학자 아이작 뉴턴, 요하네스 페터 뮐러.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이들의 공통점은 조울증 환자라는 것이다.

이 명단에 이중섭의 이름이 올라간다.

이허중은 비록 가공인물이지만 아직 살아 있다. 우리들 사이에, 우리들 가슴에. 그리고 넌 고흐처럼 그림을 그리는구나.”란 말을 듣는…….


- 21세의 이중섭

 

그리고 나는 대학 시절 이중섭의 절친인 구상 선생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대학원 조교로 있을 때는 구상 선생님 개인 심부름을 하고, 여의도 아파트 단지에 있던 서재 관수재(觀水齋)를 자주 드나들었다.

선생님은 폐와 위절제술을 여러 번 받아 몸이 늘 쇠약하셨다. 처음에 둘이서 점심을 먹는데, 내가 너무 빨리 밥을 먹어버려 선생님이 다 드실 때까지 벌 서는 기분으로 꼼짝없이 앉아 기다린 적이 있다. 크게 당황한 나는, 이후 밥을 천천히 먹는 습관이 생겨 지금도 밥을 빨리 먹지 않는다.

선생님은 화가 이중섭의 원산 친구로 그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이 무렵 구상 선생님은 가끔 이중섭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화가 이야기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들어도 되묻지 못했다. 이 작품을 쓸 줄 알았으면 자세히 여쭤봤을 텐데 못내 아쉽다. 나와 이중섭 사이에 구상 시인이 계셨다.


- 대학 때 내 수첩에 적혀 있던 구상 선생님 집주소. 자주 가야 했으므로 당시에는 전화번호와 17동 46호를 외우고 있었다.


- 나의 스승 구상 선생님

- 이중섭이 1955년에 구상 선생네 가족이 즐거이 사는 걸 보고 그려준 그림.

이 무렵 그는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지기 직전이었고, 구상 선생님은 폐결핵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