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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진시황에 대한 단상

스포츠서울에 <상왕 여불위>란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할 때 자료조사 차 황하를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답사했는데, 그때 찍은 함양(서안, 장안) 사진 몇 장을 정리해본다.

2004년 7월 하순, 약 15일간 비행기, 택시, 기차, 버스 등으로 이동하면서 주요 사적지를 돌아다보았다.

당시 촬영한 사진 중 진시황과 그의 아버지 여불위에 대한 이미지만 모아 보았다.

 

- 서안의 흙집. 황토언덕에 구멍을 파고 산다. 이들은 진시황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


- 함양의 황토집 내부. 습기가 없어 사는 데는 대단히 쾌적해 보였다.


- 측천무후 능에 가는 길. 저기 보이는 산꼭대기까지 말을 타고 함께 올라갔다. 


- 측천무후릉에서 바라본 동쪽 평야. 멀리 진시황의 무덤군이 보인다. 

서안은 우리나라 경주처럼 아무 데나 파도 무슨 유물인가 나온다. 

이 당시 서안 일대는 밭으로 이용되어 중국인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별로 크지 않다는 걸 느꼈다.


- 진시황릉에서 멀지 않은 병마용갱 앞마당에서 공연 중인 중국 소수민족 악단. 진나라 시절을 재현한 듯.

주로 강족, 즉 티베트계 사람들이다.


- 병마용 갱에 들어가 사진을 실컷 찍었다. 

지금은 들어갈 수가 없다. 당시 나는 저 병마용 갱 사이사이를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나도 미련하고, 중국인들도 미련했다. 

저 어마어마한 유물을 함부로 대했다니...

아래는 당시 찍은 근접 사진이다.






- 여기도 진시황의 땅 서안이다. 당나라 때는 장안으로 불렸다. 진나라 서울 함양에서 오른쪽에 있는데 매우 가깝다. 한 문화권이다.

양귀비로 유명한 양옥환 상이다. 이곳이 양귀비가 시아버지 현종 이융기와 더불어 살던 궁이다. 실제 양귀비는 이보다 더 뚱뚱했다고 한다.

그들이 살던 전각이며 마당을 둘러보니 뭐 별 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창덕궁 후원(비원)이 훨씬 낫다.


- 양옥환이 살던 양귀비궁의 잉어들. 오른쪽은 당 현종과 양귀비가 노닐던 '배꽃동산' 이원의 현판.

당태종 이세민이 쓴 글씨다.

- 중국에서 '오랑캐'가 사는 서쪽으로 나가는 길. 여기로 노자가 나갔다. 

이 오랑캐 땅은 실은 티베트인들의 나라였다. 중국 문화는 티베트 문화와 다르다.


- 함곡관이 있는 마을은 노자가 나간 곳이라 하여 도관이 아주 크다. 

이곳을 지키던 관리에게 노자가 휙휙 써준 게 도덕경이다.


- 함곡관 도관에 피어 있는 무궁화다. 우리나라 무궁화와 똑같다.



- 함곡관. 진시황이 이 문을 자주 드나들었고, 내 소설에 나오는 여불위도 수백 번이나 이 문을 드나들었다.

문루에 올라가 2천년 전에 있었던 일을 상상해보았다. 그러커늘 6년 전 일도 생각이 잘 안난다.


- 진시황이 태어난 조나라 서울 한단의 역앞에 서 있는 호북기마상. 당시 몽골 기마 문화가 조나라를 지배했다.

 

- 이곳이 상나라가 있던 곳 은허다. 그래서 종종 상나라를 은나라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밭 뿐 흔적을 볼 수 없었다. 

진시황의 친아버지 여불위는 이곳 상나라 후예다. 상나라를 이룬 민족은 만주로 건너가 거기서 기자조선을 세웠다. 따라서 우리 민족과는 대단히 밀접한 인종이다. 진시황 영정도 그 피를 이어받아 아마도 진시황릉이 발굴되면 북방기마민족 유물이 많이 나올 것같다. 


- 은허박물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유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상나라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은데 섭섭했다.


옥의 한 종류인 벽이다. 상나라 때의 유물이다. 여불위가 이런 옥 종류를 팔아 큰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진시황의 아버지 이인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