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까지 푸른 신호등을 가리켜 '파란불'이라고 적는 언론, 작가, 시인들이 많았다. 그때 내가 처음 '초록불'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10만 부 이상 팔리는 어린이용 책에 잇따라 썼다. '푸른불'이라고 하면 더 좋은데 발음 가치가 떨어져 일부러 초록불이라고 만들었다.
1990년대 초, 어느 이과 전공 교수가 "우리말로 논문 쓰면 세계적인 학술지에 싣지 못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이유가 세계 학술계에서 우리말이 학술언어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그런 우리말로 쓰는 우리 문학은 어떨까 들여다보니 당시 이오덕 선생 등이 조사한 '유명 소설과 시에 나타난 오류' 자료를 보니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유명 소설가, 유명 시인의 시인데도 엉터리 문법, 엉터리 단어, 엉터리 문장이 수없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나라도 우리말을 가다듬어 보자고 결심했는데 처음에는 엄두가 안나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소설 토정비결>이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그 돈으로 사전만들기에 들어가 오늘날까지 하고 있다.
지금 문학언어, 학술언어로 인정되는 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정도인 것같다. 중국어는 덩치 때문에 봐주는 거지 아직 제대로 인정받지는 못하는 것같다.
내 판단으로, 우리말이 고급 문학언어가 되고 고급 학술언어가 되려면 50년은 더 필요할 것같다. 지금 우리 문학이 혹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그건 아마도 번역가의 수고가 80% 이상 필요할 것이다. 우리 문학 자체로 상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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