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죽을 때 반지는 빼놓고 죽어>
기윤이가 텔레비전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보고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잠을 자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든 외할머니를 깨워놓고 잠이 안온다며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그러다가 웬일인지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다.
외할머니 : 갑자기 왜 울어? 옛날 얘기 해달라며?
기윤 : 아빠도 돈이 없고, 엄마도 돈이 없고, 할머니도 돈이 없잖아.
요새 아이엠에프를 들먹이며 까먹는 돈도 덜주고, 전기 아끼고, 물 아끼라고 한 게 효과가 난 듯하다. 기윤이 금불상까지 갖다 금모으기 행사에 냈으니까.
외할머니 : 기윤아, 우린 부자야. 돈 많아. 걱정 마.
기윤 : 아니야. 할머니는 나 클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야 돼.
이건 완전히 럭비공이라 어디로 튈지 저도 모른다.
외할머니는 흐뭇해서 기윤이를 얼른다.
그러나.
기윤 : 그런데 할머니, 사람은 왜 죽는 거야?
외할머니 대답이 신통할 리 없다.
대충 얼버무린다.
그러나 기윤인 속셈이 따로 있었다.
기윤 : 그럼, 할머니. 할머니 죽을 때 반지는 빼놓고 죽어.
외할머니 : 뭐?
요즘 텔레비전에서 금반지 모으자는 캠페인을 보고 제 금목걸이하고 황금부처를 내다파니까 금이 돈이 되는 건 줄 안 모양이다.
하여튼 돈에는 관심이 많은 아이다.
백일 때, 돌 때 연필이나 실보다 돈을 먼저 집은 아이다.
- 기윤이 돌 때 선물로 들어온 금붙이를 녹여 황금부처를 만들었다.
이걸 1997년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행사에 내다 팔았는데, 아마 은행에 가기 전
집에서 마지막으로 걸어본 사진인 듯하다. 표정이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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