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과거와 미래
- 26년 글을 쓰다보니 쓰면 쓸수록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저는 대학에 다닐 때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는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30세부터입니다.
당시 돈 잘 버는 아내 덕분에 무조건 글만 쓸 수 있는 자유를 얻어 겁없이 서재를 구해 직업적인 글쓰기에 덤벼들었고, 다행스럽게 오늘날까지 소설가로 먹고 삽니다.
26년 정도 소설을 쓰면서 앞뒤, 오른쪽왼쪽 돌아보니 선배, 후배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하늘같이 여기던 우리 스승들의 문학작품도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안읽어주니 저절로 사라진 겁니다. 도서관에나 가야 낡은 책을 볼 수 있을 뿐 서점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선후배(중앙대 문예창작과)들 중에는 지방에서 글 잘쓰기로 유명했던 사람들이고,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르고, 저는 알았습니다. 바로 한국어 즉 우리말입니다. 문예창작과의 치명적인 단점이 우리말 공부를 따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국어사전 놓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쓰는데, 그 국어사전이 일본어사전을 그대로 베긴 일본어 발음사전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몰랐던 거지요.
훈민정음은 1446년에 발명된 문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쓰이지 못했습니다. 왕명으로 불경을 한글 번역했지만 널리 읽히지 않았습니다. 승려들이 거부하여 한문으로 그냥 읽다가 1980년대가 돼서야 겨우 한글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지금도 그 짧은 반야심경조차 한문으로 외우는 절이 아주 많습니다. 뜻도 모르고 그냥 외우는 거지요.
또한 세종이 공문서를 한글로 적으라 했지만 사대부들이 거부했습니다. 그의 아들 세조 이후 공문서에서도 한글이 사라집니다.
한자한문은 사대부만의 특권이었거든요. 자기들의 계급 문자이고 소통수단이었습니다. 중인, 천민은 보여줘도 모르니 얼마나 좋습니까. 궁중어에 버금가는 특권을 즐길 수 있었던 겁니다. 세종 임금도 이건 보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다가 1887년, 존 로스라는 스코틀랜드 목사가 최초로 한글성경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성경을 대량으로 인쇄해서 무료로 나눠주고, 한글 교육까지 시켰습니다. 그래야 성경을 읽으니까요. 쪽성경이라고 하여 손바닥만한 책으로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걸 3000부 단위로 찍어 아무에게나 마구 나누어주고, 그걸 읽히기 위해 야학을 세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한글 배우라고 사탕도 주었습니다.
세상에, 존 로스 덕분에 우리 국민이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기독교를 싫어하는 전통적인 우리 백성들은 그나마도 거부했습니다. 즉 백성들은 한글을 배워 익히는데, 막상 양반 귀족 사대부는 이를 거부하고 여전히 한문으로 어문생활을 합니다. 이게 198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말로는 1894년 갑오경장 때 공문서는 국한혼용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1864년부터 1910년까지 역사를 기술한 황현의 매천야록도 한문으로 쓰일 정도였습니다.
한참 뒤인 1919년 기미독립선언문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이 토씨만 한글로 적었습니다.
원본은 한문처럼, 일본어처럼 세로쓰기로 되어 있으며, 띄어쓰기가 없고, 문장부호도 없습니다. 마침표, 쉼표도 없습니다. 문법도 없습니다. 1919년, 즉 일제에 강점된 지 불과 9년 밖에 안되었지만, 일본의 영향을 받은 지는 1894년으로부터 무려 35년이나 되어 벌써 일본한자어가 많이 쓰였습니다. 아직은 전통적인 우리 한자어가 더 많지만 일본한자어가 대략 50%는 들어갔습니다. 이미 비극이 시작된 겁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말을 만들어내지 못한 겁니다. 대신 일본 한자어가 빠르게 보급되고, 그에 따라 순우리말과 우리 한자어는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독립선언서 본문을 그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읽어보라는 의미로 가로쓰기로 고칩니다.
- 己未獨立宣言書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告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半萬年歷史의 權威를 杖하야 此를 宣言함이며 二千萬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此를 佈明함이며 民族의 恒久如一한 自由發展을 爲하야 此를 主張함이며 人類的良心의 發露에 起因한 世界改造의 大機運에 順應並進하기 爲하야 此를 제기함이니 是ㅣ天의 明命이며 時代의 大勢ㅣ며 全人類共存同生權의 正當한 發動이라 天下何物이던지 此를 沮止抑制하지 못할지니라
舊時代의 遺物인 侵略主義 强權主義의 犧牲을 作하야 有史以來 累千年에 처음으로 異民族箝制의 痛苦를 嘗한 只今에 十年을 過한지라 我生存權의 剝喪됨이 무릇 幾何ㅣ며 心靈上 發展의 障碍됨이 무릇 幾何ㅣ며 民族的 尊榮의 毁損됨이 무릇 幾何이며 新銳와 獨創으로써 世界文化의 大潮流에 寄與補裨할 機緣을 遺失함이 무릇 幾何ㅣ뇨
噫라 舊來의 抑鬱을 宣揚하려하면 時下의 苦痛을 擺脫하려하면 將來의 脅威를 芟除하려하면 民族的良心과 國家的廉義의 壓縮銷殘을 興奮伸張하려하면 各個人格의 正當한 發達을 遂하려하면 可憐한 子弟에게 羞恥的 財産을 遺與치안이하려하면 子子孫孫의 永久完全한 慶福을 導迎하려하면 最大急務가 民族的獨立을 確實하게함이니 二千萬各個가 人마다 方寸의 刃을 懷하고 人類通性과 時代良心이 正義의 軍과 人道의 干戈로써 護援하는 今日吾人은 進하야 取하매 何强을 挫ㅎ치못하랴 退하야 作하매 何志를 展ㅎ지못하랴
丙子修好條規以來 時時種種의 金石盟約을 食하얏다하야 日本의 無信을 罪하려안이하노라 學者는 講壇에서 政治家는 實際에서 我 祖宗世業을 植民地視하고 我文化民族을 土昧人遇하야 한갖 征服者의 念를 貪할뿐이요 我의 久遠한 社會基礎와 卓越한 民族心理를 無視한다하야 日本의 少義함을 責하려안이하노라 自己를 策勵하기에 急한 吾人은 他의 怨尤를 暇ㅎ지못하노라
現在를 綢繆하기에 急한 吾人은 宿昔의 懲辨을 暇ㅎ지 못하노라. 今日吾人의 所任은 다만 自己의 建設이 有할뿐이요 決코 他의 破壞에 在ㅎ지안이하도다 嚴肅한 良心의 命令으로써 自家의 新運命을 開拓함이오 결코 舊怨과 一時的感情으로써 他를 嫉逐排斥함이안이로다. 舊思想舊勢力에 羈縻된 日本爲政家의 功名的犧牲이된 不自然不合理한 錯誤狀態를 改善匡正햐여 自然又合理한 正經大原으로 歸還ㅎ게함이로다
當初에 民族的要求로서 出ㅎ지안이한 兩國合倂結果가 畢竟姑息的 威壓과 差別的不平과 統計數字上의 虛飾의 下에서 利害相反한 兩民族間에 永遠히 和同할수업는 怨溝를 去益深造하는 今來實績을 觀하라. 勇明果敢으로써 舊誤를 廓正하고 眞正한 理解와 同情에 基本한 友好的新局面을 打開함이 彼此間遠禍召福하는 捷徑임을 明知할것안인가 또 二千萬含憤蓄怨의 民을 威力으로써 拘束함은 다만 東洋의 永久한 平和를 保障하는 所以가 안일뿐 아니라 此로 因하야 東洋安危의 主軸인 四億支那人의 日本에 對한 危懼와 猾疑를 갈스록 濃厚ㅎ게하야 그 結果로 東洋全國이 共倒同亡의 悲運을 招致할 것이 明하니 今日 吾人의 朝鮮獨立은 朝鮮人으로하야금 正當한 生榮을 遂ㅎ케하는 同時에 日本으로 하야금 邪路로서 出하야 東洋支持者의 重責을 全ㅎ케하는것이며 支那로하야금 夢寐에도 免하지못하는 不安恐怖로서 脫出ㅎ게하는 것이며 東洋平和로 重要한 一部를 삼는 世界平和人類幸福에 必要한 階段이되게하는 것이라. 이엇지 區區한 感情上 問題ㅣ리오
아아 新天地가 眼前에 展開되도다 威力의 時代가 去하고 道義의 時代가 來하도다 過去全世紀에 鍊磨長養된 人道精神이 바야흐로 新文明의 曙光을 人類의 歷史에 投射하기始하도다 新春이 世界에 來하야 萬物의 回蘇를 催促하는도다 凍氷寒雪에 呼吸을 閉蟄한 것이 彼一時의 勢ㅣ라하면 和風暖陽에 氣脈을 振舒함은 此一時의 勢ㅣ니 天地의 復運에 際하고 世界의 變潮를 乘한 吾人은 아모 躊躇할것업스며 아무 忌憚할것없도다. 我의 固有한 自由權을 護全하야 生旺의 樂을 飽享할것이며 我의 自足한 獨創力을 發揮하야 春滿한 大界에 民族的精華를 結紐할지로다
吾等이 慈에 奮起하도다 良心이 我와 同存하며 眞理가 我와 幷進하는도다 男女老少업시 陰鬱한 古巢로서 活潑히 起來하야 萬彙群象으로 더부러 欣快한 復活을 成遂ㅎ게되도다. 千百世祖靈이 吾等을 陰佑하며 全世界氣運이 吾等을 外護하나니 着手가 곳 成功이라 다만 前頭의 光明으로 驀進할따름인뎌
公約三章
一. 今日吾人의 此擧는 正義人道生存尊榮을 爲하는 民族的要求ㅣ니 오즉 自由的精神을 發揮할 것이요 결코 排他的感情으로 逸走하지 말라
一.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 民族의 正當한 意思를 快히 發表하라
一. 一切의 行動은 가장 秩序를 尊重하야 吾人의 主張과 態度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하게하라
이뿐이 아닙니다.
이 사전을 보십시오.
- 1920년 조선총독부 발간 <조선어사전>
우리나라 최초의 사전은 일본어사전을 단어만 한글로만 옮겨적은 것이었습니다.
이후에 나온 거의 모든 한국어사전은 이런 예에 따라 일본어 사전을 번역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초등한자교육 주장하는 친일학자들, 조선총독부 사전 내다버려라!>
오늘날까지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우리말사전에 실려 있으니 당연히 우리말인 줄 알고 써왔습니다. 일부 작가들은 여기 나오는 어려운 한자어를 마구 쓰면서 독자를 피곤하게 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습니다.
1961년 5.16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참모총장 장도영에게 보낸 박정희의 편지를 보십시오.독립선언문과 별 차이가 없이 토씨만 한글이고, 순 일본어 한자 투성이입니다. 이게 우리의 어문 현실이었습니다.
역시 같은 해입니다만, 1961년 판결문입니다.
1980년대 판결문 중 '만연히 시속 20키로 속도로 운전한 과실로 때마침 동소 우측에서 뛰어나오는 ○○○를 발견하고 급부렉키를 밟았으나∼' 같은 표현이 흔했습니다.
1982년 야당 지도자 김대중 씨가 사형선고를 받은 뒤 독재자 전두환에게 보낸 <사면을 청원하는 편지>를 보십시오. 역시 한자 투성이고, 맞춤법 틀린 건 예사라서 볼 필요도 없습니다.
아래 편지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김종필 씨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한자는 안적었지만 실제로는 모두 한자어 투성이입니다. 현실이 이러합니다. 2016년 편지인데도 우리 언어가 이 지경입니다.
2016년 현재 사용되는 대학교재를 보면 더 열이 납니다. 그야말로 토씨만 달아놓고, 한문 그것도 일본한문을 발음만 한글로 적은 서적류가 아직도 수두룩합니다. 한자 안배운 대학생들이 머리 아파 죽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일본 한자어는 필수 한자를 배워도 사실은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한글 사정이 이렇다고 다른 문자나 언어도 그럴까요?
신라 학자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할 때 쓴 황소의 난이 일어나는데, 그때 그가 쓴 격문입니다. 물론 한문이라 일반인은 읽기 어렵지만, 한문을 아는 사람들이 볼 때는 아주 쉬운 내용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천년 하고도 35년이 더 지난 서기 881년 7월 8일(음력)에 쓴 건데도 이렇게 생생합니다. 한문은 이처럼 수천년이 지나도 서로 뜻이 통합니다. 문자가 그만큼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檄黃巢書
廣明二年七月八日 諸道都統檢校太尉某官 告黃巢
夫守正修常曰道臨危制變曰權 智者成之於順時 愚者敗之於逆理 然則雖百年繫命 生死難期 而萬事主心 是非可辨 今我以王師則有征無戰
軍政則先惠後誅 將期剋復上京 固且敷陳大信 敬承嘉諭 用戢奸謀 且汝素是遐甿 驟爲勍敵 偶因乘勢 輒敢亂常 遂乃包藏禍心 竊弄神器
侵凌城闕 穢黷宮闈 旣當罪極滔天 必見敗深遁地 噫 唐虞已降 苗扈弗賓 無良無賴之徒 不義不忠之輩 爾曹所作 何代而無 遠則有劉曜王
敦覬覦晉室 近則有祿山朱吠噪皇家 彼皆或手握强兵 或身居重任叱叱則雷奔電走 喧呼則霧塞烟橫 然猶暫逞奸圖 終殲醜類 日輪闊輾 豈
縱妖氛 天綱高懸 必除凶族 況汝出自閭閻之末 起於隴畝之間以焚劫爲良謀 以殺傷爲急務 有大可以擢髮 無小善可以贖身 不唯天下之人
皆思顯戮 仰亦地中之鬼已議陰誅 縱饒假氣遊魂 早合亡神奪魄 凡爲人事 莫若自知 吾不妄言 汝須審聽 比者我國家德深含垢 恩重棄瑕 授
爾節旄 寄爾方鎭 爾猶自懷鴆毒 不斂梟聲 動則齧人 行唯吠主 乃至身負玄化 兵纏紫微 公侯犇竄危途 警蹕則巡遊遠地 不能早歸德義 但
養頑凶 斯則聖上於汝有赦罪之恩 汝則於國有辜恩之罪 必當死亡無日 何不畏懼于天 況周鼎非發問之端 漢宮豈偸安之所 不知爾意終欲奚
爲 汝不聽乎 道德經云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又不聽乎 春秋傳曰 天之假助不善
罰 公汝藏奸匿暴 惡積禍盈 危以自安迷以不復 所謂燕巢幕上 漫恣騫飛 魚戲鼎中 卽看燋爛 我緝熙雄略糺合諸軍 猛將雲飛 勇士雨集 高
旌大旆 圍將楚塞之風 戰艦樓船 塞斷吳江之浪 陶太尉銳於破敵 楊司空嚴可稱神 旁眺八維 橫行萬里 旣謂廣張烈火 爇彼鴻毛 何殊高擧泰
山 壓其鳥卵 卽日金神御節水伯迎師 商風助肅殺之威 晨露滌昏煩之氣 波濤旣息 道路卽通 當解纜於石頭 孫權後殿 佇落帆於峴首 杜預前
驅 收復京都 剋期旬朔但以好生惡殺 上帝深仁 屈法申恩 大朝令典 討官賊者不懷私忿 諭迷途者固在直言 飛吾折簡之詞 解爾倒懸之急 汝
其無成膠柱 早學見機 善自爲謀 過而能改 若願分茅列土 開國承家 免身首之橫分 得功名之卓立 無取信於面友 可傳榮於耳孫 此非兒女子
所知 實乃大丈夫之事 早須相報 無用見疑 我命戴皇天 信資白水 必須言發響應 不可恩多怨深 或若狂走所牽 酣眠未寤 猶將拒轍 固欲守
株 則乃批熊拉豹之師 一麾撲滅 烏合鴟張之衆 四散分飛 身爲齊斧之膏 骨作戎車之粉 妻兒被戮 宗族見誅 想當燃腹之時 必恐噬臍不及
爾須酌量進退 分別否臧 與其叛而滅亡 曷若順而榮貴 但所望者 必能致之 勉尋壯士之規 立期豹變 無執
그러면 미국 독립선언서를 보지요. 1776년에 쓰여진 것으로 250년 정도 되었습니다.
이 미국 독립선언문은 오늘날에도 미국의 초등학생들이 외우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해마다 독립기념일에 이 선언문 전문을 싣습니다. 지금도 그대로 살아있는 문장인 거지요.
미국 독립선언문이 나온 1776년에서 11년 뒤인1687년, 김만중이 쓴 우리말 한글소설 구운몽 첫 장을 영인본으로 보십시오. 우리 어린이들은 절대로 못읽습니다.
제가 26년간 글쓰기에만 전념하다 보니 이런 사정을 알게 되었고, 우리말이 이처럼 엉망인 상황에서 문체를 따지고 문장을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뼈저리게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20년 전, 30년 전에 쓴 글을 재출간하면서 늘 수정을 합니다. 표현을 고치기 위해 다듬기도 하지만 한자어를 없애는 겁니다. 30대에 쓴 소설에 오늘날 잘 안쓰는 한자어, 그것도 일본 한자어가 들어가 있는 겁니다. 볼 때마다 고치는데, 한이 없습니다. 지금도 일본 한자어를 무심코 써놓고 뒤늦게 고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글쓰기가 힘듭니다. 제 소설이 역사에서 영영 사라질 것같아 두렵습니다. 백년 뒤나 이백년 뒤의 우리 후손들이 제 글을 읽어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이미 60년대, 70년대 신문은 오늘의 학생들이 읽어내지 못합니다.
- 1980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 1면 한자 투성이다. 그것도 일본 한자어다.
그래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말로 글을 쓰도록 애쓰고, 고치고 다듬고 닦겠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니 제가 맡겠습니다. 그래서 천년 뒤에도 지금 느낌 그대로 읽어줄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말을 안정시켜야만 합니다. 오직 저 혼자의 힘으로 하고 있습니다.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1000가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1000가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숙어 1000가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1000가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그외 4권이 편집 중이고, 10권을 더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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