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10 (목) 07:24
오늘 아침 뙤약볕에 감자를 캤다. 시골에 심은 것보다 일주일 늦어 그 시간을 맞춰보려고 뜸을 들이다 줄기가 다 말라버려 더는 둘 수 없어 오늘 호미를 들었다.
호미를 들이대니 어린아이 피부같은 감자가 우르르 굴러나왔다. 한 포기에 대여섯 개씩 나왔다. 그걸 한 군데 모으니 보기가 여간 좋지 않았다. 누가 요술을 부린 것만 같다. 조그만 씨알을 넣었을 뿐인데 불과 두 달만에 이렇게 둥글둥글 예쁘게 생긴 감자가 대여섯 개씩이나 되어 나오다니, 요술이 아니고 뭐겠는가. 황우석이 개를 복제한다, 호랑이를 복제한다지만 감자 하나를 두 달만에 대여섯 개로 만들어내는 기술은 없을 것이다. 그저 무릎 탁 꿇고 엎드리고 싶을 뿐이다.
모두 석 줄을 심었는데, 이랑 하나에 약 9미터쯤 된다. 석 줄 다 뒤져봐야 두 박스쯤 나온다. 오래 버티다 캐는 덕분인지 상품이 한 박스 좀 넘는다.
감자를 캐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이 고맙다. 지금은 햇빛이 너무 뜨거워 모자를 쓰고, 헉헉거리며 애쓰지만, 그래도 태양이 있어 이 감자들이 이렇게 예쁘게 자랐다. 손을 조금만 놀려도 태양은 이처럼 먹을거리를 넉넉하게 길러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라고 태양은, 하늘은 이렇게 큰 기쁨을 주는지 모르겠다. 먹을거리는 주마, 그러니 너는 이것을 하라, 이렇게 말하는 것같다. 이것이 무엇일까.
오후에 손님들이 찾아와 캔 감자를 나눠주니 기뿐까지 좋다. 태양을 대신해 내가 은혜를 베풀 수 있다니, 이래저래 태양이 고맙다. 땅도 고맙고, 지렁이, 부엽토, 땅속 벌레들 다 고맙다.
'파란태양 > 전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 농사를 망치다 (0) | 2008.12.20 |
---|---|
다알리아가 웃는다 (0) | 2008.12.20 |
배추흰나비, 군무를 추다 (0) | 2008.12.20 |
미안해, 정말 미안해 (0) | 2008.12.20 |
세 가지 밭고랑 (0) | 2008.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