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0 (금) 19:16
시골에 살다보면 깔끔하게 잘 정돈된 밭을 구경할 수 있다. 우리 텃밭처럼 늘 잡초가 있는 밭은 별로 없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살펴보면 어느 집 밭이든 깨끗한 모래사막 같은 곳에서 작물만 잘 자라고 있는 것같다. 우리 작물보다 더 키가 크고 이파리도 더 푸르다.
비밀이 뭘까.
자세히 살펴보니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해온 방식대로 잡초를 뽑고 또 뽑는 우리 텃밭이 그 하나요,
두번째는 무자비하게 제초제를 뿌리는 거다. 제초제는 오늘날 농부들의 필수품이 돼서 담장 아래 뿌리고, 골목길에 뿌리고, 논두렁에 뿌리고, 길가에 뿌린다. 그래서 고추나 고구마 같은 작물을 심은 밭에는 비닐을 씌운 이랑 사이에 제조체를 갖다 부어 잡초라고는 단 한 개도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개울마다 밭둑마다 제초제 빈 병이 굴러다닌다.
세번째는 요새 새로 나온 기술이라는데, 검은 비닐이나 방한포 같은 것으로 밭고랑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비닐 농법을 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지렁이도, 개미도, 진딧물도, 나비도, 벌도, 달팽이도, 사마귀도, 배추흰나비애벌레도, 매미애벌레도 살 수가 없다.
이래저래 농부들의 밭은 깨끗하다. 나처럼 잡초를 손으로 뽑는 시대는 갔나 보다.
이런 걸 보고 살자니 어쩌다 식당에 가 밥을 먹을 때면 제초제 잔류량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주저하곤 한다.
제초제를 법으로 금지하는 수는 없을까. 이러면 농부들이 광화문에 제초제 뿌리며 시위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시위라는 어휘가 나왔으니 말이지, 돼지 기르는 이는 돼지 값 떨어진다고 새끼돼지 마구 버리고, 양계업자 시위에는 계란을 마구 깨던지고, 한우 농가는 송아지를 광화문에 풀어버리고, 쌀농사 짓는 이나 배추 농사 짓는 이는 트랙터로 밭을 갈아버린다. 낙농업자는 그 아까운 우유를 통째로 머리에 부어 버린다. 과격한 이는 밭에 불을 질러버리기도 한다.
나같으면 나를 먹여 살리는 가축이나 농산물을 그렇게 함부로 하지는 못하겠다. 내 책 안읽는다고 책 쌓아놓고 불이라도 지르란 말인가. 세상이 변하면서 소설가들도 시위 한번 해봤으면 싶을만큼 어려운데, 그래도 떼를 짓지 못하므로 하지도 못하고, 할 방법도 없는 듯하다. 그냥 소리없이 사라지는 직업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저런 사정을 살펴 시위할 때 인정머리 없이 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말로는 애지중지 아낀다면서 시위할 때는 원수 취급하고, 저 이천사람들처럼 돼지를 찢어죽이기도 하니, 우리가 금수가 아닌 이상 이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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