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5 (수) 22:01
고구마를 여섯 줄 심었다. 그런데 요령을 제대로 알지 못해 비닐을 씌우는 것까지는 잘 했는데, 고구마 줄기를 심고나서 비닐구멍을 흙으로 꼭 덮어주질 못했다. 그러자 안에서 잡초가 자라 비닐을 쑥쑥 밀어올렸다. 이놈들이 힘을 합쳐 비닐을 들추니 속수무책이었다. 한창 6월이니 잡초가 자라는 속도도 무서웠다. 뽑아도 뽑아도 잡초는 계속 올라와 해병대원들이 보트 들고달리듯이 비닐을 번쩍번쩍 쳐들었다. 원래 비닐 속에서 싹이 나면 햇빛에 말라 죽거나 아예 싹이 나지 못하는 법인데, 이놈들은 공간을 충분히 벌려놓고 씩씩하게 자랐다.
하는 수없다. 다른 농부들처럼 고구마 줄기를 꽂은 다음 비닐에 낸 구멍을 꼭 막아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결국 잔인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밖으로 드러난 잡초만 뽑은 뒤 비닐 틈새를 돌로 막아버렸다. 포기마다 그랬다.
그러면 햇빛이 뜨거운 날 이 잡초들은 아마 말라죽을 것이다. 새싹도 나지 않을 것이다.
잡초하고 공생하는 길을 찾지 못해 이런 결론을 내리고 보니 마음이 아프다.
여러 날 지나니 비닐 속의 잡초들이 여지없이 말라간다. 누렇게 죽어간다. 그대신 고구마 싹은 쭉쭉 뻗어나가고 있다.
농사 짓는 마음이 늘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농사는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상추든, 파든, 고추든 씨앗을 뿌리고나서 모종을 잡을 때도 크고 번듯한 놈만 살리고 나머지 시원찮은 건 죄다 뽑아 없앤다. 열무, 무, 배추 같은 건 끝없이 솎아먹는다. 깨같은 경우는 씨앗을 한 주먹씩 마구 뿌려놓고 그것들이 올망졸망 싹이 올라 삼사센티만 돼도 싹 뽑아다 무쳐먹는다. 저 부추같은 경우는 한뼘만큼 자라면 그때마다 칼로 베어다 먹는다. 잘린 줄기에서는 피같은 진액이 하루 종일 흘러나온다.
자연은 물론 나보다 더 잔인한 선택을 한다. 늘 겪는 일이지만 그 푸르던 호박줄기며 수세미, 토마토 줄기, 고구마 줄기 같은 게 하룻밤 무서리로 다 얼어죽는 것에 비하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생명을 주었으니 하늘이 거둬가는 것이라고 멀찍이 서서 구경하기만 했다. 그런데 내 손으로도 이런 식물들 삶에 생사의 영향을 미치다니 나는 얼마나 더 살아야 착해질까. 아니면 철이라도 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