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 현수막인데, 보자마자 마음에 안들어 사진을 찍었다.
꽃은 폐허에서 피는 게 아니라 아무 데서나 흙이 있으면 다 핀다.
따라서 거짓말이다. 이런 문장을 함부로 쓰면 안된다. 꽃이 왜 폐허를 골라다니며 피고, 좋은 땅에서는 안핀단 말인가.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도 좋은 문장이 아니다. 버려진 섬에도 꽃이 피었다가 맞는 거지 버려진 섬을 골라가며 꽃이 피진 않는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처럼 글 한 줄에도 시대가 담기고 사상이 담겨야 한다. 글 한 줄에서도 이처럼 다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시골 사진 몇 장 찍었다.
어머니 가신 뒤 처음으로 맞은 봄이다. 어머니 집, 어머니 땅은 그대로인데 과연 봄이 올까 싶은데 결국 봄이 오는 걸 보니 허탈하다(있어야 할 게 빈 듯, 뭔가 빠진 듯). 작년 한 해만 해도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가셨다. 동네를 돌아봐도 아는 얼굴이 적고, 아는 얼굴을 봐도 너무 늙어 차마 바라보기 미안하다. 꿈속을 거니는 것만 같다.
- 어머니 노니던 정자에 아무도 보이지 않고, 무나 배추를 심던 작은 밭에는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 문병 다니던 별군이가 철없이 뛰어다닌다.
- 형제들과 호두나무 수십 주를 빈 밭에 심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땀흘려 일하던 밭이지만 이제는 곡식을 심어 기를 가족이 없다. 그러니 무작정 나무라도 심는다. 딱히 호두를 따서 뭘 어쩌자는 계산도 없다. 그냥 심는다. 우리 형제들이 살아 있다는 몸부림이다. 언제 다시 저 나무를 돌보러 간다는 기약도 없다.
어머니가 남긴 집과 땅을 상속하는 서류에 형제들이 모두 도장을 찍었다. 오형제가 나누어 상속하면 복잡하니 제일 나이 어린 막내동생에게 몰아서 상속시키기로 했다. 오래오래 흩어지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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