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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어버이날, 우울하다

어버이날에 어머니 살던 집 마당에는 해마다 피는 겹벚꽃이 다시 피었는데 정작 어머니가 안계시다.



어머니 안계신데 어버이날 되니 내가 고아가 됐다는 걸 이제 느낀다.

아버지가 오래 전에 가셨어도, 요양원이라도 병원이라도 어머니가 살아계시니 별 느낌이 없었는데 오늘은 밀려오는 슬픔을 누를 길이 없다. 

엄마라고 부르면 안된다고 해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어머니라고 불러 살아계실 적에 "엄마"란 호칭을 전혀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천안 병원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시신을 고향 청양으로 모실 때 어머니 귀에 대고 "엄마, 이제 집에 가요." 말씀드렸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를 그리니 저절로 엄마란 단어가 입에 오른다. 나이 들면 말투나 억양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는데, 난 대학 들어간 스무살 이래 사투리를 일절 쓰지 않은 사람인데 엄마란 단어가 혀끝에 올라오고, 가끔 나도 모르게 충청도 억양이 나올 때가 있다.


이제야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된다. 아내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홉살 때 아버지를 잃고, 2008년에 겨우 68세인 어머니를 마저 보내드렸다. 어머니 가실 때 5자매인 처형처제들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텐데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잘 몰랐다.


딸이 카네이션 바구니를 어디 갖다놓았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난 내 부모 생각만 하고, 딸은 제 부모 생각만 하니 이처럼 다르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생일이랍시고, 어버이날이랍시고 전화나 드려 "뭐해?" 묻거나 "돈 좀 보냈으니 맛있는 거 사먹어." 말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제야 말이 짧았던 내가 안타까워 통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