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다. 너에게 정녕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있기는 있는 것이냐?"
붓다는 종종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 <나>라는 것은 있기는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아들고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내 변연계 뇌인 해마에 기록된 장기기억과 연대기기억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홀로그램 같은 것이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해마의 신경세포가 죽거나 여기에 베타 아밀로이드 같은 단백질 찌꺼기가 끼어 기능 장애를 일으켜서 생기는 질병인데, 이 치매 환자들은 자신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 자아라는 것도 없다. 이들을 관찰해보면 그 어떤 자아도 없이 동물적인 본능(질병 초기 포유류뇌만으로 움직이다가 점차 파충류뇌로 바뀌어간다)만으로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하고나 섹스하고, 먹으라고 하지 않아도 마음대로 먹고, 거침없이 돌아다니고, 툭하면 욕하고 소리지른다. 남아 있는 기억의 조각을 꺼내들고 사회복지사를 따라다니며 '아는 척'을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하고, 자기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오늘이 며칠인지, 아무런 시공간 감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도 원래 그렇게 태어났지만 부모로부터 '오늘은 몇월 며칠이다' 교육을 받고, 그들이 주는 달력을 보고 연월일을 의심없이 믿을 뿐이다. 누군가 우리 귀에 대고 '여기는 한국이고, 분단된 나라이며, 서울이며, 네 아버지는 공무원이며, 너는 유치원에 가야만 한다'고 속삭이며 이 홀로그램을 믿도록 하였다. 그렇게 해마에 연대기억과 장기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자아가 형성되었다.
바이오코드는 이 자아를 먼저 알아내는 학습부터 한다.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하지만 30년 같이 살아온 배우자의 정체를 '바이오코드를 통해 겨우 알게 되며', 나아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된다.
나는 3급상담사 이상의 학습자들에게 누누이 말한다.
- 내가 누군지 알아야 나를 버릴 수 있다!
나를 버리라고, 자아는 없는 거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조차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절에서 승려나 신도들이 반야심경을 외우고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아무리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떠들어도 그건 소리요, 그림자요, 허망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우리 상담사들에게 말한다.
색이 색인 줄 알아야 공으로 들어가고, 공이 공인 줄 알아야 색으로 들어간다.
색색즉공(色色卽空)이요, 공공즉색(空空卽色)이다.
궁금하면 들으러 오시라.
하늘이 언제 진실을 숨기던가.
다 드러내고, 다 말하고, 다 보여줘도 46억년 동안 아무도 모르다가 겨우 서기 1687년 아이작 뉴턴만이 중력(gravity)의 존재를 알고, 1916년 알버트 아인쉬타인만이 상대성원리를 알아냈다.
바이오코드? 46억년은 몰라도 지난 10만년은 엄연히 세상에 있던 것이다. 그걸 내가 겨우 1990년에 커튼을 살짝 들어올리고, 이제 방안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다.
그런즉 색색(色色)부터 공부하라. 그것이 바이오코드다.
난 가르치고 싶지 않다.
가르칠 수도 없다.
가르쳐도 안되므로 가르치기 싫고, 그래서 가르칠 수 없다.
붓다는, "난 충분히 노력했다. 알아듣는 이는 알아듣고, 알아듣지 못하는 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이제 그만 열반하련다."며 제자들을 버리고 사라쌍수 사이에 누워 색(色)을 버리고 공(空)으로 들어가셨다.
- 나는 너희가 원한다면 죽지 않고 몇억 겁이라도 이 세상에 머물며 중생의 무명을 벗겨주고 반야를 가르치고 싶었지만 너희는 내게 열반하지 말고 세상에 남아 가르쳐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아난아, 너도 그러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좀 쉬련다.
- 인도 쿠시나가라의 붓다 열반상. 붓다는 두 발을 모으고 모로 누운 채 열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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