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 붓다를 만나다(2)
* 이 글은 태이자 이재운이 손질한 것입니다. 원문을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 해당 번호의 글을 보십시오.
마야데비 사원 안은 다소 어두컴컴했다.
기원후 4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쯤이다. 당시 돌을 깎아서 부조를 하나 만들었다. 사라수 나무의 가지를 붙들고 아기를 낳고 있는 왕비 마야의 모습이다.
조각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붓다가 입멸한지 800년 후에 누군가 이 조각을 깎았다. 그건 붓다의 법을 품고서 석굴암을 깎고, 석가탑을 깎던 신라의 석공과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짧지 않은 세월이다. 돌은 닳고 닳았다. 옷이나 장신구의 세밀한 모양새는 이미 바람과 세월에 깎여버린 상태다. 그래도 윤곽은 뚜렷하다. 조각 속 마야 부인은 오른손으로 나무를 붙들고 있다. 그 나무의 이름이 사라수(沙羅樹)다. 왕비는 당시 아무런 고통 없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아소카(Asoka)’라고 부른다. 우리 말로 풀면 ‘무우수(無憂樹)’다. ‘걱정이 없는 나무’란 뜻이다.
나는 그 앞에서 눈을 감았다.
우리의 삶에도 나무가 자란다. 그 나무의 이름은 ‘유우수(有憂樹)’다. 우리는 늘 ‘걱정의 나무’를 붙들고 살아간다.
궁금하다. 걱정의 나무는 왜 자꾸 자라는 걸까. 아무도 원치 않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걱정은 언제 생겨날까. 답은 ‘어긋남’이다. 자신의 기대와 자신의 삶이 어긋날 때, 나무가 자란다.
‘아이가 대학에 합격해야 할 텐데’ ‘이번 프로젝트를 꼭 성사시켜야 할 텐데’ 하는 나의 기대와 눈앞의 현실이 헛돌 때 말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터이다. 불교는 그걸 ‘번뇌’라고 부른다.
그래서일까. 왕비 마야가 잡았다는 나무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 나무의 이름이 ‘무우수(無憂樹)’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무겁고 수고로운 짐을 진 자들아, 내게로 와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라고 말했다.
룸비니의 아소카 나무도 그런 희망을 건넨다.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로운 날들을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걱정이 없는 삶, 걱정이 없는 나라’를 제시한다.
사원 안 부조 앞에 서서 그 나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왕비와 머리 위의 나무와 태어나는 아기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 나는 무우수 일화가 왕자가 앞으로 체득할 ‘깨달음의 나라’를 암시한다고 본다. 걱정이 없는 자리, 번뇌를 여읜 자리. 실제 역사 속에서 출산 중인 왕비가 그 나무를 잡았든, 잡지 않았든 상관없이 말이다.
출산 장면을 담은 부조 옆 땅바닥에는 표지가 하나 있다. 유리관을 덮어 보호 중인 ‘마커 스톤(Marker stone)’이다.
인도인 가이드는 “여기가 붓다가 태어난 정확한 자리”라고 설명한다.
붉은 벽돌이 깔린 바닥에서 5m 더 아래에 이 돌 표지가 있다.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왕조는 마우리아다.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이 아소카(기원전 273~232년)다. 이 표지는 아소카왕이 만든 것이라 전해진다. 실제 기원전 249년에 아소카왕이 이곳을 찾아와 참배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니 ‘마커 스톤’은 무려 2200여 년 전에 표시한 자국이다.
당시 한반도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부족 연맹체적인 고조선 사회였다. 청동기와 철기 문화가 보급되고, 100년이 더 지나면 북만주에 부여, 압록강 유역에 고구려가 형성될 시기다. 이들 부족국가들은 대부분 하늘에 제를 지내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룸비니에서 태어난 아기 왕자는 놀라운 광경을 연출했다. 나자마자 동ㆍ서ㆍ남ㆍ북 사방을 둘러본 뒤,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음을 걸었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발을 떼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에서 연꽃이 올라와 받쳤다.
뿐만 아니다. 아기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한문으로 옮기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다.
사람들은 따진다.
“아니, 어떻게 갓난 아기가 걸을 수가 있나. 그것도 일곱 걸음씩이나.”
지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니. 자기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건가.”
“이건 너무나 독선적이다. ‘둘이 아님(不二)’을 설파한 붓다가 어떻게 이렇게 오만한 선언을 할 수가 있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 비판한다.
심지어 법정 스님이 번역한, 일본의 저명한 불교문학가 와타나베 쇼코의 『불타 석가모니』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비슷하게 풀이한다. 쇼코는 “지혜와 선정, 지계와 선근에서 자기만한 경지에 도달한 이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은 이러한 뜻을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마야데비 사원 안에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 아기 왕자가 둘러봤던 사방(四方)이다. 그건 막힘 없이 ‘툭!’ 터져 있는 우주다.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독선적 선언’이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쇼코처럼 “남들이 닿지 못하는 붓다의 경지가 최고”라는 풀이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천상천하 유아독존’에서 ‘독존(獨尊)’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만이 최고’ ‘붓다만이 진리’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마야데비 사원을 나왔다.
룸비니의 바깥 풍경이 아름답다. 물음이 올라온다.
“실제 갓 태어난 아기가 일곱 걸음을 걸었을까?”
“옹알이만 하는 신생아가 입을 열고 ‘천상천하’를 외쳤을까?”
물론 아니다. 과학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일화는 그저 지어낸 허구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더 깊은 상징과 울림이 도사리고 있다. 그 상징이 바로 이 일화의 존재 이유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사람들은 대부분 ‘독존(獨尊)’에 방점을 찍는다. 나는 달리 본다. 핵심은 ‘독존’이 아니라 ‘유아(唯我)’이다. 그럼 왜 ‘오직 나만이(唯我)’라고 했을까. 거기서 말하는 ‘나’는 대체 무엇일까. 바로 여기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있다.
아기 붓다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왜 하늘 위와 하늘 아래일까. 우주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이 우주를 관통하는 걸까.
다름 아닌 ‘붓다의 정체성’이다. 그렇게 우주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인공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유아(唯我)’이다. 그러니 ‘유아(唯我)’의 나(我)는 작은 나가 아니다. 큰 나다. 이 우주를 관통하는 오직 하나의 나다.
한국 선(禪)불교에서는 그렇게 큰 나를 ‘꽃’에 비유한다.
경허의 선맥을 잇는 만공(滿空ㆍ1871~1946) 선사는 그걸 ‘세계일화(世界一花)’라고 불렀다.
‘세계는 한 송이 꽃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
만공은 그렇게 노래했다.
붓다는 우리에게 그 꽃을 보라고 말한다.
나와 우주를 동시에 관통하는 관통하는 한 송이 꽃 말이다.
붓다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종종 오해를 받는다.
예수에게도 그런 어록이 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복음 14장6절)
이 대목을 인용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만이 유일한 문이다. 다른 곳에는 문이 없다. 예수를 통해야만 하늘 나라에 갈 수가 있다. 그러니 오직 예수다. 천상천하 오로지 예수만이 존귀하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보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궁금하다. 그런 예수는 오히려 ‘작은 예수’가 아닐까.
그건 유대인의 핏줄과 유대인의 육신을 갖고 2000년 전에 살았던 예수의 겉모습만 알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 예수가 말하는 ‘나’는 ‘신의 속성’이다. 그건 이 우주를 관통하며 ‘없이 계신 하느님’이다.
그러니 붓다가 말한 ‘나’도, 예수가 설한 ‘나’도 작은 나가 아니다. 큰 나다. 작은 눈을 가진 우리가, 작은 가슴을 가진 우리가 자꾸만 그 구절을 작게 볼 따름이다.
인도는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다.
인도인은 무려 3000년 전에 벽돌을 구워서 집을 지었다. 집은 물론이고 거대한 규모의 계획도시까지 건설했다. 인더스강 유역의 모헨조다로 유적이 대표적이다. 계획도시 한가운데 도로가 나 있고, 커다란 수로도 설치돼 있다. 인도는 그런 문명의 나라다.
룸비니 동산에는 탑(스투파)들이 많이 서 있다. 벽돌을 구워서 쌓은 탑이다. 지금은 탑의 밑둥만 둥그렇게 남아 있다. 그게 2200년 전에 세운 탑들이다. 한반도의 고조선 시대에 인도는 벽돌을 구워 탑을 세우고 건축을 했다. 그런 탑들의 둘레에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다.
동산에 바람이 분다. 시원하다.
사원 맞은편의 아름드리 보리수가 마구 흔들린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숱한 순례객들. 룸비니의 붓다는 그들을 향해 묻는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무엇이 홀로 존귀한가?”
“무엇이 숨 쉬고, 무엇이 노래하고, 무엇이 생각하고 있는가?”
그 물음이 걱정의 나무에 물을 주고, 걱정의 나무를 키우며, 걱정의 나무를 붙들고 사는 우리의 가슴에 표창처럼 날아와 꽂힌다.
룸비니=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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