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 스님. 星雲은 별구름이란 뜻. 천문학적으로는 별이 되기 전 상태인 Nebula를 가리킨다.
1927년 8월 19일생. 0540코드.
성운대사는?
41년 비구계, 49년 대만으로 건너와 불광산사 창건
대학·불교TV·신문 등 단일사찰 최대 포교조직
1922년 중국 강소성 강도(江都)에서 태어난 스님은 1934년 12세때 의흥(宜興) 대각사에서 지개(志開) 법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법명은 오철(悟徹), 법호는 금각(今覺), 필명은 마가(摩迦)이다.
1941년 서하산(棲霞山)에서 비구계를 받고, 서하율학원, 초산(焦山) 불산불학원에서 수학했다. 이후 백탑초등학교 교장, <노도월간(怒濤月刊)> 주간, 남경 화장사 주지를 역임했다. 1949년 대만으로 건너와 중리 원광사에서 머물렀다. 1950년에는 <인생월간>을 편집하고, 1952년 의란 뇌음사에 염불회, 홍법단 등을 조직하고, 1957년 대북에 불교문화 복무처를 세워 불교서적 및 불교음반을 출판하면서 포교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1967년 고웅현 대수향에 불광산을 세우고 그 전후로 수산불교학원, 중국불교연구소, 불교문물진열관, 불광정사(양로원), 대자육유원(고아원), 불광출판사, 불교진료소 및 보문중고등학교 등의 포교 및 복지기구, 교육기관을 설립해 교육, 문화, 자선구제사업 등의 토대를 만들었다.
1991년 타이뻬이 국부기념관에서 불광협회를 창립, 승속이 합심해 삼천대천 세계에 불광(佛光)이 두루 비치고, 오대주(五大洲)에 법수(法水)가 흐르게 하자는 ‘인간불교 및 인간정토’ 건설을 발원했다. 대만내의 40여개 말사와 전세계 30개국 40여 지원에서 4개의 종합대학(남화대학, 불광대학, 미국 서래대학, 호주 남천대학)과 13개의 불교대학, 불교위성TV와 불교일간지(인간복보), 불광의료원, 22개의 도서관, 8개의 미술관 등 단일 사찰로는 세계 최대의 포교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성운스님은 ‘사람들에게 신심과, 기쁨(歡喜), 편리함(方便), 봉사(服務)를’이라는 원칙아래 인간세상에 정토를 구현하기 위해 오늘도 설법과 자선사업을 쉬지 않고 있다.
불법을 외호하는 불자들, 법우들, 제자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진실한 고백을 하고자 합니다.
저의 일생을 남들은 제가 돈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는 빈궁하게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씻은 듯이 가난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저는 가난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 아이였고 마음속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노년이 되면서 학교를 여러개 짓고 문화재단과 출판사업등이 있다면서 아주 부유하다고 여깁니다. 그것들은 모두 시방대중의 것이지 제 것이 아니었기에 나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세상 여러 곳에 사찰을 지었지만 제 자신을 위한 집 한 채, 방 한 칸을 짓거나 자신을 위한 탁자나 의자 하나 가지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저한테는 기와 한 장, 땅 한평 없습니다.
불교 승가의 물건은 모두 다 시방의 공유물이지 어찌 개인의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 마음 속에는 세상을 다 제 것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일생에서 저는 사무용 책상을 써 본 적이 없고 수납장도 없었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마음을 써서 준비를 해주었지만 저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일생으로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산 적도 몇 번 없었고 돈을 모은 적은 평생동안 전혀 없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은 모두 대중의 것이며 불광산의 것이며 사회에 되돌려지고 있습니다. 모든 제자들도 ‘이 몸과 마음을 불교에 헌신하면서 인연에 따르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사람을 끌어 모으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저의 내심은 매우 적적하여 저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남들은 저에게 제자와 신도가 얼마만큼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들을 제 것이라고 여긴 적이 없으며 모두 다 도반으로서, 다들 불교에서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누구에게 돈을 나누어 준다거나 어느 건물과 토지는 누구에게 주겠다든지 하는 어떤 개인적인 물질적 분배를 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나의 많은 책들 가운데서 한권을 가져가서 기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원치 않는다면 저의 어떤 좋은 말이라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당신들에게 인간불교를 배울 수 있도록 하였을 뿐이고 당신들에게 도량을 보호하고 지키도록 하였을 뿐입니다.
저의 일생에서 모두들 제가 불사를 펼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는 아주 쉽게 느꼈습니다. 단체 창작에서 저는 단지 대중 속의 한 사람이었을 뿐으로 일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자연스러운 인연에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관리학에 능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실상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듯 다스리는(無爲而治)’ 이치를 알았던 것뿐입니다.
모두들 서로 돕고 협력해준 것에 감사하며 계율과 법제(法制) 이외에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사람을 관리할 권리가 없습니다.
세간의 모든 것에 대해서 생겼다고 기쁘게 느끼지 않았고 없어졌어도 아깝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마음이 내키는 대로 걸림이 없고 인연에 따르면서도 연연하지 않으면서 불도에 감응하고 불법에 부합할 수 있으면 가장 부유한 인생이라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생으로 ‘주는’ 철학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는데 항상 남을 찬탄해 주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네가지 업무지침을 정해 실천했습니다.
1,사람들에게 신심을 주자, 2,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자, 3,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자, 4,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자,
저는 사람들과 맺는 인연의 중요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에는 오직 모든 인연과 연을 맺고 모든 곳으로 불법의 씨앗을 널리 심고자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온갖 교육사업을 펼치려는 뜻을 세웠는데 그것은 어려서부터 제가 정규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에 교육만이 자아발전을 할 수 있고 사람의 기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글을 써서 책을 내고자 발심한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이어 내려온 불법의 흐름을 세간에 널리 전해주는데 저의 마음속 샘물을 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물러서는 것으로서 나서는 것으로 삼았고 대중을 자신으로 삼으며 없음을 있음으로 삼고 공을 낙으로 삼는다(以退為進 以眾為我 以無為有 以空為樂)’하는 인생관을 지켜왔습니다.
저의 출가제자들은 출리심(出離心)을 근본으로 하여서 출세간의 사상으로 입세간의 사업을 하고 간소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모아두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과거의 삼의일구( 三衣一具 : 비구들이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옷과 좌선용 바닥깔개), 두타18물(頭陀十八物 : 고대 대승비구가 지니면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18가지 물품), 의단 두 근 반(衣單兩斤半 : 수행자는 옷과 이부자리를 두 근 반 무게만큼 적게 소유함을 뜻함)이라는 많은 훌륭한 전통은 계율에도 부합되므로 다들 깊이 생각하고 숙지해야 할 것입니다.
불광산의 출가제자들은 개인적인 모연(募緣)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청탁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사업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음식을 만들지 않고 개인적인 제자를 두지 않고 개인적으로 금전을 저축하지 않아야 합니다.
불광산의 제자들은 개인적으로 도량을 짓지 않고 개인적으로 신도와 왕래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이렇게 할 수 있으면 불광산의 법맥은 더욱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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