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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우리 기자들, 영혼은 어디 저당 잡혔나?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때 북한에서 내려온 김여정을 가리켜 <백두혈통>이라고 침 튀기던 언론, 정말이지 재수 없었다. 그런데 김여정이든, 천안함 주범이라는 김영철이든 왜 이들은 모두 <방남>했다고 적는가? 오늘 보니 조선일보 사설조차 '방남'이라는 잘못된 어휘를 쓴다. 교열에 관한 한 조선일보가 제일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젠 옛날 이야긴가 보다.


방남을 따져 보자.

訪은 '할 말이 있어 찾아간다'는 뜻이다. 言은 '할 말'을 가리키고, 方은 방향을 가리킨다. 

여기서 方이 중요한데 동 서 남 북을 가리킨다. 물론 출발점은 '여기'다. '여기'는 김여정, 김영철 등에게는 <평양>이다. 따라서 방남의 지리적 위치는 평양이다.


만약에 가칭 평양방송이나 평양일보가 있어서 <김여정 동지가 방남한다>고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방남의 그 남인 서울에서 <김여정이 방남한다>고 말하면 틀리는 것이다. 기자가 현재 서울에 있다면 여기의 南은 오키나와나 필리핀이다.


좀 언어의 주체 정신을 갖자. 한국문화를 중국이 한류라고 하면 따라서 한류라 부르고, 러시아가 러시아동포를 고려인이라고 부르면 우리또 따라서 부르고, 심지어 러시아 발음으로 카레이스키라고도 부른다. 이게 다 영혼이 없는 기자들 때문이다.


- 북한 대표단, 방한하다

- 북한 대표단, 내방하다

- 북한 대표단, 판문점으로 내려와


정신 차리자. 지금도 몽골을 중국 따라 몽고라고 호칭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종의 근성으로는 자주국가가 되기 어렵고, 우리말과 한글이 세계 문화를 담는 그릇이 되기 어렵다.

지켜보면 알겠지만 평양에서는 남한 인사가 오는 걸 결코 <방북>이라고 하지 않을 거다. 언어생활에 관한 한 북한이 남한보다 더 주체적이다. 아직도 일본한자어 쓰는 자들이 수두룩하니 달리 할 말이 없다마는...


- 온 국민이 세종 이도를 찬양하지만 사실 이도는 한글 보급에 실패한 국왕이다. 

1446년에 반포된 한글이 1894년에야 겨우 공용문자가 되었다. 무려 448년간 멸시받고 천대받고 암클이니 언문이니 하는 비하 대상으로 밟혀 겨우 여성들 사이에서 살금살금 쓰이는 신세였다.

그런 것을 조선인이 아닌 스코틀랜드 출신 목사 존 로스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면서 한글은 드디어 우리 민족의 문자로 재탄생했다. 

만들었다고 다 쓰이는 건 아니다. 얼마나 많은 발명품이 사라지는지 안다면 세종 이도의 공만큼이나 존 로스의 공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존 로스의 공을 아는 사람은 0.0000001%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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