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붓다의 사람들/황금탑

보고도 모르는 <황금탑 10가지 명물>

국제여래선원/보문정사에는 10가지 명물이 있다.

참배 혹은 관광 목적으로 오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황금탑 문화유산해설사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미얀마 불자들은 Zaw Moe Aung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설명을 원하시는 한국인 참배객은 031 332 0670, 1899-3289로 예약하면 

운이 아주 좋다면 덕산 주지 스님, 태이자로부터 직접 해설을 들을 수도 있다.

2019년 6월에는 백옥으로 조성한 한국최초의 초전법륜상(붓다와 다섯 비구)을 모신다.


1. 한국 최초의 정통 미얀마식 황금탑


2. 한국 최초의 붓다 열반지 쿠시나가라 출토 진신사리


3. 황금탑 지키는 바라나시왕


4. 황금탑 지키는 함사새


5. 황금탑을 지어주신 시바리 존자


6. 황금대탑 불사를 책임 맡은 한국 최대의 백옥 산신


7. 돌아오지 않는 성인들 <아라한 1580명의 사리>(세계 유일)


8. 석가모니 붓다의 황금 발바닥(佛足相)


9. 퓨왕국의 왕자? 주지 덕산 스님의 전생의 비밀


10. 보문정사에는 탱화가 없다? 석가모니 붓다를 둘러싸고 있는 500아라한


그럼 사진으로 먼저 구경하자.

뜻은 천천히 새기겠다. (바빠서 미안합니다)


1. 한국 최초의 미얀마식 황금탑 <BBS 영상 보기>


- 미얀마의 쉐다곤 황금탑을 본따 미니어처 형식으로 지어진 15미터 황금탑.

108미터 황금대탑의 모델하우스이자 아나파나 명상센터다.

현재 이 탑에는 붓다의 진신사리, 아라한 사리 등이 모셔져 있다.


2. 한국 최초의 붓다 열반지 쿠시나가라 출토 진신사리

- 고고학적으로 붓다의 진신사리임이 증명된 국내 유일의 쿠시나라가 출토 사리.

인도 종정 가네쉬와르 큰스님께서 남북통일 세계평화를 위해 기증하셨다.

<붓다의 진신사리에 관한 가장 자세한 기록>


3. 황금탑 지키는 바라나시왕


- 바라나시왕은 황금탑을 지키는 불법의 수호신이다.


4. 황금탑 지키는 함사새

- 도량을 지켜주는 함사새.


5. 황금탑을 지어주신 시바리 존자


- 보시 공덕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사리불의 제자 시바리 존자. 

붓다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바리와 함께 있으면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시바리 존자는 작년만 해도 이곳에 홀로 서계셨으나 1년만인 지금은 오른쪽에 황금탑을 세우고 왼쪽에 최대 크기의 옥돌 산신을 두고 있다.

그 공덕이 무량하다 하여 미얀마인들이 사랑하는 아라한이다.

<시바리 존자가 그 힘을 보여주시다>

<시바리 존자가 오신다>


6. 황금대탑 불사를 책임 맡은 한국 최대의 백옥 산신


- 이 산신은 미얀마에서 출토한 백옥으로 미얀마 만달레이 조각가에 의해 조성되었다.

상반신은 2.3톤, 기단은 700Kg로 모두 3톤이다.

이렇게 큰 백옥 산신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보문정사에는 문수산 산신 탱화가 있는데, 이 백옥 산신상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산신들의 산신으로

현재 국제여래선원 도량에 있다.

<황금탑 지킬 백옥 산신상이 미얀마에서 오시다 >


7. 돌아오지 않는 성인들 <아라한 1580명의 사리(세계 유일)>



- 용인 국제여래선원/보문정사에는 아라한 1580분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보문정사는 처음부터 500아라한을 목조각으로 모셔왔는데, 아라한 사리를 인도와 미얀마 등에서 그동안 1580명 분을 모았다.

이는 세계 최대로, 이중에는 석가족 멸망 후 미얀마 북부로 피난 온 석가족 아라한 1500명의 사리가 포함되 있다.

사진은 바로 석가족 아라한 1500이 열반한 곳에서 출토한 사리다.

<집단 열반한 석가족 사리를 친견하다>


8. 석가모니 붓다의 황금 발바닥(佛足相)


<매우 자세한 붓다의 황금발바닥 108가지 이미지 설명>

<붓다는 지금 어디 계신가?>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2600년 전 그대로 따르는 미얀마에서는 붓다의 황금발바닥으로 불상처럼 우러릅니다.

보문정사 대웅전 왼쪽에 매우 작은 전각 하나를 지어 모셨습니다.

거기서 왕궁을 뛰쳐나가 세상을 돌아다닌 발, 깨달음을 얻고도 제자들을 찾아다니고, 중생을 찾아 돌아다닌 그 발을 만나 보십시오.

40년 동안 법을 나른 법륜 그 자체입니다.


- 가네쉬와르 인도 종정 스님이 주신 붓다의 발바닥.

용인 보문정사에는 어린 아이 키만한 큰 부족상이 모셔져 있다.



9. 퓨왕국의 왕자? 주지 덕산의 <전생의 비밀>


용인 보문정사 덕산 스님은 비밀 몇 개를 쥐고 있다.

출가 이후 남의 절 뒤치다꺼리하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발버둥쳐도 깨달음의 인연이 없나 보다 스스로 지쳐 태백산에 가서 열반을 꿈꾸었다.

그러다 지나가는 노스님이 발길질하며 가르쳐 준 말씀 하나 붙들고 도로 세상으로 나와 길을 갔다.

그 비법으로 내 절 하나 만들어 제법 떵떵거림며 살다보니 이게 아니다 싶어 히말라야로 갔다.

절 살림은 넉넉해졌지만 막상 반야의 맛을 보지 못해 몸부림친 것이다.

만년설이 늘 보이는 네팔 히말라야에서 낮에 일하고 밤에 아나파나를 하는 고행을 시작했다.

꿈을 꾸었다. 거대한 궁전으로 들어가는 꿈이었다. 거기에 그리운 가족들이 있었다.

<여기에 히말라야 수행 사진과 기록이 있다>


그러다가 소문이 나 인도 종정 겸 쿠시나가라 열반사 주지인 가네쉬와르 스님의 눈에  띄었다.

가네쉬와르 스님은 덕산을 제자로 삼고 싶어했다.

그러다 결국 태자의 옷을 입고 출가하는, 정통 출가 예법에 따라 붉은 가사를 새로 입었다.


가네쉬와르 스님은 보통 스님이 아니다.

우 찬드라마니 스님의 수제자로, 그가 중건한 열반사 주지다.

열반사는 바로 쿠시나가라의 석가모니 탑에 있다.

석가모니 열반 뒤 사리를 8등분하여 인도 전국에 나눠 탑을 세웠는데, 나중에 전륜성왕이라고 알려진 아쇼카대왕이 쿠시나가라를 제외한 7개 탑을 열어 그 속의 사리를 전세계로 더 널리 퍼뜨렸다. 그때 스리랑카로도 갔다.

그러자니 막상 인도에는 쿠시나가라 탑만 원형 그대로 남았다.

세월히 흐르고 흐른 뒤 마침내 이슬람이 쳐들어왔다.

불교를 숭상하던 인도는 느닷없이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쿠시나가라 열반사를 지키던 스님들은 이슬람 세력의 무지막지한 훼불, 승려 학살 소식을 듣고 붓다의 탑에 흙을 퍼날라 거대한 산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난리가 끝난 뒤 다시 돌아와 모시겠다고 맹세한 뒤 어디론가 숨었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은 떠나지 않았다. 인도 불교를 끝내 멸망시켜버렸다. 찬란한 불교문화를 이룬 중앙아시아도 모조리 이슬람 세력이 짓밟고 오직 알라만 믿도록 강요했다.

인도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은 완전히 이슬람화하고, 인도조차 엄청난 수의 이슬람 교도들이 산다.

승려들은 동으로 동으로 달아나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에 이르고, 거기서도 미얀마로 달아난다. 남쪽에서는 스리랑카로 달아나고, 그뒤 인도대륙은 완전히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되었다.

2011년 현재 인도(완전히 이슬람화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한)의 불교도는 0.70%다. 무슬림은 14.23%로로 힌두 79.80%에 눌렸지만 그 수는 어마어마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쿠시나가라 붓다의 진신사리탑은 영영 흙산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쿠시나가라 탑을 묻은 승려들은 죽고, 죽고, 또 죽어 아무도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전설의 실마리를 잡은 미얀마의 우 찬드라마니 스님이 쿠시나가로 가서 마침내 발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붓다의 진신사리게 세상에 나타나는 고고학적 대사건이 일어난다.

<붓다의 진신사리에 관한 가장 자세한 기록>


이처럼 우 찬드라마니 스님에 의해 출처가 가장 확실한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세상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제자 가네쉬와르 스님이 덕산을 제자로 삼아버렸다.

그러고는 당신의 서원을 세우셨다.

"한국에 황금대탑을 세우겠다"

<쿠시나가르의 인연> -> 동영상 파일이 없어 나중에 올리기로 함. 보문정사에 가면 볼 수 있음.


그렇게 해서 황금탑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가네쉬와르 스님은 미얀마 출신 인도인이다.

그러다보니 미얀마 큰스님들과 인연이 깊어 덕산 스님을 미얀마로 이끌었다.

그렇게 하여 쿠마라 미얀마 종정 스님, 국가천문위원회 의장 딱디야 스님, 자와나 스님 등 여러 큰스님들을 모실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중에 자와나 스님을 통해 아라한 삐냐저따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매우 복잡한 전생담 자타카가 나온다.

하여튼 덕산은 미얀마 고대왕국 퓨왕조의 왕자로 몇 번 태어난다.

<벚꽃 피는 날의 납량특집 / 자기 제사 지내러 미얀마 간 스님>                             

미얀마단기출가기 6 / 시간, 2000년 전 퓨왕국에서 오신 스님 삐냐저따, 당신을 따르리라                   

퓨왕조는, 석가모니 생전에 카필라 왕국이 망하는데, 이때 석가족들이 살륙을 피해 동으로, 동으로 멀리 피난한다.

그런 걸음이 미얀마 북부에 이르고, 그런 다음 미얀마 중서부 퓨 지역에 이르러 왕국을 세운다.


미얀마단기출가기 6-1 / 퓨왕국의 자타카(전생 이야기)


그가 누구든 파고 들어가면 어찌 복잡한 전생담이 없겠는가.

덕산 스님은 이후 삐냐저따 스님의 아들인 줄 알고 있으며

삐냐저따 스님도 덕산 스님의 아버지인 줄 알고 있다.

이런 얘기는 보문정사 차방에서 보이차를 마시며 들어야 더 재미있다.


10. 보문정사에는 탱화가 없다? 석가모니 붓다를 둘러싸고 있는 500아라한


보문정사 법당에는 탱화가 없다.

탱화는 티벳 불교 '탕카'에서 온 것이다.

붓다의 원형을 간직한 남방 불교에는 탱화 자체가 없다.

그런데 티벳 탕카는 별도로 모시는 그림이고, 불상 뒤에 모시지 않는다. 불상은 불상 자체로서 완전하게 자리를 잡을 뿐이다.


- 티벳 불상이다. 불상을 강조할 뿐 뒤에 우리나라 식 탱화를 걸지는 않는다.


- 우리나라 불상은 뒤에 탱화를 거는데, 거기에 또 붓다가 있다. 붓다 앞에 또 붓다가 있는 형국이다.

이에 비해 미얀마 불상은 뒤에 보리수나무 같은 배경화로서 존재한다. 즉 불상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일 뿐이다.


- 불상이 놓여 있고, 그 뒤에 보리수나무와 잎을 실제처럼 조성했다.

보리수나무만 입체이고, 나머지 뒤에 보이는 네 그루는 그림이다.


아래는 보문정사 불상의 배경이다. 

500명의 아라한상으로 꾸며져 있다. 물론 탱화는 없다.

황금탑 복장물 중, 금강산 신계사 벽화를 그린 신진환 불모가 500일 동안 매일매일 한 장씩 그린 500아라한도 붓다의 진신사리와 함께 들어가 있다.

현재 또 하나의 500일동안 매일매일 그려 모신 500아라한도는 국제여래선원 2층 아나파나 명상실 불단에 따로 모셔져 있다.

아라한 기도 때는 대웅전으로 모시고, 황금탑으로도 가시고, 특별 법회 때 옮겨다니신다.


- 보문정사 불상은 모두 500명의 아라한에 둘러싸여 있다. 이 가운데 한 분은 포대화상과 더불어 붓다의 옆에 앉아 있다. 

왜 이 한 분만 석가모니 붓다 옆에 있는지 그 이유는 덕산 스님께 질문하면 친절하게 답해줄 것이다.


<황금탑이 있는 절 용인 국제여래선원/보문정사>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11

문의 / 031-332-0670 1899-3239

안내/유승민 yuchunn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