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말에 탈고하려던 <우리 한자어 사전>이 해를 넘기고도 3월이 되어 겨우 끝났다. 물론 사전 편찬에 끝이라는 말은 붙일 수 없지만, 증보를 마치고 교정에 넘긴다.
대학원에 다니던 스물여섯 살 무렵, 문예창작과 연구조교로 있으면서 스승인 서정주 시인을 자주 모셨다. 그때 마침 서정주 시론을 한 편 써서 보여드리고 “선생님 시는 어쩌면 이렇게 깊은 맛이 날까요? 비결 좀 가르쳐 주세요” 하고 여쭈니 뜻밖의 말씀을 해주셨다.
“이 조교, 다른 거 애쓰지 말고, 일단 한문 공부부터 해. 한문 공부 안하면 글 못써. 한문으로 글을 쓰지 않더라도 공부는 해놔야 우리 글에 깊은 맛을 낼 수 있어.”
서정주 시에는 우리말이 매우 풍부하게 나오는데 이따금 등장하는 한자어가 감칠맛을 더했다. 그런 사실만으로는 스승의 말씀이 귀에 와 닿지 않았다.
다시 여쭈니 우리말 그릇이 본디 한자어고, 한자어는 한문으로 길들여진 말이니 그 그릇이 튼튼해야 서양 공부든 동양 공부든 제대로 담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어려서 서당 다니던 형 따라 천자문이며 통감을 웅얼거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한문 서적을 읽어 왔지만, 이때 한문을 더 공부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런 마음을 갖고 살다 보니, 친한 친구가 사고전서(四庫全書)와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를 구해다 주고, 후배가 약 8년간 수천만 원 들여 사들인 한문고서적 만여 권을 내 서재로 보내 마음껏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덕분에 우리말 한자어 사전까지 만들 수 있었다.
* 왼쪽이 <우리 한자어 사전> 3판본이고, 오른쪽이 4판으로 나올 시리즈의 표지 디자인이다. 이 책은 작년에 증보판을 낸 <우리말 어원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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