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한자 가르칠 필요없지만 한자어는 가르쳐야 한다

이 기사, 잘못 됐다.

어린이들의 어휘력이 모자라니 한자어를 더 가르치란 말이다.

난 반대한다.

이 기사에 나오는 단어조차 어린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고, 페이스북을 하는 어른들의 90%도 모르는 말이다.

등호, 상쇄, 빈어증, 융해, 기화, 액화, 문외한, 무뢰한...


오히려 문외한을 무뇌한이라고 써놓고 왜 틀리냐고 묻는 아이가 더 정직하다.

문외한, 무뢰한을 한자로 쓸 수 있는 사람은 1%가 안된다.

한자어 쓰면서 무뇌한이 말이 안되다고 하면 그건 다른 문제다.


나는 꼭 필요한 한자어의 뜻을 알고 우리말로 쓰자는 것이지 한자를 배우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문외한은 '문 밖에 있는 사람'이니 문 안에 있는 사람 즉 전문가가 아니라는 뜻이고, 무뇌한은 아마도 뇌가 없는 사람이란 뜻으로 어린이가 물은 모양이다. 그것도 말이 안되는 게 아니다.


앞으로 100년간 꾸준히 한자어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어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쓰면 된다.


그렇다고 한자를 1000자, 3000자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한자는 5000자를 배워도 어휘력과는 큰 관련이 없다. 한문과 한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영어 외우듯이 우리 한자어를 외우기만 하면 된다. 


이런 내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설명한다.


'순수하다'는 우리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더 '자세히 설명하라'고 요구하면 99%가 답을 하지 못한다. 한자야 어떻게 쓸지는 몰라도 그 뜻만은 99.9%가 잘 모른다. 알아도 안갯속을 보는 듯, 연기에 가려진 뜻을 보는 듯할 것이다.

한자어를 1000자 배우고, 3000자 배워서 될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한자를 어휘 중심으로 이해한 다음 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만든 <~우리 한자어 사전>에는 순수하다를 '다른 것이 전혀 섞이지 않고 원래 그대로, 티없이 맑고 깨끗하다'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순은 누에고치에서 막 뽑은 누이지 않은 비단 실이고, 수는 껍질을 벗긴 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옥편을 찾아보면 더 어렵다. 순 자와 수 자를 설명하는 항목이 굉장히 많아서 원래 무슨 뜻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사전 전문가가 아니면 진짜 뜻을 찾아내기 어렵다. 언어는 1차, 2차, 3차, 4차, 5차까지도 뜻이 변하기 때문에 큰 옥편일수록 더 헷갈린다.


우리말 사전을 보면 앞뒤 설명 없이 다짜고짜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다.'(표준국어대사전)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다.'(네이버 사전) 등으로 나온다. 많이 부족하다. 이런 사전으로는 어휘력을 길러줄 수가 없다.



<“선생님, ‘무뇌한’이 왜 틀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