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9.2.15-51회 / 백일장(白日場)과 망월장(望月場)?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 이재운 / 책이있는마을 / 304쪽 / 신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4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어원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3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한자어 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편집디자인 중 / 10년 5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숙어 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증보 중
백일장(白日場)과 망월장(望月場)?
- 백일(白日)? 망월(望月)?
삿갓 김병연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 선천부사를 통렬하게 꾸짖은 글은 영월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쓴 것이다.
백일은 흰 태양, 즉 햇빛이 가장 밝은 정오 무렵이니, 백일장은 들판에서 글을 써 겨루는 것을 가리킨다.
이 반대로 망월은 둥근 달이니 달빛이 가장 밝은 보름날 밤에 글을 써 겨루는 것을 가리킨다.
망월을 하려면 한 달에 하루이틀 밖에 없고, 그러고도 보름달이 되더라도 불을 밝혀야 붓을 쓸 수 있므로 주로 백일에 문장을 겨루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망월장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내가 대학 다닐 때는 진달래가 필 즈음이면 학과의 모든 교수와 학생이 산에 올라가 소풍 겸 백일장을 하였다. 청계산, 수유리 등으로 다닌 기억이 난다.
아래는 내가 김병연에 관해 개인적으로 더 붙이는 글이다.
- 김병연은 왜 삿갓을 썼을까
180년 전 일인데, 김병연이 백일장에 나가 자기 할아버지를 무섭게 꾸짖은 뒤 상을 받아오자 그의 어머니인 우리 집안 함평이씨(李儒秀의 장녀)께서 통곡하시면서 그제야 집안이 몰락한 까닭을 설명해주셨다.
깜짝 놀란 김병연은 그 길로 삿갓을 머리에 눌러 쓰고 세상의 눈을 피해 천하를 떠돌았다.
김병연이 삿갓을 쓴 데에는 세상이 잘 모르는 다른 사연이 한 가지 더 있다. 그저 할아버지가 참형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게 아니다.
홍경래가 난을 일으킬 때 우리 할아버지 이유수李儒秀(1769-1821)는 숙천 부사(肅川府使), 김병연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선천부사(宣川府使)였다.
- 조선시대 평안도 지도. 선천은 서해에 붙어 있고, 숙천은 더 안쪽에 있다. 숙천 아래 검은색 원에 평양이라고 씌어 있다.
말하자면 사돈끼리 가까운 곳에서 부사로 근무 중이었다.
그런 중에 운명의 장난으로 0705코드인 홍경래(바이오코드로 전두환이 이 코드다)가 가산과 박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선천과 숙천의 딱 중간이다. 선천이 먼저 공격을 받아 부사 김익순이 항복하고, 숙천의 사돈 이유수는 반군을 진압하는 군대를 이끌고 홍경래 군을 치러 나선 것이다. 이때 김병연의 어머니(함평이씨, 1787년생)의 어머니, 즉 할머니(원주 변씨, 함경북도 길주 목사의 딸)는 남편 이유수가 공무로 한양에 가 있던 중에 난리가 나자, 직접 병력 1500명을 모아 관아와 성을 지키고, 날랜 군사 20명을 한양으로 보내 임지로 돌아오는 남편을 지키게 했다. 무사히 숙천으로 돌아온 이유수는 1812년 4월 19일 홍경래 군 주력이 있던 정주성으로 병력을 이끌고 진군, 홍경래 군을 진압하는데 앞장섰다.
이 사건으로 김익순은 역적이 되고, 이유수는 공신이 되어 전라좌수사로 영전하셨다.
이유수 할아버지는 이 과정에서 딸과 사위의 몰락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한편 이유수보다 앞서 이창운昌運이 장군이 계셨는데, 이 분께서 종사관으로 기른 김재찬金載瓚을 가르쳤는데, 김재찬이 바로 홍경래 난 때 도체찰사가 되어 평안도와 황해도의 군대를 총지휘하여 난을 진압하였다)
(우리 할아버지 이창운 장군이 주인공인 김동인 소설 <벌번반년> 전문)
김익순의 일가는 하루 아침에 모반대역죄를 지은 집안이 됐지만, 사돈 이유수의 공적 등을 고려해 자식들을 몰살시키지는 않았다. 사정이 이러니 김익순의 아들 김안근과 그의 부인 함평이씨는 겨우 목숨을 건지고, 두 아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그 즉시 몰락 양반이다.(웃기는 일이지만, 매국노 이완용이 1907년 11월 총리로 있을 때 김익순의 신원을 건의해 1908년 4월에 명예가 회복되었다)
1811년, 김익순이 처벌되는 사이 김병연과 형 김병하는 외거노비 김성수의 황해도 곡산 집으로 피신하고, 남편 김안근은 여주로, 함평이씨는 이천으로 숨었다. 1813년에 가족이 가평으로 모이고, 거기서 세째아들도 태어났지만 곧 잃었다. 김안근도 그 무렵에 죽었다. 1815년, 함평이씨는 뗏목을 타고 여주에서 250리 길인 강원도 영월읍 삼옥리로 숨어들었다.
함평이씨는 둘째 김병연이 똑똑한 걸 보고는 광산김씨 족보를 사서 일종의 가짜 호구단자를 만들었다. 그래놓고 자식들을 길렀다. 그 사이 친정 집(당시 홍주로 지금의 광천읍, 내 고모가 여기 살았다)에 몰래 연락을 해 도움을 받았다.
1827년, 스무살이 된 김병연은 마침내 영월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였는데 그 지경이 된 것이다.
김병연은 안동김씨 쟁쟁한 세도가 일원이지만, 이 사건 이후 광산김씨로 신분을 세탁한 처지를 알고, 또 친할아버지가 대역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도저히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었다. 홍경래 난 때 만약 그의 친정 아버지인 이유수가 평안도 숙천에 근무하지만 않았더라도 친정집(함평이씨의 남동생인 이태서가 종4품 무관 통정부호군을 지낸 뒤 낙향해 살고 있던)이 있는 광천이나 일가가 있는 청양으로 내려와 살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두 집안은 거리가 벌어질대로 벌어져 있었다. 인편으로 몰래 돈이나 보내주고 받을 뿐이었다.
삿갓 김병연이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하늘이 부끄러워 천하를 떠돌 때, 기록에 따르면 외가가 있는 우리 청양에는 들른 흔적이 보이지 않고, 광천 외가에는 몰래 들러 어머니 안부만 묻고 떠나곤 했다 한다. 바로 그의 어머니 함평이씨가 모든 희망을 잃고, 부모마저 돌아가셔서 남동생이 살고 있는 광천에 내려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평이씨는 광천에서 사망하여 그곳에 묻혔다.
- 1995년쯤인가, MBC 다큐를 찍을 때 최창조 선생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나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삿갓은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 태이자 이재운 우리말 사전 시리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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