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며 글이며 마음대로 쓰기는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고나 쓸까?
글 써서 상 받아온 딸에게 단어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무슨 뜻인지 알고 썼느냐고 하니, 막상 제대로 아는 단어가 없어 놀란 적이 있다.
난 시를 읽어보기 겁나고 남의 글 보기는 정말 두렵다. 중견 시인, 중격 작가 글에서도 뜻에 맞지 않는 어휘가 어지러운 걸 보고 실망스러운 적이 많다. 페이스북 정도는 말할 가치도 없다. 그냥 소리지르고 짖고 지저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글이 많다.
내가 사전을 만들기 시작한 1994년, 이런 국어사전을 쓰느니 차라리 영어로 글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국어사전도 일본어사전 베낀 거고, 영한사전도 영일사전을 베낀 것이니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우리말로는 그저 잡담이나 하고 누구 욕이나 하면 적당할 것같고, 소설이나 논문이나 전문서를 낼 때는 영어로 쓰는 것이 더 좋을 것같았다.
당시 나는, 애도한다면서 애 하는 사람 못봤고, 아담하다면서 아가 뭔지 아는 사람을 못봤다. 야단친다면서 야가 뭔지 모르고, 약속하면서 속을 하지 않고, 물고기 양식하면서 식이 뭔지 모르는 것같고, 연습한다면서 그 연이 演인이 練인지 아는 사람을 보기 드물고, 예술한다면서 술이 뭔지, 오류라고 하면서 류가 뭔지 아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다.
그런 지 25년이 되어 내 손으로 여러 권의 사전을 만들어내고, 뜻을 가진 사전 편찬자들이 나서서 일본 총독부가 만든 조선어사전의 먼지와 때를 열심히 벗겨내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뭐하는 덴지 솔직히 잘 모르겠고,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도무지 효율이 너무 낮다. 현대차 연비 보는 것같다.)
이런 어휘 등이 이번 <우리 한자어 사전>에 많이 들어갔다.
한자 안배운 우리 딸이 우리말은 너무 어렵고, 사전 찾아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늘 불평한다. 대학 다닐 때는 어휘 물어보는 전화가 하루에 몇 번 씩이나 왔다.
다 일제 총독부가 만든 조선어사전을 베낀 것들이라 그 말의 진짜 뜻을 몰라서 그렇다고 설명하면서 아빠 사전 읽어보면 가장 시원하게 풀이돼 있다고 말한다.
대충 말하고 대충 알아들으면 시장이나 거리에서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대충 말해도 나는 어휘의 뜻을 두드리기 때문에 도리어 잘 들리지 않는다. 평소에 의학서, 과학서를 많이 보는데, 정말 저자를 불러다가 매를 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학술, 의학 논문 기사를 읽다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기어이 원문을 찾아봐야 겨우 내용을 알게 되는 때도 많다.
- 태이자 우리말 시리즈 심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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