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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덕산, 아라한 마인퐁 스님을 친견하다

어느 날, 국제여래선원/보문정사 덕산 스님이 Zaw Moe Aung에게 물었다.
"대웅아, 우리가 지금까지 미얀마 종정이시자 종교성장관이신 쿠마라 스님을 뵙고, 인도 종정 가네쉬와르 종정 스님을 뵈었다. 그 인연으로 불교대학장 나라다 스님도 알고, 수치 여사 친구인 호수 스님을 통해 마침내 삐냐저따 큰스님도 뵈었다. 또한 먀자욱 스님 등 여러 큰 스님들을 차례로 뵈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미얀마인들이 모두 다 존경하고 우러르는 최고의 큰스님이 누구시냐?"
"종정 스님도 유명하고, 나라다 학장님은 청년들 사이에 엄청나게 유명하시고, 우리 스님들이 다 유명해요."
"그건 안다. 그런데 더 유명하신 스님, 아니 유명한 거 말고 이 스님이 미얀마에서 가장 거룩하시다, 가장 부처님 닮았다, 가장 공부를 많이 하셨다. 이런 큰스님이 계실 것 아니냐."
"계시지요. 그런데 못만나요. 너무 유명해서요."
"누구신데?"
"눈 내리는 국경 동북부에 계시는 스님이 정말 유명해요. 미얀마, 태국, 라오스, 네팔, 부탄, 중국에도 유명한 스님이세요. 그런데, 아무도 못만나요."
"누구신데?"
"양곤에 나오지도 않으시고, 혼자 움직이시니 아무도 몰라요. 어디 계신지도 몰라요. 미얀마 사람들이라면 평생 소원이 마인퐁 스님 한 번 뵙자는 건데 그게 불가능해요. 꿈도 못꿔요. 성철 스님은 3000배 하면 얼굴이라도 보여주시지만 마인퐁 스님은 그런 것도 없어요. 그냥 못만나요. 쉐다곤 파고다 부처님이라면 가서 참배나 할 수 있지, 마인퐁 스님은 뵐 수가 없어요. 먼 발치에서도 뵐 수가 없어요."
"왜 그렇게 유명하신데?"
"그야 아라한이시니까요. 누구나 다 그 분의 법을 인정하고, 미얀마 60만 스님들이 우러르는 분이시니까요."
"그럼, 그 스님을 우리 절에 모셔야겠다. 그래야 황금대탑을 세울 수 있다."
"안돼요. 못만나요. 미얀마 대통령도 못만나요."
"시끄러. 내가 기도 좀 한 다음 미얀마로 떠나자. 넌 그 스님이 어디 계신지나 알아둬. 마인퐁 스님을 아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어떡하든 스님 동선을 알아내."
"물어보기는 하는데 안돼요."
"천신이 움직여도 안돼?"
"예?"
"해봐."

이처럼 국제여래선원/보문정사 덕산 스님이 미얀마의 전설적인 아라한 스님을 친견하겠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번번이 실패하였다.
올해는 기어이 소원을 이뤄보겠다고 정초부터 열심히 기도를 올리더니 무슨 감응이 왔는지 통역 Zaw만 데리고 훌쩍 미얀마로 떠나 여기저기 인연을 놓고 기다렸단다.
"이번에도 안되겠는데요."
"왜?"
"네팔 가셨대요."
"네팔이 안드로메다냐? 오시겠지."
"오시자마자 3년 동굴 안거 들어간데요. 아무도 못만다는데요."
물론 실망이 컸다.


그 사이 덕산 스님의 '전생 아버지' 삐냐저따 스님의 수행처인 마하미얀 숲에 머물렀다.

왜 아라한 스님 뵙기가 이처럼 어려운가. 이런 분들은 불사를 하지 않는다. 불사에 바쁜 스님은 보시를 청하느라 늘 신도들에 둘러싸이고, 깔깔거리는 보살들하고 눈을 맞춰 줘야 하지만, 수행하는 스님은 불사가 필요없고, 돈이 필요없다. 동굴이나 풀집 한 채면 넉넉하다. 밥 두 끼에 마실 물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행사에 나갈 일이 없고, 탁발 아니면 신도들을 만날 일도 드물다. 아쉬운 게 없고, 목표가 다르니 권력이나 인기나 돈으로 만나려 해도 안된다. 온종일 수행이니 제자라도 일없이 가까이 갈 수가 없다.


덕산 스님이 다른 일정 보며 한참을 기다리니 마인퐁 스님이 네팔에서 돌아와 3년 안거를 하실 동굴로 바로 가신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덕산은 이번이 아니면 안된다는 각오로 이틀 동안 예상 안거지인 골든트라이앵글(미얀마-라오스-태국 3국의 국경지대, 옛날 마약왕 쿤사가 활약하던 곳)로 달렸다. 못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라한 스님을 만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얼굴이나 한 번 친견하여 발심이나 크게 하자, 황금탑 짓는 불사에 기운이라도 좀 얻자, 그럴 뿐 딱히 얻겠다, 드리겠다, 그런 생각도 없다. 그냥 뵈면 넙죽 엎드려 절이나 드리고 싶을 뿐이다. 석가모니나 예수를 만난들 절 드리는 것 말고 딱히 뭘 묻고, 뭘 원하겠는가.
그래서 그 먼 동북부 산악지대로 가 인연이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만다는 각오로 마인퐁 스님이 주석하는 절에 가 서성거렸다. 그러던 중 누군가 코리아 스님이 뵙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슬쩍 말씀드렸는지 아라한 마인퐁 스님이 아지랑이처럼 슬며시 다가와 봄꽃처럼 갑자기 손을 내밀며 웃으셨다.


덕산은 오직 절만 드렸다. 미얀마 통역 ZAW가 있지만 골든트라이앵글은 태국어와 미얀마어, 방언이 뒤섞여 반은 알아듣고 반은 흘려들을 수 밖에 없다. 마인퐁 스님은 "3년 안거가 끝나면 코리아에 가겠다"고 먼저 말씀하셨다. 그렇게 또 바람처럼 어디론가 가셨다. 아라한 마인퐁 스님은 3년 동굴 안거를 준비하느라 며칠 머무시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마인퐁 스님과 여섯 번이나 더 만났다. 한번 터지니 봇물이었다.
마인퐁 스님은 만날 때마다 코리아를 입에 올리셨다. 코리아에 가야 한다, 코리아에 가겠다, 코리아를 보고 싶다.
그러면서 신표를 여러 번 나눠 주셨다.

스님은 수행할 때 물을 담아 마시던, 조롱박으로 만든 호리병을 주셨다.


그 다음에는 검게 칠한 염주를 주였다.




이 염주는 최근 놀라운 영험을 보였다. 이 염주를 받아 목에 걸고 다니던 한 신도가 죽어 다비를 했는데, 다 타고 남은 재에서 이 염주만 고스란히 남아 원형 그대로 있었다. 나무를 깎은 염주이고, 줄은 나일론인데 타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이 그 현장이다.



마인퐁 스님은 한편 덕산 스님에게 모자와 가사 한 벌을 줄 테니 동굴안거가 끝날 때까지 한국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3월 28일에 보문정사에 모셨다.


- 마인퐁 스님의 가사는 일반 미얀마 가사보다 두텁다. 겨울이면 눈이 내리는 곳이라 모자도 쓴다.

진철문 교수가 마인퐁 스님의 가사와 모자와 함께 보내오신 미얀마 고대 불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마인퐁 스님은 신도를 만날 때는 아무 거나 손에 닿는대로 주시는데, 한국 가거든 신도들에게 나눠주라고 5000원(KYAT) 지폐, 손목염주 등을 함께 주셨단다.


- 미얀마 돈 5000원 짜리에는 '성스러운 흰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상서로운 기분으로 흰 코끼리 한 마리를 모셔와 염주와 함께 불상 옆에 두었다.


- 덕산 스님이 마인퐁 스님을 만나는 동안 통역 Zaw가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라도 찍어두지 않으면 기회가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