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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가던 길 멈추고 2019

27년간 간직해온 배냇저고리를 딸에게 넘기다

내 딸은 2002년 2월 2일생이다.

예정일이 2월 28일인데, 26일이나 먼저 나왔다. 그러니 인큐베이터에서 15일 더 살다가 2월 17일에 퇴원하여 집으로 왔다.

태어날 때 몸무게 1.95Kg이고 퇴원할 때는 2.7Kg이었다.

이때부터 16년간 육이일기를 썼다. 어린이날 끝나는 무렵에 육아일기도 끝나야 하는데, 기윤이는 사정이 있어 그러지 못하고 더 적었다.


2002년 2월 17일, 집에 온 날부터 배냇저고리를 입었는데, 그 배냇저고리와 면 기저귀를 여태 갖고 있다고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집에 찾아온 딸 부부에게 돌려주었다. 배냇저고리를 지켜온 27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혼인하기 며칠 전에 일부러 빨래를 해서 햇볕에 말렸다. 그간 몇 번 빨래를 해가며 지켜왔는데 건네주기 전에 한번 더 빨고 싶었다.


- 배냇저고리는 한 벌 뿐이고, 나머지는 기저귀다.


어버이날에 어머니 생각 별로 안하면서 보내 보기는 처음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생각하면 산소라도 가보고 싶은데 막상 내 자식이 자라 혼인하고 보니 나도 애비 노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 걱정으로 날 새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

내 딸이 제 자식 업고 와서 내게 떠넘겨 주는 행복한 꿈을 꾼다.

작년 회갑년에는 잘 못느꼈는데, 올해가 되어 진짜로 만 60세가 되고 보니 여러 가지 관점이 달라지는 것같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이 혼인하니 이제 묘한 자유를 느낀다.

내 머릿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내 부모처럼 살 것인가, 훌쩍 떠나 자식에게 자유를 주고, 내 삶을 온전히 살아볼 것인가, 고민할 자유를 얻었다.

2018년이 지나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겠다고 맹세했었다.

죽든지 깨닫든지 기어이 해보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작년 11월, 삐냐저따 스님에게서 비구계를 받을 때 "부처님보다 40년이 늦었군." 하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식 출가도 아니고 열흘 출가인데, 그마저도 부처님보다 40년이 늦었다는 말씀에 전율이 일었다.


오늘 딸에게 배냇저고리를 내주며 홀가분한 자유가 밀려오는 것같다.

딸은 선물보따리 풀고 갔으니 당분간 아빠가 귀찮게 하지 않으려니 믿고 저희 세상에서 신나게 살 것이다.

딸이 결혼하기 전에는 딸이 아빠를 귀찮게 하는 존재였지만, 이제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아버지란 존재가 딸을 귀찮게 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어야 한다.

하늘이 늦었다고만 하지 않는다면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싶다.

바이오코드 30주년이 되는 내년을 목표로 새로운 화두를 잡을 생각이다.

60년 내 인생에 감사한다. 더 큰 공부에 나를 던져보련다. 공부에는 밀어주고 당겨줄 도반이 있어야 하니 도반을 구하는대로 일을 저질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