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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하늘이여, 문재인 대통령을 보우하소서

문재인 씨가 한국 재계 대표 30명을 청와대로 불러 '전례없는 비상 상황 장기화' 운운한 모양이다.

 

동학 항쟁(혁명이라고 부르자는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때 부적 붙이고 나가 싸우라 우기던 전봉준의 헛소리를 듣는 것같다. 부적 붙이면 일본군의 총에 맞아도 안죽는다는 거짓말에 농민들은 혹했다. 어리석음으로 치면 무슨 빠나 모 같잖은가.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그날의 전봉준이 되어 우리나라 재계 대표들더러 일본과 맞서 싸워달라고 요청하는가 보다. 부적이라도 주면서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문재인은 두 번의 실수를 했다.

 

1. 위안부 피해자 협상 국면에서 일본 정부가 보내오는 돈 100억원을 "국민 모금으로 대신 주자"며 국민을 선동했다. 하지만 이후 그가 국민모금을 시도한 적이 없다. 그래놓고 일본정부가 보낸 돈을 뭉개버리고, 그 사이 피해자들은 차례차례 사망했다. 돈의 액수가 많고 적고를 떠나 일본 국민이 낸 세금인 국고에서 보내온 돈이라는 상징과 의미가 적지 않은데, 그는 이걸 밟아버렸다. 그러고는 오늘까지 침묵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거의 다 돌아가신 마당에 정작 위안부 피해에 가장 큰 죄를 지은 대한민국 정부는 죄가 없는 척 딴청부린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의무인데,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에 대해 문재인은 일번반구 말하지 못한다. 당신은 대통령으로서 그분들에게 직접 보상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일본이 부끄러워했을 것이

 

2. 징용 피해자 재판 국면에서 문재인은 이들이 일본 전범 기업들을 대상으로 직접 청구하는 사태에 이르도록 방치 또는 유도했다.

일본은 원래 잔인하고 포악한 제국주의를 맛본 나라다. 동아시아를 다 먹어본 적도 있다. 그 기세와 뿌리가 지금도 남아 있어 아베만이 아니라 일본 국수주의자들의 머리에서 암세포처럼 활동 중이다.

그런 사악한 민족을 상대로 돈 몇 푼 달라, 그런다고 일본이 줄 것같으면 애당초 조선을 병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당한 것보다 더 비참한 중경대학살, 그거 사과하는 거 보았나. 혹시 베트남 정부가 우리 정부에 월남전 피해보상을 요구한 적이 있는가? 미국에라도 요구한 적이 있는가? 생각이 없어 안하겠는가?

내가 늘 말했듯이 재판은 재판대로 하여 일본의 범죄 진상을 밝히기는 하되, 그 배상은 우리 정부가 대신 했어야 한다. 그 돈 몇 억 아끼려다 지금 몇 조원의 손해를 보게 만들었다.

 

다시 말한다.

당신은 지금 조총(사정거리 400미터)이 대부분이고, 아직 삼국시대에나 쓰던 칼 들고 죽창을 치켜든 농민 2만 명을 데리고 있는 전봉준이다. 뜻이야 옳고 정의롭기는 하지.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는 조선군 3200, 이거야 물론 지금의 우리 물군대처럼 무시할 수 있지만 일본군 200명과 일본 육군에서 훈련을 받은 조선군 교도중대 350명을 보자.

이들은 영국제 스나이더 소총(사정거리 1800미터), 무라타 소총, 개틀링 기관총(분당 400발 발사), 크루프제 야포(75mm 속사포, 사거리가 무려 5Km) 등으로 무장했다.

 

게다가 일본과 조선이 먹느냐 먹히느냐로 싸울 때 미국이 어떻게 한지 당신은 역사를 공부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미국은 당연히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금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이쁘겠는가, 일본이 이쁘겠는가. 일본인들이 배알이 없어 부시한테, 클린턴한테, 오바마한테, 트럼프한테 털복숭이 푸들처럼 아양 떨겠는가. 저 사나운 아베 신조가 유독 문재인 씨에게만 바락바락 거품 물며 짖어대는데, 트럼프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치는 걸 보지 못했는가? 아베가 바보라서 그럴까?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까지 한 나라다. 그런 나라 총리가 왜 그럴까? 미국이라면 네이팜탄 1600톤을 도쿄에 쏟아부은 철천지 원수요, 핵폭탄 두 발을 투하하여 일본인 20만 명을 죽게 한 나라인데 왜 아베는 그리 고분고분하겠는가. 그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새가 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씨 당신은 그저 시골 서당에 앉아 한물간 유교원리주의 책이나 평생 읽어온 전봉준에 다름 아니다.

 

나 서른네 살 때인가, 일본에 단체관광을 간 적이 있는데 당시 어른들이 "한국은 100년이 가도 일본 못이긴다"고 말하는 걸 듣고 격분한 적이 있다.

과연 그런가.

한국 때문에 일본이 반도체 산업을 접고, 가전 산업에서 철수하는 걸 보지 못했는가. 네이버 라인을 우리가 카톡 쓰듯이 애용하고, 한국 가수들이 들어가면 온 나라가 들썩이는 걸 보지 못하는가.

 

하지만 아직 일본은 강하다. 모든 분야에서 기초가 튼튼하다. 노벨상 수상자만 24명이다. 우리는 노벨상 받을만한 학자들 데려다가 망가뜨리는 수준일 뿐 아예 기초가 없다. 노벨상 기금을 20, 민간연구개발기금을 40조씩 풀어도 여행비, 술값, 밥값으로 써제끼는 나라다. 그런데 정치마저 기초가 없이 아무 놈이나 줄 서면 뱃지 다는 천박한 수준이다. 경제가 정치를 걱정하는 수준이라니.

 

문재인 씨, 우리는 아직 분노를 표출할 자격조차 없다. 국민을 묶어도 시원찮은데 절반씩 갈라쳐 죽자 사자 싸우는 중이잖은가.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4%까지 떨어졌던 보수꼴통 무리를 지금 30% 이상 키워준 건 순전히 당신 탓이다.

 

세월이 지나 부적 붙인 농민군이, 2만 명 중에 겨우 수백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기관총에, 야포에, 최신 소총에 맞아죽어, 역사가 흘러흘러 백년이 지난 다음 '녹두꽃' 같은 드라마 한 편 만들어주면 끝인가? 그러면 죽은 농민군이 살아나며, 동학란을 계기로 조선을 아예 삼켜버린 지난 역사를 되돌릴 수 있는가?

 

당신의 조상이 무슨 독립운동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난 우리 할아버지 큰할아버지가 삼일운동을 하고, 집안에 있는 돈이란 돈은 모조리 긁어 만주에 보낸 집안에서 태어나 밥 굶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못난 왕이지만 그나마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내 직계 조상들이 선조 이균을 의주까지 호종했다. 육이오전쟁 때는 죽을 줄 알면서도 자기 자식을 등 떠밀어 보낸 1.4후퇴 전선에서 전사,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조상 자랑하는 게 아니라 애국심을 의심치 말라고 적는 것이다.

 

문재인 씨 당신은 이 나라 대통령이다. 그 책임을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북한에 끌려다니고, 중국에 당하고, 일본에 당하는 중이다. 미국은 줄듯 말듯 간이나 보는 것으로 보인다.

불쌍한 북녘 동포 생각하여 더 신중하고, 중국과 일본의 간계에 속지 말고, 미국 의도를 절대로 놓치지 말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 이 이름이 영광스러워야 우리 국민이 편안하다. 자유한국당과 애국당 몇몇 죄인들을 빼고는, 누구도 문재인 씨가 대통령으로서 실패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신의 임기 동안은 무조건 지지하며 국민의 의무를 다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일본과 전쟁을 명령한다면, 잘못된 명령이어도 기꺼이 전선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난 전쟁 소설을 많이 써봐서 10만 대군, 100만 대군을 이끄는 장수의 심정을 잘 안다. 고민 많을 것이다. 그럴수록 지혜롭게 판단하시기 바란다. 우리에게는 사사건건 물어뜯고 패싸움으로 금세 망할 것같은 더러운 민족성도 있지만, 위기 때마다 똘똘 뭉치는 희한한 재주가 있다. 그러니 국민 믿고 슬기롭게 싸우시라. 다만 문빠로 자유한국당 물리쳤다고, 문빠 수준으로 일본 상대하면 백전백패니 그리 아시기 바란다. 일본 국민은 우리보다 훨씬 더 책 많이 읽는, 그래서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아침에 아나파나 사티하다가 몇 줄 써보려다 좀 길어졌다.

하늘이여, 문재인 대통령을 보우하소서.


*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칭을 씨라고 한 부분은 개인이자 자연인 문재인을 가리키는 것이고, 대한민국 통수권자로 칭할 때는 반드시 대통령 호칭을 붙였으니, 문빠들 열내지 마시길.


 위부터 개틀링 기관총, 분당 500발을 쏠 수 있다. 

크루프사에서 만든 75mm 야포, 사거리 5000미터. 

드라마가 아닌 실제 전봉준, 관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중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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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재희


<우리는 카노사로 가지 않는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부르디외(Pierre Bourdieu)식 표현을 빌리자면 신성(神聖)로마제국 황제는 일종의 ‘상징자본’이었다. 

어둑어둑한 오리엔트의 가짜 기독교 군주 동로마 황제에 대응한다는, 유럽세계의 자부와 도덕적 명분을 그러모은 개념이 곧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는 가상의 권좌였다. 이 자리는 초기에는 프랑크 왕이, 나중에는 독일 황제들이 돌아가며 맡았다. 

천국문 열쇠를 쥔 또 다른 상징자본가인 로마의 교황과는 구조적으로 알력 다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자리였다.


1054년, 젊은 군주 하인리히 4세가 독일 황제에 오른다. 사내는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그는 곧 자기 수하의 궁정 신부를 대주교에 임명했다. 교황을 제껴버린 첫 도발이다. 

독일 땅의 대주교 임명권을 앉은 채 빼앗긴 교황은 분개했다. 

둘 사이 갈등을 쥐죽은 듯 지켜보던 관련자들은 시간이 지나며 차츰 국왕파의 패배를 확인하였다. 교황은 황제 및 황제를 지지하던 뭇 주교를 죄다 파문해버렸다.


황제에 충성하던 제후들마저 하인리히의 반대편에 서면서 그는 이제 궁정에 고립되는 처지가 되었다. 

1077년의 싸리눈 내리는 겨울,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머물던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Canossa) 성으로 향한다. 

아내만을 대동하고, 수북한 눈 밭에 맨발로 서서 그는 내리 사흘간 교황 앞에 파문을 철회해달라는 이벤트를 벌였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교황은 이윽고 자애로운 포고를 선언했다. 

네 죄를 사하노라!


이 파워 게임의 백미는 하인리히가 복권한 후다. 

그는 철저하게 이전의 실패를 복기했다. 

교황의 권세 때문에 이익을 침해당하는 여러 제후들을 살뜰히 챙겼고 본인 편으로 돌렸다. 

자신감을 회복한 하인리히는 다시 한번 싸움을 걸었고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로마 교황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본인이 직접 허수아비 교황을 옹립해 버린다. 

이듬해에는 독일 제후국 군대를 동원해 로마를 함락시켜버리기까지 했다. 

대역전승이었다. 

교황도 꽤 부덕하긴 했던지 자기네 로마시민들에게까지 쫓겨나 이태리 남부 살레르노에서 쓸쓸히 숨졌다.


들을 수록 드라마틱하다. 

야심가 독일 황제가 굴욕을 참으며 실력을 키운 뒤, 마침내 교황을 묵사발낸 서사. 

비슷한 얘기로 아시아권에서는 오왕(吳王) 부차에게 복수하고자 굴욕을 참으며 실력을 키운 월왕(楚王) 구천의 이야기가 포개어진다. 포로 생활하던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의 똥까지 먹으며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극도의 애교를 부렸다고. 

후일 월국은 국세를 키워 쇠락해진 오국을 보기좋게 무너뜨렸다.


이제 한국의 얘기로 가보자. 

2017년 드라마틱하게 집권한 한국의 신정부는 일본과 거의 모든 면에서 극단의 대립을 빚어왔다. 

일본 총리 면전에서 ‘미국과는 동맹이지만 일본과는 아니다’는, 노골적 파경의 선언을 했고, 위안부 지원을 위해 양국이 세웠던 '화해와 치유 재단'을 해산시켰다. 

국가 간 배상이 끝난 백년 전 강제징용자 배상에 민간 기업들더러 위자료를 물라는 한국 판결은 파국의 정점이었다. 

일본은 폭발했고 그제야 벼러온 일을 시작했다. 파문을 빗는 반도체용 핵심 3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는 지금 일본 정부와 그들 사회에 팽배한 분개의 ‘공기’를 처음으로 직면케 되는 광경이다.


일본이 이처럼 특정 국가에 대해 독자로 경제 제재에 나선건 2차 대전 후 처음이다. 

일본 총리는 한국이 군용 전략물자를 북한에 몰래 유출한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던진다. 

자민당 중진의원은 한국 대통령에게 ‘좀 더 어른이 되는게 좋겠다’는 세계사에 듣도 보도 못한 훈수를 두기도 했다. 

국내 일부가 정신승리처럼 떠들 듯 ‘참의원 선거 때문에 도발하는 것’이라는 말도 안타깝다. 

이미 일본 측 단기 손실 약 1500억, 한국 측은 54조라는 계산식까지 나왔다.


실책을 반복한다는건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나 귀감이 될, 곱씹어 볼 역사가 수두룩함에도 그렇다면 더욱 괴롭다. 

예 들자면 어떤 바보도 피할 수 있었다는 ‘병자호란’ 같은. 

17세기의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강한 청의 팔기군을 상대로 조선왕은 아무렇게나 행패를 부렸더랬다. 

본디 청황제는 명과 싸우느라 진이 빠져 조선과 다툴 의향도 없었다. 

9년 전 정묘년에도 이미 한번 혼줄이 나서 청과 형제의 연도 맺었던 사이였다. 


그런데도 조선 임금은 굴기하는 청제국에 기상천외한 모욕과 수작을 부렸다. 

청 황제의 친서도 거절하고, 청이 선물로 보낸 낙타는 길에서 굶겨죽였다. 

조선 사절은 청 황제에게 절도 안했다. 황제는 기가 막혀했다. 

그 짓들을 벌이며 싸움을 걸었으면 이기기라도 하던지. 

막상 심양에서 출발한 청군은 단 보름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싸움이고 뭐도 없었다. 

청군은 그냥 직선으로 시원하게 내달렸고 길 위의 민중들을 도륙했다. 

경기도 광주의 쌍령전투에서는 청나라 기병 300명이 조선군 4만을 멸절시켰다. 

방구석에서 온갖 소중화의 호기를 부리던 이들의 본 실력이 드러난 광경이었다.


조선 임금이 남한산성에 틀어박혔던 40여일은 싸우는 것도 항복도 아니었다. 

그것은 매우 조선다운 지리멸렬이요 자멸이었다. 같은 근본주의자들이지만 로마에 저항하던 시오니스트들은 요새 ‘마사다’에서 집단자살하며 전율할 정도의 비극적 종지부라도 찍었다. 

그러나 떵떵대던 조선 임금은 뒤늦게야 삶이 궁했다. 

그는 삼전도에서 평복을 하고 청 황제에게 흙밭에 머리를 박았다. 

차라리 카노사의 굴욕이 품위 있어보일만한 광경. 

청 황제는 조선 임금 앞에서 시원하게 오줌발도 털었다. 

그 꼴을 보면서도 그간 주전론의 온갖 명분을 떠들던 유학자 중 자결하는 이 하나 없었다.


본디 그렇다. 애민(愛民)이라곤 눈꼽만큼도 속에 담지 않은 권력자들일수록 말의 겉자락을 애민의 낌새들로 포장한다. 

소중화니, 명에 관한 사대의 도리니 하는 따위를 떠들던 고관대작들과 임금은 오랑캐 군주의 오줌 발 앞에 무릎 꿇고도 계속 잘 먹고 잘 살았다. 

그저 무명의 민중, 조선인 60만이 노예로 삼양성에 끌려갔을 뿐이다. 

거기서 굶어 죽고 맞아죽고 얼어서, 정절을 잃은채, 희망없이 죽어간 무수한 익명들이 있었을 따름이다. 

그들은 죄없는 민초였고 흠이라면 죄많은 군왕을 둔 운명에 속했을 뿐이다.


19세기 독일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교황과 대립하였을 때 유명한 의회 연설을 했다. 

"우리는 카노사로 가지 않는다.” 

더는 게임이 되지 않는 적에 대한 호기, 일테면 강자의 거드름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그런 거드름을 부리는 체급이 속히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경험상 그 정도 사이즈의 실력자가 되면 대개 쓸데없는 거드름도 별로 안부리게 되더라. 

패자의 컴플렉스나 적의(敵意) 같은 것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싸우자’는 화전론은 조선 임금과 주자학자들이 미쳐있던 약자들의 광기에 불과하다. 

강자는 본디 다 이겨놓고 싸우는 병법을 따른다. 

명분에 대한 뒤틀린 집착은 착색된 이념의 다른 말일 뿐이다. 나는 손사레치고 싶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졌잘싸’의 정신이라니. 

나는 아Q들의 정신승리에 편들어 줄 수 없다. 

그저 오늘도 울며 버티듯 살아야 하는 민초들의 생애에 편 들어 주고 싶을 뿐이다.


‘극일(克日)’이라는 말이 요새처럼 간절한 때가 없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언젠가 비스마르크처럼 ‘이제 카노사로 갈 일 없다’는 강자다운 심플한 외마디를 이죽거릴 수 있을까. 

그런 때가 오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