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재운입니다.
저는 1994년부터 우리말 사전 시리즈를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현재 10권 정도 만들어 그 가운데 5권을 펴냈습니다.
제가 만든 사전은 하나하나 새롭지만 지금까지 펴낸 책 중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과 <~우리말 한자어 사전>은 정말 별난 사전입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은 벚꽃이 피다, 한강이 얼다 등 늘 쓰는 표현이지만 그 의미가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정의된 어휘만 따로 모은 사전입니다.
언덕과 봉우리와 악과 산을 구분하는 법, 강아지는 언제부터 개가 되는가 같은 거지요.
우리말 사전은 다 제가 사랑하는 책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한자어 사전>은 정말 큰 공을 들여 만든 매우 귀한 책입니다.
한자어 사전이 뭐 그리 중요하냐,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말의 절반 이상이 한자어입니다. 그런데 한자 교육은 안합니다. 이런 상태로 한자어로 언어 생활을 하다보니 서로 뜻이 통하지 않고, 오해가 자주 일어나고, 무슨 뜻인지 몰라 서로 공감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어를 써버리는 일이 생깁니다.
세종대왕 시절, 양반들은 한문으로 자기 생각을 적어가며 말따로 문자 따로 살았지만 백성들은 문자가 없어 말을 글로 표현할 길이 없었는데, 지금 600년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고(倉庫)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 보면 '물건이나 자재를 저장하거나 보관하는 건물'이라고 나옵니다. 흐릿한 설명입니다. 올바르고 충분한 설명이 아닙니다. 우리말 사전 대부분이 이렇습니다.
창(倉)은 곡식 등 먹을거리를 보관하는 집입니다. 고(庫)는 무기, 수레, 가마, 자재 등을 보관하는 집입니다. 이게 정확한 겁니다. 중국에서는 창(倉)과 고(庫)를 하나만 써도 말이 통하는데, 거기는 4성이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단일음이다보니 장단이 맞지 않아 비슷한 한자를 꼭 두 자씩 묶어 뜻을 뭉쳐 써왔습니다. 차고, 곡창, 무기고 등 한자어에서는 이 구분이 뚜렷합니다.
행복(幸福)도 그렇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복된 좋은 운수'라고 나옵니다. 복이 뭔지 설명이 안나올 뿐만 아니라 이 설명은 매우 부족합니다. 이게 우리 국립국어원이 만든 사전의 현실입니다.
행(幸)은 나쁜 죄인을 잡아 수갑을 채우니 마음이 놓이다는 뜻이고, 복(福)은 왕실 제사에 쓴 뒤 푸짐하고 맛있는 고기와 음식을 나눠받다는 뜻입니다. 이제 또렷해지잖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만든 사전에서는 '마음이 놓이고 먹을거리가 넉넉하여 기분이 좋다'는 뜻으로 나옵니다.
자주 쓰는 '순수(純粹)'는 어떨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은 순수를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이라고 새깁니다.
저는 어떻게 새길까요?
순(純)은 누이지 않은 비단 실입니다. 누에에서 뽑은 명주실은 잿물에 삶아 희고 부드럽게 하는데, 그러기 전의 생실을 가리킵니다. 수(粹)는 껍질을 잘 벗기고 깎은 쌀입니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쌀알처럼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가리키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다른 것이 전혀 섞이지 않고 원래 그대로이며,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로 새깁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소설가인 제가 왜 우리말 사전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시지요?
저는 지금까지 아마 50권 정도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낸 것같습니다. 그중에는 350만 부가 나간 밀리언셀러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제가 받은 저작권료로 <바이오코드>와 <우리말 사전 시리즈>를 만드는데 모두 썼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땅 한 평 사지 않았습니다.
<바이오코드>가 뭔지 설명하려면 말이 길어지므로 생략하고, 저는 1994년부터 우리말 사전 시리즈를 공들여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사전 작업은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하고, 그만큼 자금이 필요합니다. 제 후배 소설가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등 저를 도와준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세상에 없던 사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직 제 힘으로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대여섯 종의 사전을 더 출간할 것입니다. 이미 원고가 끝난 지 오래 되었지만 거듭 고치고 있습니다.
전문가 혹은 전공자 등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하고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저는 국민 세금을 받아 일을 쉽게 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전 하나 만드는데 수십억 원씩 국가 지원을 받아 쓰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저는 신청도 안합니다. 저는 시장을 믿습니다. 필요하면 독자들이 저작권료로 저를 응원한다는 시장의 원리를 잘 압니다. 국가에서 수십 억원씩 받아 만든 사전, 실제로는 잘 팔리지 않습니다. 이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 우리 한자어 사전> 편집이 끝나 곧 인쇄에 들어갑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 이 책을 편딩해주시면 아마 저자인 저보다 더 먼저 새 책을 받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펀딩으로 관심을 가져 주시면 더 놀라운 사전, 이런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싶은 책 몇 권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출판사가 기운이 나야 제가 만드는 <우리말 사전 시리즈>가 때맞춰 척척 나옵니다. 출판사가 기운이 안나면 이렇게 두꺼운 사전은 출판되기 어렵습니다.
저에게도 잉크만 발라 출간해도 소설이 저절로 팔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어 소설로 큰 저작권료 수입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노래 한 곡 불러도 저작권료를 내면서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을 때에는 누구도 저작권료를 내지 않습니다. 노래 한 곡 만드는 데 드는 노력과 책 한 권 만드는 데 드는 노력을 굳이 비교하지 않겠습니다만, 이건 정말 너무합니다. 그래도 많이만 읽어주신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저야 소설을 쓸만큼 충분히 쓰고, 앞으로 서너 종만 더 쓰면 그만 둘 참이지만 <우리말 사전 시리즈>는 평생 계속 해야 할 일이고, 제가 없어도 누군가는 증보판을 계속 내줘야 하는 일입니다. 사전은 반드시 필요한 매우 중요한 책이지만, 그리 잘 팔리는 책은 아닙니다. 출판사에 미안하지 않도록 독자들이 더 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증보판이 끊이지 않고, 제가 만들고 있는 깜짝 놀랄만한 더 좋은 사전들이 제때 출판될 수 있습니다.
펀딩해주십시오.
펀딩이라는 거창한 말을 쓰지만, 사실은 그냥 한 권 사겠다고 예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제가 십년, 이십년 걸려 만든 좋은 사전을 밥값 정도의 적은 돈으로 사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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