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처음 배우던 대학생 시절, 힘이 넘쳐 하루에 100매(2만자)를 쓸 수 있을만큼 속도가 빨랐다. 나보다 더 빠른 친구도 있어 그는 한 달이면 장편소설 한 편을 뚝딱 써냈다. 물론 다 쓰레기로 사라진 습작이지만 어쨌든 써내는 속도만큼은 대단했다.
할 얘기가 왜 그리 많았는지, 술자리에 앉으면 밤이 새도록 할 이야기가 남았다.
이제는 글쓰는 속도가 '매우' 느려지고, 친구와 마주 앉아도 할 말이 별로 없다. 늙어서 그렇다면 이해가 쉬운데 아무리 생각해도 두뇌나 신체가 늙었다는 증거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수백 미터는 힘차게 달릴 수 있고, 매일 운동하니 조라치 친구처럼 관절이 덜그럭거리지도 않고, 또 누구처럼 귀가 잘 안들리지도 않고, 눈이 침침하지도 않다. 동무들과 이야기하다 그거 그거, 있잖아 하면 내가 그 명칭이나 이름이나 개념을 내 뇌에서 검색해 즉시 알려주니 뇌도 멀쩡한 것같다.
그런데도 글이 느리다.
오늘 아나파나 때 잠시 생각해 보니,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읽기만 해서 뒤주박죽해진 머릿속을 리셋(reset)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휴대폰 주소록을 편집한다. 등록되지 않은 전화번호는 저절로 끊어지도록 하면 그것으로 인연이 사라진다. 페이스북 등도 마찬가지라서 가르치거나 설득할 대상이 아닌 것같으면 그 즉시 삭제하면 그만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인 것같다.
인류 최고의 눈 <제임스 웹>이 우주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태양 빛이 없는 곳, 그러면서 적외선을 잘 포착할 수 있는 위치에서 눈을 떴다. 아마 6월쯤부터 사진을 보내올 것같다. 제임스 웹은 허블보다 더 먼 과거의 빛 '이른바 빅뱅의 흔적'을 잡아올 것이다. 가까이 있어 울고짜고 침튀기는 욕설 등의 잡스런 사진이 아니라 멀고 먼 100억년 전, 200억년 전의 과거 사진을 찍어올 것이다.
이런 기술을 가리켜 증폭(增幅)이라고 한다.
진공관과 트랜지스터(반도체)가 나오기 전, 인류는 증폭 기술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허공 중에 미세하게 흐르는 전파를 붙잡아 이를 증폭시키고, 그래서 움직이는 동영상도 재현해낸다. 허블망원경만 해도, 우주 공간 아주 먼 데 있는 가시광선 정도는 붙잡고, 이를 증폭시켜 우주의 비밀을 많이 밝혀냈다. 그러니 파장이 매우 긴 적외선까지 증폭시킬 수 있는 제임스 웹은, 허블보다 약 100배, 사람의 눈보다 100억배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바라보고 싶은 것은 더 먼 데 있고, 인류집단지성이 만들어가는 이 과학의 힘으로 그것을 마침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수라의 땅에서도, 그 존재마저 희미하여 보이지 않을 것이지만 진실의 씨앗이 어디선가 싹 트고 있을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 특히 20대, 30대에 대해서는 난 걱정하지 않는다. 다소 거칠고 소란스러워 보여도 이들 속에 인류 미래를 개척할 천재들이 많이 있다고 확신한다. 적어도 이들은 나처럼 소득 100달러 시대에 공부한 후진국 국민이 아니고, 3만 달러 수준에서 먹고 자라고 배운 세대다. 나와 차원이 다르다. 내가 허블이라면 이들은 제임스 웹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뉴스에 나오는 사기꾼 범죄자 무능력자들이 날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시대에는 다소 모자라고 나쁜 놈이어도 대충 종질만 잘 하고 주둥이질만 적당히 해도 국회의원되고, 장관하고, 시장하던 시절이었다.
제임스 웹이 어서 먼먼 150억 년 전, 우주 탄생 초기의 사진을 찍어주길 기다린다.
* 내 '제3의 눈'이 돼 줄 '제임스 웹'이 머나먼 우주 여행 끝에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과학자들이 모두 동의한 그 최적의 자리에 제대로 앉아 먼 옛날을 뒤지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3천년 전 인류역사부터 훑어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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