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30 (일) 22:33
사람은, 생명은 일단 태어나고 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 언젠가라는 것도 막상 그때가 되면 순식간이 된다.
순식간이란 눈 한 번 깜짝할 시간, 숨 한 번 쉴 시간만큼 짧은 시간이란 뜻이다.
내 집안 어른이 얼마 전 그라목스라는 제초제를 들이마시고 이 세상을 떠나셨다.
결혼해서 살다 싫으면 이혼하고, 회사다니다 싫으면 퇴사하듯이 세상 살다 살기 싫으면 자살하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가만히 기다려도 어차피 얼마 못가 죽을 텐데 굳이 목숨을 끊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분들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 테니 굳이 나무라고 싶진 않다.
하지만 제초제만은 먹지 말았으면 좋겠다.
죽는 것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게 내가 아는 한 제초제를 마시는 것이다.
살충제도 마찬가진데, 살충제는 그래도 살아날 확률이나 있지 제초제는 많이 먹든 적게 먹든 반드시 죽게 되므로 문제다.
제초제를 마신 사람들은 대부분 자살을 시도한 것을 후회한다. 살고싶다고 몸부림치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제초제를 마시면 살릴 길이 없다. 아무리 빨리 위세척을 해도 안된다. 얼른 죽기나 하면 욱하는 마음 가시기 전에 이승을 떠날 수 있겠지만, 제초제는 빨리 죽지도 못하게 한다. 빨리 죽어야 서너 시간, 대부분 하루이틀은 자살동기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가까스로 죽게 된다. 며칠 사는 사람도 있지만 고통은 마찬가지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할 정도로 제초제를 마신 고통은 끔찍하다.
죽을 때까지 촛불로 살을 태우는 것처럼,
죽을 때까지 바늘로 찔러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한다.
그제야 살고싶다, 내가 왜 약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하소연한들 누구도 돕지 못한다.
제초제 병뚜껑을 여는 순간 이미 저승사자가 던진 수갑이 두 손을 묶어버리는 것이다.
당장의 고통을 이겨보려고 자살을 하는 것이겠지만, 제초제를 먹어가지고는 그 고통보다 몇 배 더 큰 고통을 겪어야만 가까스로 죽을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사실을 널리 알려 아무도 제초제를 마시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죽으려거든, 죽기 전에 가까운 이들하고 의논해보고, 바람도 피워보고, 술도 마셔보고, 몸부림치다가 정 안되면 그때는 한 달 뒤쯤 죽기로 작정하고 준비를 하면 어떨까. 욱하는 마음에 당장 몸을 던지거나 약을 마시지 말고, 죽고나면 그거 치우는 일도 여간 아니니 죽어서까지 남 욕먹을 일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 장기 일기 예보도 보고, 이 겨울에 땅 파기 어려울까 싶으면 봄으로 좀 미뤄보고,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서 적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내년 봄에 필 진달래가 그리워서라도 한 철 늦춰본다면 더 좋고.
한 가지 더. 자식 끌어안고 동반자살하는 짓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남겨진 자식쯤 대한민국이 충분히 잘 기를 수 있다.
제 자식이라고 자기 부부가 다 만든 줄 알지만, 인간은 자식의 손가락 하나도 못만든다. 다 하늘이 만들어준 것이다.
누가 감히 자식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가. 자식의 눈을 들여다보라. 그 자식은 인간 따위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식 태어나게 하려고 한 일이라곤 겨우 그짓뿐이었다는 걸 다들 잘 알잖는가. 하늘이 한 일을 감히 자기가 했다고 우겨선 안된다.
그런데 하늘을 무참히 찢고 꺾어버리다니, 죽어서도 결코 편하지 못할 것이다. 자식 함께 죽이는 자살자는 사체를 육시하는 형을 만들어 시행하든지, 무덤에다가 '자식죽인놈' 이렇게 붉은글씨로 적어 말뚝을 쳐놓는 것도 좋겠다. 염할 때 '자식죽인놈'이라고 시뻘건 부적을 적어 함께 넣어주면 저승가서 감옥가든지 하면 더 좋고.
인간은 어차피 반드시! 죽게 돼있다. 죽는 것까지 당겨쓸 필요가 없다.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우울한 계절이다.
혼자 살거나, 쇼크를 받은 사람들이 있거든 잘 달래주고 기운나게 도와야 한다.
특히 배우자를 잃은 노인들, 그러고도 혼자 살아야 하는 이들의 외로움은 매우 심하다.
중년에 이혼한 싱글들도 위로가 필요할만큼 살맛이 안날 것이다.
하필 경기가 바닥을 치는 중에 오후 네 시만 넘으면 그새 깜깜해지는 계절인만큼 뼛속까지 시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자. 개그 프로 자주 보고, 노래방 자주 가고, 혼자 흥얼거리자.
음울한 노래는 부르지 말고 큰 목소리로 전화 자주 하고, 밝은 옷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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