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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라고라고 유행어

우리말은 표현력이 좀 떨어지다 보니 유행어가 자주 생긴다.

신조어가 나오는 건 좋은데 말이 안되는 말이 나와 한동안 휩쓸고 다닌다.

그런 유행어가 많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라고, ~라는'이 있는데 한번 짚어보자.

 

- 백두산이 높다라고 하는데 한라산도 높다.

- 엄마가 속이 불편하다라고 하는데 체했는가 보다.

-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게 좋다라고 하는데 난 아니다.

- 봄이 오면 제비가 온다라고 하는데 어째 아직 안온다.

 

예를 들다보니 더 억지스러운데, 요즘 방송이나 주변에서 이런 어법이 자주 들린다.

"~라고"는 다른 사람 말을 인용할 때 쓰는 어법인데, 말이 아닌 정의나 개념까지 포함하여 이 말이 남용되고 있다.

이 유행어는 말의 품격이 떨어지는 건 둘째 문제고, 발음이 흐트러지고, 이런 군소리 때문에 말이 복잡해지는 문제가 있다.

 

백두산이 높다는데 한라산도 높다-

봄이 오면 제비가 온다는데 어째 아직 안온다-

 

이렇게 짧게 말할 수 있는데 군더더기를 붙이는 셈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써야 의사 소통이 더 간편해진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우리말은 한창 자라는 중이기 때문에 이런 때일수록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바른 언어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이란 어차피 누구나 써도 되다보니 지적 수준이 떨어지고, 교양이 모자라고, 심지어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쓰는 데는 제약이 없다. 또 우리말 장점 중의 하나가 웬만하면 뜻이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식석상에서도 사투리를 쓰고, 노무현처럼 품위를 지켜야 할 자리에서도 상스런 말을 함부로 내뱉고, 군소리, 잡소리가 들어가도 어쩌는 수가 없다. 오죽하면 궁중어가 따로 있어 저희들끼리 고상하고 우아한 말을 쓰려 했겠는가.

(사투리 말인데, 고향 사람들끼리 만나거든 마음껏 쓰시고, 타향 사람 만나면 표준어를 구사해줬으면 좋겠다. 난 경상도 사투리나 전라도 사투리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휘가 너무 많거든. 우리 돌아가신 장모님은 지독한 밀양 사투리를 쓰는데, 빨리 말하면 내가 딱 절반도 못알아듣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고개 끄덕이려면 참 힘들어요. 제주도는 숫제 외국어같고. 그러니 표준어 쓰는 이 만나거든 표준어로 해주면 안될까?)

 

우리 집안 할아버지 한 분이 생전에 "설라므니 다설라므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그이는 무슨 말을 하려면 꼭 "설라므니" 하고 먼저 군소리를 넣고 시작했다. 나이가 들다보면 측두엽에 공급되는 혈액이 모자라게 되어 언어 기능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에, 노년층에서 이런 군소리가 많이 생긴다. 군소리는 한번 쓰기 시작하면 중독성이 있어 저도 모르게 자꾸 쓰게 된다. 말을 직업으로 하는 아나운서들조차 '에', '이' 같은 군소리를 쓰는 이가 있다. 저도 모르게 그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보면 친구들이 나서서 지적을 해줘야 한다.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도 내 친구가 '떡 하니'란 말을 무시로 쓰길래 1년여에 걸쳐 되풀이 지적하여 고쳐 준 일이 있다.

 

 

오늘날 미국어가 잘 정제된 영어를 뿌리로 하고 있지만, 온 세계에서 몰려든 갖가지 인종들이 뒤섞여 발음이 뒤엉키고, 속어가 난무하게 되었다. 미국 영어, 필리핀 영어, 영국 영어 등이 뒤섞인 것이다.

그래도 세계 최강국이 되다보니 미국 영어가 마치 영어의 표준처럼 굳어진 듯 보이는데, 실상 미국인들 중에서도 교양인들은 정통 영국 영어를 선호한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이나 이른바 귀족들은 영국 영어를 사용한다.

 

우리말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잖아도 저 북녘의 조선어, 남한의 한국어가 따로 놀고 있는데, 한국어 중에서도 이렇게 어지러운 군소리, 잡소리, 비문법적인 군더더기가 자꾸 들어가서는 안된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의사 전달 도구다. 도구의 가장 큰 기능은 효율이다. 그러자면 간단할수록,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이 단순한 것이 좋다. 이런 식으로 말이 어지러워지면 "내 말은 그뜻이 아니었다"고 늘 해명하고 다녀야 한다. 오죽 말이 어지러우면 정치인들이 늘 이따위 변명을 늘어놓겠는가. 어떻게 한국인끼리 한국어를 놓고 해석이 달라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