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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허신행을 읽다

오진 사례

오진은 사람의 건강진단에만 따르는 불행은 결코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정부가 벤처기업을 육성한답시고 국민들에게 주식투자를 적극 권장했던 적이 있다. 주가가 연일 하늘 높이 치솟게 되자 소위 ‘묻지 마 투자’가 성행했고, 심지어 시골 농민들까지 가세해 전국이 주식투자의 열기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주가가 어떻게 변동하는 것인지조차 잘 알지 못한 숱한 중산층 사람들이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듦으로써, 결국 주가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소위 ‘상투를 잡고 뒤에 깡통을 찬’ 사람들이 무려 3백만 명을 넘어섰다는 흉설이 나돌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주식 투자자들이나 정부가 주식변동에 대해서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로 빚어진 부작용이라고 여겨졌다.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방법과 요령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과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뛰어들었더라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식투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무지로 인해 마구잡이로 ‘묻지 마 투자’를 감행토록 방치해둔 결과, 한 나라의 경제마저 휘청거리고 말았다. 결국 주식 투자자들의 오진에 의해 일어난 웃지 못할 비극이었던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경제변동은 물론 자기 분야의 생산활동과 판매시장 등 전반에 대해서 오진을 하면 몰락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최근 임직원 30명 남짓 되는 조그마한 발아현미 생산업체를 가까이에서 자문해가며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적이 있다. 일본에서 새로운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맛 좋고 영양가 높은 이상적인 발아현미를 개발하여 충북 음성에서 생산하고 있던 업체였다. 하지만 시판에 들어간 지 채 3년도 되지 않아 부도로 몰락하고 말았다. 생산시설에 대한 과잉투자와 판매전략의 미숙으로 적자의 늪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것은 결국 기업진단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것을 반추케 하는 뼈아픈 교훈이었다. 이런 기업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싶어 걱정이 앞선다.

 

한국은 지금 기업들의 무덤으로 가득 차 있다고 자조 섞인 탄식을 자아내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는 2004년에만도 295만 개의 중·소기업들이 제 나름대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며 혈안이 되어 있다. 이 가운데 97퍼센트에 해당되는 286만 개가 소기업이다. 이들 중·소기업들의 평균 가동률은 68퍼센트에 불과하고, 이들의 부도율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린다. 창업을 한 중·소기업들이 3년 이내에 50퍼센트나 부도나고, 5년 이내에는 무려 70퍼센트나 무너진다는 사실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기존의 기업들도 가을의 낙엽처럼 부도가 나서 날개 없이 추락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왜 그럴까? 물론 각자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들을 가지고는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산업사회의 쇠퇴라는 거대한 변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 생각된다. 개별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을 지원, 육성하고 있는 정부 역시 문명사의 변화와 경제변동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결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대우를 비롯한 30대 재벌의 대부분이 넘어졌거나 공중분해된 뼈아픈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세계 문명사의 흐름과 국내외의 경제변화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데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산업사회를 이미 거쳤거나 말기에 놓여 있는 국가의 대기업들은 새로운 문명사회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변신을 꾀하지 못하는 한 몰락과 쇠퇴라는 불운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이렇듯 도중에 무너진 대기업들은 다가오는 새로운 문명사회와 국내외의 경제변화를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1990년대 중반에 한국소비자보호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명사를 연구하면서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살펴보게 되니 필자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변화의 흐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 관찰할 때, 산업사회는 자연의 계절에 비유하면 여름과 같은 것이다. 한여름에는 활엽수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듯이 산업사회에서는 대기업들이 가장 빠르게 그리고 활기 넘치게 성장하게 마련이고, 그 다음으로 중기업과 소기업 그리고 벤처기업의 순서로 성장·발전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비유된 여름이 지나고 나면 가을과 겨울이 오듯이 새로운 문명사회가 다가오면 대기업들이 제일 먼저 쇠퇴하고, 이어서 중기업과 소기업들의 순서로 점차 기울어지게 되어 있다. 마치 가을과 겨울이 다가오면 활엽수들부터 낙엽을 떨어뜨리듯이 말이다. 이런 추세는 하나의 자연질서에 속하는 것이다.

 

1996년 어느날, 필자는 한국 최고 재벌기업의 사장단 회의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 `‘새로운 문명사회의 진단과 경제전망’이란 주제로 특강을 하는 자리에서 대재벌의 몰락을 예고하였다. 산업사회가 끝난다고 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발전한 기업들, 특히 대재벌들이 제일 먼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계열사 사장들은 인내심을 상실한 채,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대단히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필자더러 그런 말 자체를 다른 곳에 가서는 아예 하지도 말아줬으면 하는 직설적인 주문이었다. 대기업들의 몰락은 국가경제 자체의 몰락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침통한 어조로 그들에게 대답했다. 필자가 다른 곳에 가서 말을 하건 하지 않건 간에 계절은 때가 되면 변하고 산업사회가 가면 대기업들부터―마치 가을날씨가 서늘해짐에 따라 큰 낙엽부터 차례로 지듯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리라고 타이르듯이 말하고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 필자의 예견은 그후 1년도 채 못되어 적중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 허신행 저 <한몸사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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