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게 된 이유는 오진 때문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기침이 이어져서 미국 미네소타 투윈 시티의 어느 병원에 들러 간단한 진단을 받아본 결과는 독감이라는 의사의 판단이었다.
일찍이 한국에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거의 다 수료했던 그는 필자의 대학 선배였다. 그는 부인과 함께 잉꼬부부로 알려졌고, 중절모를 옆으로 비스듬히 눌러 쓴 할리우드 영화배우 게리 그랜트 타입의 멋쟁이 신사였다. 그는 워낙에 건강했던지라 독감 한번 걸리지 않은 강건한 체질의 소유자였다. 그는 미국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자그마한 회사를 설립하여 해외로 우량 비육우를 수출하는 야심에 찬 학구적 비즈니스맨이었다. 부인 또한 식물육종학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역시 미국의 유수한 종자회사에서 중역으로 일하며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달변의 미녀 실력자였다. 이들 부부는 세계를 여행하다가 비행기에서 만나기도 하고, 해외의 어느 큰 도시에서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 인생을 낭만적으로 멋있게 즐기는 참으로 보기 드문 재주꾼들이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였고 여행체질이어서 감기 정도는 우습게 생각하고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만 먹었을 뿐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감기는 두 달이 지나도 좀처럼 낫기는커녕 점차 심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다시 들렀을 때는 이미 늦었다. 폐암 말기였다. 그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로부터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몸이 마를 대로 말라 뼈만 남은 채 그토록 사랑하던 처자식을 뒤로 하고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나고 말았다. 진단만 제때 제대로 받았더라면 그는 살아날 수도 있었다는 것이 슬픔에 잠긴 부인과 주변 의사들의 아쉬움 섞인 회한이었다. 오진이란 이처럼 사람을 죽이는 일차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요즈음에는 의학기술이 놀랍게 발달되어 조기진단만 제대로 받으면 어떤 암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데 말이다.
필자는 1970년대의 어느 때인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내용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수술을 받은 사람들의 75퍼센트가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었다는 표본 조사 내용이었다. 물론 의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는 그토록 슬프고도 끔찍한 이야기는 과거사일 뿐이다. 그러나 1970년대였다고 할지라도 진단이 제대로만 이루어졌더라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 가슴이 아린다. 하물며 후진국 같은 데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진으로 인해 죽거나 불필요한 수술을 받았어야만 했을까를 생각하면 끔찍한 느낌마저 든다.
- 허신행 저 <한몸사회> 중에서
- 해시계. 고대에는 시간을 재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학이었다. 지금은 그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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