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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민병덕의 <옛날에도 일요일이?>

옛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

민병덕 선생이 쓴 첫 저서의 제목이다.

민병덕 선생은 내 대학 후배요, 같은 군부대에서 근무한 후배기도 하다.

 

군 복무 시절에는 내가 상병이면 민 선생이 일병, 내가 병장이면 민 선생이 상병이었다.

그 무렵 부대에 법당이 없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 대대장을 설득해 어렵게 어렵게 법당을 꾸몄다. 그때 민 선생이 큰 힘이 되었다.

 

나야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를 간 스물여덟살 노회한 사병이라서 어린 장교들이고 하사관들이고 살금살금 머리를 써서 친하게 지내던지라 일이 어렵지 않았다. 군대 행정이라는 게 그리 머리를 많이 쓸 것도 없이 성실하기만 하면 되는 게 대부분이다. 민 선생도 대학을 졸업하고 갔지만 마침 예하중대에 근무하고 있어 시간을 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원래 본부대에 비해 예하중대는 실무가 많고 근무 기강이 센데, 그런데도 민 선생은 나를 따라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러 다니고, 자재를 갖다가 법당을 짓는 일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래서 내가 초대 군종, 민 선생이 2대 군종을 했다. 군종만 하는 게 아니고 일할 건 다 하면서 틈틈이 하는 군종이라서 둘이 함께 겪은 어려움이 많아 그 정이 참 오래 간다.

 

또 지금은 내 서재에서 멀지 않은 용인 모처에서 교사를 하고 있어 자주 만나는 편이다.

게다가 이 제목은 사실 내가 지은 거라서 각별히 아끼는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나온 민 선생을 붙잡고 다짜고짜 역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고 꾀어, 그 첫 작업으로 고려나 조선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보는 작업을 해달라고 권했다. 사실은 내가 소설 쓰는 기초자료로 쓰고 싶어 그런 것이고, 내 말대로 하다 보면 민 선생은 저서를 많이 낼 수 있게 된다고 꼬드겼다.

 

옛날 사람들은 뭘 먹고, 출근은 언제하며, 퇴근은 몇 시에, 점심 시간은 있는지, 점심 도시락을 싸가는지, 아니면 구내식당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내 직업이 역사소설가이니 이런 걸 자세히 알아야만 글이 자연스러워진다. 독자들이야 빙산의 일각을 소설로 읽지만 막상 한 권을 쓰려면 일반 도서 백 권 정도는 읽어야 가능하다. 물에 잠긴 빙산이 90퍼센트가 넘듯이 글로 표현되는 내용은 극히 일부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난 실증적으로 점검해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쓰는 우리말이 의심스러워 직접 사전 네 권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 데이터베이스까지 직접 만들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따로 바이오코드를 개발하고 보완해야 하는 일까지 있어 짬을 낼 여력이 없길래 꾀를 낸다고 낸 게 사학을 전공한 후배를 살살  꾀어 일을 시키먹는 것이었다.

 

우직하고 성실한 민 선생은 그저 선배가 하라는 일이니 무작정 열심히 자료를 뒤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작품이 <옛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다. 당시 민병덕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릴만큼 책이 팔렸다. 책이 워낙 좋다보니 이후에도 거듭 중판을 내어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단 시동이 걸린 민 선생은 내가 요구하기 전에 미리미리 연구를 하여 지금은 수십 권의 저서를 발표한 중견 저술가가 되었다. 나는 역사소설을 써오는 20여 년간 민병덕 선생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자료조사가 귀찮으면 그저 전화기에 대고 뭐뭐 알아봐 달라고 하면 민 선생이 알아서 여기저기 문헌을 뒤져 답을 만들어 이메일로 날려주었다.

 

내 나이에 백여 권 되는 저서를 갖고 있다고 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은데, 실은 내게는 엄청난 자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과거 역사소설을 쓰시던 선배 소설가들에 비해 나는 아마도 열 배도 넘는 자료를 갖고 있을 것이다. 사실 역사소설을 쓰는 작업은 자료조사가 대부분이다. 플롯 정도는 경험이 있는 작가라면 그리 시간을 많이 쓸 필요가 없다. 역사 사건은 그 자체로 플롯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경험이 있다보면 몇 가지 유형의 플롯을 사용하면 대개 무리가 없다.

 

그런데 내가 가진 그 엄청난 자료가 대부분 민 선생의 손길로 만들어졌다. 이 점에 대해 나는 늘 민 선생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내가 따로 경비를 준 것도 없이 그저 한 줌도 안되는 선배의 위엄으로 일이나 시킬 뿐 전적으로 민 선생 홀로 알아서 구축한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지 민 선생은 싱글이라서 처자식에게 시간 빼앗길 일도 없고 일요일이고 방학이고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한다. 난 딸 손잡고, 마누라 손잡고, 강아지 데리고 놀다가 자료가 필요하면 살금살금 다가가 민 선생 자료철을 뒤져 필요한 것만 슬쩍 얻어오면 만사형통이다.  

 

몇 년 전에는 또 꾀를 내어 민 선생더러 전국을 돌아다니며 역사유적지를 카메라로 찍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라고 했는데, 역시 적잖은 자료가 모였다. 그러니 어디 무슨 사진 하면 척 나오게 돼 있다. 소설에 사진이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전투가 벌어진 곳의 지형이나 그밖에 문물을 직접 보면 글 쓰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어떻게든 열심히 일 잘하는, 꾀 안부리는 민 선생을 더 꾀어 자료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세월이 너무 빨리 가는 것같아 아쉽다.

 

그런데 민 선생도 블로그가 있어(http://blog.daum.net/hannal) 이 책 내용을 소개하고는 있는데, 글자가 너무 작고 행갈이가 안되어 읽기 불편한 걸 보고는 내가 직접 여기 올리기로 했다. 꾀를 내는데는 내가 한 수 위니 어쩌는 수없다.

이 책은 나도 파일로 가지고 있어서 글 쓸 때 자주 참고한다. 민 선생 자료는 대부분 내게도 다 있어 글쓸 때마다 아주 요긴하게 보고 있다.

 

재미난 자료만 골라 올려보련다. 저작권은 민 선생에게 있으니 스크랩이며 복사는 해드릴 수 없다.

 

민병덕

1962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경기도 용동중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역사 교육에 필요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저서로는 <옛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가 있다.

그밖에 책이 참 많은데, 민 선생 블로그 프로필을 복사할 수 없어 이 정도로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