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의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
- 송나라 사람이 기록한 고려시대 우리말
우리 선조들은 어떤 말을 쓰며 살았을까?
불과 백년 전의 문학작품만 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수백년 전의 한글 기록을 읽으려 해도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시대를 더 내려가 한글 창제 이전의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 이르면 말할 것도 없다. 국어학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그런 중에 고려어를 한자로 기록한 책이 남아 있어 지금까지 전해온다. <계림유사(鷄林類事)>다. 송나라 사람 손목(孫穆)이 사신을 따라 고려에 왔다가 보고들은 고려어를 고려 발음 그대로 적은 귀한 책이요, 고마운 책이다. 왜 남의 나라 사람은 고려어를 적어 기록으로 남기는데 정작 우리 조상들은 그러지 못했는지 참 아쉽다.
손목이 고려에 온 게 1103년이니 지금으로부터 900년 전, 그때 우리 조상들이 쓰던 말이 생생하다. 한글이 없을 때라 한자와 반절 기법으로 적어 아주 분명하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나마 천만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송나라 발음만 알면 거의 음가를 구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왼쪽의 문자는 송나라 한자이고 - 친 오른쪽에 적은 한자는 손목이 송나라식 발음으로 우리말을 옮겨적은 것이다. 괄호 속에 우리말로 뜻을 적었는데 : 왼쪽이 고려 발음이고, : 오른쪽이 현대 발음이다.
참고로 우리말에 해당하는 송나라 발음을 적은 한자 끝에 붙은 ‘切’이란 반절(反切)로서 앞에 나온 두 글자 중 앞에서 머리를 따고, 뒤에서 꼬리를 따라는 의미다. 즉 해를 가리키는 ‘黑隘切’이란 곧 흑에서 ㅎ, 애에서 ㅐ를 따 ‘해’라는 한 글자가 된다는 의미다. 한글이 없던 시절에 이렇게라도 지혜를 써준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天 - 漢捺(하 : 하늘)
日 - 契黑隘切(해 : 해)
月 - 姮( : 달)
雲 - 屈林(구롬 : 구름)
風 - 孛纜( : 바람)
雪 - 嫩(눈 : 눈)
雨 - 霏微(비 : 비)
雷 - 天動(텬동 : 천둥)
雹(우박포) - 霍(확 : 우박)
電(번개전) - 閃(섬 : 번개)
霜露皆 - 率(서리 : 서리)
鬼 - 幾心(귀신 : 귀신)
佛 - 佛(불 : 부처)
仙人 - 遷(션 : 선인)
一 - 河屯(하단 : 하나)
二 - 途孛(두블 : 둘)
三 - 洒厮乃切(세 : 셋)
四 - 迺(네 : 넷)
五 - 打戌(다슷 : 다섯)
六 - 逸戌(여슷 : 여섯)
七 - 一急(닐굽 : 일곱)
八 - 逸荅(여듧 : 여덟)
九 - 鴉好(아홉 : 아홉)
十 - 噎(열 : 열)
二十 - 戌沒(스믈 : 스물)
三十 - 實漢(셜흔 : 서른)
谷 - 丁蓋(골 : 골)
泉 - 泉( : 샘)
井 - 烏沒(우믈 : 우물)
草 - 戌(플 : 풀)
花 - 骨(곶 : 꽃)
木 - 南記(남기 : 나무)
竹 - 帶(대 : 대)
栗 - 監銷(밤 : 밤)
桃 - 枝棘(복화 : 복숭아)
松 - 鮓子南(잣 : 솔을 잣나무로 잘못 적은 듯)
胡桃 - 渴來(가래 : 호두)
柿 - 坎(감 : 감)
梨 - 敗(배 : 배)
林檎 - 悶子訃(림금 : 능금)
漆 - 漆(칠 : 칠)
雄 - 鶻試(수ㅎ-수)
雌 - 暗(암 - 암)
雞 - 啄(닭 : 닭)
鷺 - 漢賽(한새 : 황새)
雉 - 雉賽(치새 : 꿩)
鴿 - 弼陀里(비두리 : 비둘기)
鵲 - 渴則寄(가지 : 까치)
鶴 - 鶴(학 : 학)
鴉 - 打(→柯)馬鬼(가마귀 : 까마귀)
雁 - 哭利弓幾(그려기 : 기러기)
雀 - 賽斯乃反(새 : 참새)
虎 - 監蒲南切(범 : 호랑이)
牛 - 燒去聲(쇼 : 소)
羊 - 羊(양 : 양)
猪 - 突(돝 : 돼지)
犬 - 家稀(가히 : 개)
猫 - 鬼尼(괴 : 고양이)
鼠 - 觜(쥐 : 쥐)
馬 - 末(말 : 말)
乘馬 - 轄打平聲(말타(다) : 말타다)
皮 - 渴翅(가지 : 가죽)
龍 - 稱(친 辰 : 용) * 미르
蟹 - 慨(게 : 게)
客 - 孫命(손님 : 손님)
士 - 進寺儘切(선비 : 선비)
工匠 - 把指(바치 : 공인)
稱我(나를 가리키는 말) - 能奴台(나 : 나)
問你汝誰何(너는 누구냐?) - 食婁箇(누구 : 누구)
祖 - 漢了秘(한아비 : 할아버지)
父 - 子丫秘(아비 : 아버지)
母 - 丫秘(아미 : 어머니)
男兒 - 丫妲(아달 : 아들)
女兒 - 寶姐(보달 : 딸)
父呼其子(아버지가 아들을 부를 때) - 丫加(아가 : 아가)
頭 - 麻帝(마디 : 머리)
面 - 捺翅(나시 : 낯)
眉 - 嫩步(눈섭 : 눈썹)
眼 - 嫩(눈 : 눈)
耳 - 愧(귀 : 귀)
口 - 邑(입 : 입)
齒 - 你(니 : 이)
舌 - 蝎(혀 : 혀)
面美(얼굴이 아름다운) - 捺翅朝勳(나시됴흔 : 낯이 좋은)
面醜(얼굴이 추한) - 捺翅沒朝勳(나시몯됴흔 : 낯이 못좋은)
胸 - 軻(가슴 : 가슴)
腹 - 擺(배 : 배)
手 - 遜(손 : 손)
足 - 潑(발 : 발)
洗手 - 遜時蛇(손시서 : 손씻어)
白米 - 漢菩薩(한보살:흰쌀)
醬 - 密祖(며주 : 메주)
鹽 - 蘇甘(소곰 : 소금)
魚肉皆曰(물고기나 가축고기를 이르는 말) - 姑記(고기 : 고기)
飯 - 朴擧(밥 : 밥)
茶 - 茶(타 : 차)
熟水 - 泥根沒(니근 물 : 끓인 물)
冷水 - 時根沒(시근 물 : 찬 물)
金 - 那論義(→歲)(누른쇠 : 금)
珠 - 區戌(구슬 : 구슬)
銀 - 漢歲(하인쇠 : 은)
苧 - 毛施(모시 : 모시)
被 - 泥不(니블 : 이불)
鞋 - 盛(신 : 신)
針 - 板捺(바날 : 바늘)
斗 - 抹(말 : 말)
船 - 擺(배 : 배)
下 - 簾箔(아래 : 아래)
傘 - 聚笠(슈롭 : 우산)
齒刷(이닦기) - 養支(양지 : 양치)
匙 - 戌(술 : 숟가락)
硯 - 皮盧(비루 : 벼루)
紙 - 垂(죠희 : 종이)
墨 - 墨(먹 : 먹)
刀子 - 割(갈 : 칼)
鼓 - 濮(붑 : 북)
弓 - 活(활 : 활)
箭 - 虄亦曰矢(살 : 화살)
畵 - 乞林(그림 : 그림)
問此何物(이 물건은 무엇인가?) - 設(→沒)(므슴 : 무엇인가)
老 - 刀(→力)斤(늘근 : 늙은)
大 - 黑根(하간 : 큰)
小 - 胡根(호근 : 작은)
高 - 那奔(노븐 : 높은)
深 - 及欣(깁흔 : 깊은)
이재운(소설가․『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대표 저자)
- 다음 제목 / 한자 발음, 그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생긴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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