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는 2000년 6월산 말티즈 여아, 성질 더럽고, 잘 물고, 잘 짖다 못해 눈치없이 아무한테나, 심지어 주인한테도 짖는 바보, 멍청이, 똥개다. 코커스파니엘 피가 3%쯤 섞여 있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바니는 원래 우리집에서 태어나 젖뗄 때까지 살았지만 5백미터 떨어진 집으로 분양갔다가 다섯살 때 파양되어 돌아왔다.
더러운 걸레뭉치같았다. 돈주고 미용하기 아까워 그냥 방치했던 것이다.
먹이는 사람이 먹다남은 걸 주고, 밖에다 매놓고 기르다보니 심장사상충에 걸려 있었다.
치료를 하고, 마취를 해서 미용을 시키고 들여다보니 얼굴이 예쁘장했다. 하지만 사납기까지 해서 사람을 보면 누구든 물려고 대들었다. 제 엄마도 몰라보고, 할머니도 몰라보았다. 음식을 앞에 두고는 제 엄마, 할머니를 마구 밀어대어 혼자 독차지하곤 했다.
2006년 여름, 집배원을 따라다니며 맹렬하게 짖다가 울퉁불퉁한 텃밭에서 발을 잘못 디뎌 급성 디스크에 걸렸다.
처음에는 힘겹게 걷는 이유를 몰라 15일간 방치하다가 아무래도 미심쩍어 동물병원에 가니 큰 병원에 가 치료를 받는 게 좋다고 하여 분당 해마루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주사와 약을 먹고 한 달만에 일어나 걸었다.
하지만 2007년 여름, 또다시 집배원을 쫒다가 디스크가 재발했다. 천성이 사나워 누가 우리집 근처에 얼씬거리는 걸 참지 못하는 성미 때문이다.
이때는 즉시 해마루병원으로 이송했다. MRI촬영 결과 디스크 두 군데에 문제가 있는 걸 알았다.
곧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에 들어가 일주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최대한 긁어내기는 했는데 혈관에 닿는 부분이 있어 깨끗하게 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퇴원한 뒤 게이지에 두었다. 움직이면 안된다고 하여 답답해 할 때마다 안아서 산책을 시켰다.
대변은 가능했지만 소변은 자력으로 보지 못했다. 시간 맞춰 짜줘야 했다. 그쪽 신경이 살아나지 않은 것이다.
2007년이 저물어갈 때까지 어떤 효험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서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는 수술이 실패한 것같다고 하고, 하반신 마비 증세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매일같이 뒷다리를 주물러주고, 일주일에 두번씩 병원에 가 침 치료를 받았다.
침 치료는 수술 직후부터 지역 동물병원 원장의 권유로 약 3개월간 받았다.
원장은 3개월이 돼도 효험이 없으면 없는 거라면서 시술을 중단했다.
2008년 봄 침 치료에도 효과가 없자 동물병원 원장이 애가 불쌍하다고 무료로 휠체어를 제작해 주었다.
휠체어를 채워 내놓으니 달리고 싶은 열망에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하지만 기계적인 문제가 있어 자주 태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마비된 뒷발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휠체어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다른 처방을 쓰기로 했다.
일단 서는 연습부터 시켰다. 1초, 2초, 3초, 이렇게 뒷다리를 지탱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운동은 역시 좋은 모양이다. 그간 근육이 풀려 힘이 하나도 없던 애가 주인의 끈질긴 노력으로 대략 20초까지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넓은 천을 아랫배에 걸쳐 위에서 잡아당기면 휠체어 없이도 걸어갈 만했다. 그렇게 억지로 데리고 다녔다.
다리에 힘은 없지만 앞발이 나갈 때마다 뒷다리가 춤을 추듯이 움직였다.
2008년 여름, 뒷다리를 일으켰다가 놓아주면 서너 걸음을 혼자 가곤 했다. 재빨리 달리다가 쓰러지는 식이었다.
훈련을 계속했다. 9월쯤에는 열 걸음 이상 나가다 쓰러졌다. 11월에는 20걸음 정도 더 나가다 쓰러졌다.
잔디밭에서는 저 혼자 일어나 걷다 쉬다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딱 한 번, 국화꽃 사이에서 비틀비틀 서 있다가 자력으로 소변을 보았다.
그러다 겨울이 되어 운동을 더 하지 못하고 마사지만 해주었다.
2009년 3월, 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5월 현재, 쓰러지지 않고 100미터 정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한번 쉬면 또 100미터 정도 갈 수 있다.
하지만 미끄러운 데서는 서지 못한다. 특히 집에서는 장판이 미끄러워 뒷다리를 끌고다닌다.
소변은 아직도 자력으로 보지 못하지만, 이따금 산책 중에 자력으로 볼 때가 있다.
신경이 살아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더 관찰해야 알겠지만 신경이 살아나서 걷는 것인지, 단지 근육의 힘으로 걷는 것인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디스크 견들이 이따금 걷는 기적을 일으키곤 하는데, 대개 근육의 힘으로 그런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 애가 신경이 살아나 걷게 된다면 소변을 자력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더 운동을 시켜야겠다. 여기까지가 그간의 바니 관찰기다. 저 아래에 사건별로 적어놓은 글이 있는데, 한번 정리해보았다.
바니는 이제 꽃다운 10살인데 못살아도 앞으로 10년은 더 산다.
작년에 간 요크셔테리어 도조가 눈물을 흩뿌리며 19세로 갔는데, 이 아이는 꼭 스무살을 넘기고 싶다.
주인인 내가 불편하지만 저만큼 불편하지는 않다.
아직도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보면 으르렁대고, 도무지 애완견 티가 나지 않는다.
인터폰이 울리면 동네가 다 떠나가라 짖어대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래도 다 용서한다. 잘못 분양한 내 잘못이 크니 어쩔 수 없다. 왜 내가 녀석을 믿었던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친구가 하도 달라고 보채서, 데리고 자마, 맛있는 거 먹이마, 미용 잘 시켜주마, 목끈 따윈 안매마, 별별 소릴 다해서 분양했는데 녀석은 정신분열증 환자답게 하나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 친구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아니고 방에서 데리고 자는데 시어머니가 야단해서 기어이 밖에 내다놓았고, 사료 아깝다고 잔밥 먹이라고 해서 또 그렇게 먹이고, 사람들 드나드는데 너무 짖는다고 해서 묶어 놓았을 뿐이고, 똥개 사다 길러 파는 시어머니가 미용은 무슨 돈지랄할 일 있느냐며 집에서 쓰는 가위로 가끔 자르다말다 했을 뿐이다. 바니는 생후 6개월부터 이런 비참한 지경에 빠져 구조될 때까지 약 4년 반을 그렇게 살았다. 그 사이 분노한 내가 바니를 데려다가 내 돈으로 미용을 두 번 시켜 주곤 했다. 그뒤 그 동네를 이사나와 바니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그 동네 사는 한 선배가 기어이 바니를 데리고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어 막무가내로 데려왔다고 했다.
도리가 없어 정신분열증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개를 이렇게 학대한 놈은 감옥에 간다, 넌 나쁜 놈"이라고 욕하니 "어머니왈, 잘 짖는 개라면서 그간 먹인 사료값은 받아야 한다며 5만원 받으면 주라더라."고 한다. 5만원 주고, 미용비 3만원 내고, 심장사상충 검사하고 치료하는데 십몇 만원 내고 바니를 리콜했다.
그러니 내가 바니한테 찔리는 것이다. 보기만 하면 그 생각이 나서 지금도 미안하다. 미안한 마음이 지나쳐 살이 찌는 게 문제다.
이렇든 저렇든 과거지사는 묻어야 하고, 바니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다 죽은 마당에 얘라도 지켜야 한다. 바니가 예뻐서 그런 게 아니라 바니 엄마 다래, 바니 아빠 도반, 바니 할머니 도리, 바니 할아버지 희동, 바니 증조할아버지 도담이가 그립기 때문이다. 우리집 애견의 역사가, 그 아이들의 유전자가 이 아이 하나에 남아 있으니 바니는 박물관이요, 역사관이요, 추모관이다. 그러니 반드시 바람을 가르며 뛰다가 쪼그려 앉아 질펀하게 소변을 보는 모습을 보고야 말 것이다.
'기록의 힘 > 바니 도란 도조 도쉰 다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니, 뒷다리를 동시에 차다 (0) | 2009.07.02 |
---|---|
바니, 저승에 다녀오다 (0) | 2009.05.19 |
좋고도 더 좋다 (0) | 2009.03.21 |
도롱이가 8년만에 찾아오다 (0) | 2009.03.09 |
바니의 연말연시 (0) | 2009.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