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친일파란 어휘는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가장 뜨거운 낙인이다. 잘못 혀를 놀리면 친일파로 찍히고, 그러면 대소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나야 뭐, 연예인이나 가수가 아니니 덤벼봐도 혈투를 각오해야 할 테니 별로 덤빌 사람이 없으리라고 믿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 낙인(烙印) : 쇠붙이로 만든 글씨를 불에 달궈 가축의 엉덩이에 새기는 표지. 혹은 사람의 이마에 먹물을 넣어 글씨를 새기는 일을 포함하기도 함.(주홍글씨). 여기서는 그처럼 사람을 지목하여 면박을 준다는 뜻.
나는 이 친일파란 어휘에 대해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비를 걸어왔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병자호란 때는 친일파란 낙인 대신 환향녀란 낙인이 있었다. 남녀가 똑같이 청나라에 잡혀갔다 왔는데 남자는 무죄고, 여자만 환향녀란 낙인이 찍혀 온갖 멸시를 당하고, 심지어 자살을 강요받기도 했다.
친일파 논란은 고려시대에도 있었다. 몽골족이 세운 세계제국 원나라가 저물어가자 무려 100여년간 그 단맛을 즐겨온 고려가 느닷없이 반원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난리가 났다. 이미 자신의 몸속에 몽골인의 피가 절반 이상이나 흐르는 공민왕이 철저한 반원 정책으로 돌아선 때문이었다.
* 공민왕의 반원 정책 : 난 달리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공민왕은 어려서부터 원나라 수도 대도에 가서 황제 숙위를 오래도록 지낸 사람이다. 고려 세자는 일찌감치 대도에 들어가 생활하는 게 당시 법도였다. 볼모라면 볼모고, 황실가족이라면 황실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몽골말도 잘하고, 몽골 문화라면 모르는게 없을 만큼 철저한 친몽골인이다. 또 공민왕의 몸속에는 고려인의 피보다는 몽골인의 피가 더 많다. 왜냐하면 원종 왕전의 아들 충렬왕이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면서 그 밑으로는 내리 몽골 공주들과 결혼을 했다. 그러니 그 아들 충선왕은 한몽 피의 비율이 50:50이라지만 내려갈수록 달라지니 막상 공민왕에 이르러서는 거의 100% 몽골인과 같다. 따라서 그의 반원 정책은 몽골 황후가 되어 세력을 떨치는 기황후와 그의 친인척들이 고려 정사에 대해 시시비비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책이지 무슨 대단한 독립정신이 있어서 그랬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냥 세력다툼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당시 홍다구 일족을 가리켜 매국노라고 했는데 사실 홍다구 아버지 홍복원이 고려를 떠나 원나라에 귀부할 때는, 고려가 왕실이 아니라 군부에 의해 통치되던 시절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몽골군 내습 때의 고종은 왕의 품격을 지니지도 못했다. 일본처럼 왕궁이 따로 있어 거기 있는 동안은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무인정권 실력자가 이리저리 돌려 숫제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나가라면 나가고, 우리집 사랑방에 와 있으라고 하면 그러는 거다. 요즘 말로 치면 '바지 왕'이다. 그런데 이때 군부는 몽골군의 침입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고 강화도로 숨어버렸다. 내륙에서는 백성들이 도륙을 당하든 말든 저희들만 안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만일 홍복원이 저희들만 살아남으려고 강화도로 피신한 무능한 군부정권에 대한 항의로 원나라로 귀부했다면, 그를 매국노라고 욕할 수 있는가?
물론 고려에서는 홍복원의 아들 홍다구가 쿠빌라이의 최측근이 되면서 난리가 났다. 겉으로는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갖은 아양을 떨어야만 했다. 여몽연합군도 사실상 그가 지휘했다. 하지만 고려 민심은 달라서 홍다구가 우리나라에 가져온 수박을 쳐다보지도 먹지도 않았다. 홍다구 같은 매국노가 들여온 수박이니 먹어서는 안된다고들 말했다. 뭐, 지금이야 여름이면 홍다구 수박 안먹는 한국인이 없지만 그때는 그랬다.
이러다보니 군부 정권이 강화도로 숨은 새, 사실상 군부가 등을 떠밀어 친조(몽골은 고려 국왕이나 세자가 직접 대몽골제국 대칸을 찾아오면 용서해주마고 하여, 바들바들 떨고만 있던 강화도 군부정권은 허수아비 세자의 등을 떠밀어 몽골로 보낸다.)를 하러 간 세자 왕전은 홍다구 덕분에 새로운 대칸이 될 쿠빌라이를 만날 수 있었다. 마침 고려 세자가 만나야 할 대몽골 제국의 칸은 갑자기 죽어버려 이 세자는 엉뚱하게 쿠빌라이라는 남송군정벌사령관을 만났는데, 그만 그가 차기 대칸이 돼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고려국은 쿠빌라이의 정통성을 가장 먼저 인정한 외국 국가 사절이 돼버렸다. 이에 쿠빌라이는 세자를 극진히 대접하고, 직접 군대를 보내 세자 왕전의 고려국왕 지위를 확고히 해준 것이다. 세자는 강화도로 돌아가지 않고 개경에 거처를 마련하고 거기서 즉위해버렸다. 궁은 몽골군이 삼엄하게 지켜주었다.
이러다보니 강화도에 숨어 있던 군부정권은 하루 아침에 지위를 잃고 말았다. 이들이 바로 삼별초다. 권력을 잃은 이들은 고려 조정을 향해 덤비고, 원나라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걸어 오늘날 대단한 독립군처럼 호도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독립 정신을 갖고 있었을지 몰라도, 그들을 이끈 이들은 대부분 군부정권을 빼앗긴 데 대한 억울함, 허탈감으로 저항했을 뿐이다.
그러니 고려 때의 매국노 개념, 독립군 개념을 달리 생각해줬으면 한다.
조선으로 들어와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다. 아니, 살짝 한 발 앞서 일어난 임진왜란 시절을 살펴보자. 지금 일본에서 역사적 이름이 된 심수관이니 하는 도예가들이 과연 일본군에게 잡혀갔을까? 가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갔을까?
난 좀 달리 생각하고 싶다. 당시 도예가들은, 아니 이 말은 너무 고상해서 그때 부르던 이름 도공으로 적어야겠다. 도공의 공은 사농공상의 세번째다. 천민들이다. 천민을 면해봐야 상민이다. 양반들이 쌍놈쌍놈 하던 그 상민 말이다.
당시 도공들은 관급 일만 해야 했다. 조선백자니 뭐니 하는 명품들이 실은 이들 손에서 나왔지만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광주의 왕실도요에 뽑히기라도 하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 전라도 궁벽한 시골에 있는 도공들이 무슨 대접을 받았겠는가. 자유거래를 상징하는 대동법이 실시된 건 이들이 잡혀가 일본에서 자리를 잡고나서도 한참 뒤이니 이 도공들은 죽을힘을 다해 도자기를 구워 관에다 바쳐야만 먹을거리를 겨우 해결했을 것이다. 전해오는 말 중에 작품이 너무 잘 나오면 도공들이 알아서 깨버렸다고 한다. 그런 것 바쳐봐야 할당량이 더 많이지고, 그러면 등골이 휘기 때문이었단다.
이 도공들을 그따위로 대접해 놓고 조선에서는 그들을 일러 반역자들이라고 했다. 마땅히 포로송환 때 고국으로 돌아왔어야지 버티고 일본에 정착해버린 이들을 조선 조정은 갖은 악랄한 표현으로 비난했다. 그러니 이 도공들을 반역자라고 목청 높이던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병자호란으로 가보자.
주전파니 주화파니 하여 대립하던 조정은 입으로만 싸우기 바빠 정작 전쟁준비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싸워서 질 것같으면 덤비질 말아야 하는데 화살 한 촉 깎을 줄 모르고 입만 산 주전파들은 무작정 덤벼들기만 했다.
난 주전파도 나라 위하고, 주화파도 나라 위했다는 남한산성의 시각을 단호히 배격한다. 주전파가 나라를 말아먹은 것이다.
물론 이 주전파가 산성을 쌓고, 무기를 손질하고, 대포를 생산해가며 군대를 조련했다면, 그런데도 장렬하게 싸우다 진 것이라면 나 역시 그들의 용기를 기릴 것이다. 아, 그러나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입으로만 싸우자, 오랑캐를 물리치자 외쳐댄 것이다.
홍타시의 후금군(나중의 청군)은 조선을 칠 의도가 전혀 없었다. 조선의 주전파들이 헛소리만 지껄이지 않았어도 그는 바쁜 걸음을 돌려 남한산성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그 아버지 누르하치가 산해관 공격 때 입은 부상으로 죽은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그는 명나라하고 싸울 일로 머리가 복잡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묘호란 때 혼나본 조선 관리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싸우자 물리치자 입으로만 외치니까 배후 안정차원에서 기어이 대군을 돌린 것이다.
우리 역사는 이런 주전파를 '항일 독립군' 이상으로 높이 받들어왔고, 지금도 철마다 제사를 올리며 그 기개를 기린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들을 모조리 잡아 사형시켰어야 옳다고 본다. 제 몸 하나만 건사시키면서 백성들만 후려잡는 이런 지휘관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다.
병자호란은 문관들이 만들어낸 잘못된 전쟁이다. 모름지기 국가를 담당한 이들은 전쟁이 나지 않게 하는 게 제일이요, 혹 전쟁이 나더라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제 목숨 내던지며 장렬하게 싸우다 죽는 게 두번째 일이다.
이렇게 고려 때의 자주파라는 삼별초와 병자호란 때의 주전파는 나라 망친 장본인들이지만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있다.
일제 때의 친일파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는 늘 분통이 터진다.
나라 망하게 한 놈과 년은 지금도 무슨 뮤지컬이나 호위무사와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니 하면서 대접을 받고 있다. 조선을 망하게 한 자를 순위대로 먹이면 1등이 고종 이재황, 왕후 민자영, 대원군 이하응이다. 그런데도 이놈들의 일족은 1910년 국권을 일본에게 내주고서도 창덕궁에서 옹기종기 모여 고급 차 타고, 좋은 음식 먹으며 호의호식했다.
이완용 따위가 국권을 넘긴다는 문서에 서명할 상황이 되도록 방치한 놈들의 죄는 묻지 않고, 그따위 문서에 서명한 자들만 을사오적이니 매국노니 하면서 악을 쓰며 찾아 죽이려 하고 있다. 이완용 아니면 그 문서에 서명할 대신이 없었겠는가. 지금 타임머신 타고가서 그 다섯 놈만 죽이면 을사보호조약이 안맺어지겠는가.
근본을 찾자면,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 군함이 일본과 조선을 찾아왔다. 일본은 살금살금 미군들을 꾀어 그 무시무시한 철선에 올라가 보고는 그들과 싸우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협상을 택했다.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하니 개항을 5년 유예하자, 우리 청년들을 보내줄 테니 신문명을 가르쳐다오, 그래서 그렇게 합의하여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신문명을 급히 배웠다.
* 철선 : 당시 조선과 일본의 배는 다 목선이었다. 그런데 페리 제독이 이끌고 온 전함은 쇠로 만든 배였다. 쇠가 물에 뜬다는 걸 상상하지도 못하던 시절이다. 이 전함에 실린 어마어마한 대포들이며 소총, 미군들의 장비를 일본인들은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마침내 싸우면 진다는 명백한 결론을 얻었다.
이때 우리 조선은 무작정 빗장을 내질렀다. 그래놓고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 이렇게 척화비를 세웠다.
그런 지 오래지 않아 부산항에 일본군함이 나타나 개항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척화만 외치던 왕실에 의해 조선은 힘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완용이가 이렇게 했는가? 을사오적이 이렇게 했는가?
그러니 지금도 고종 이재황과 명성왕후 민자영을 자꾸만 나라 지키려고 애쓴 측면도 있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 부부는 조선을 망하게 한 역적이다.
그래놓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없이 일본인들하고 논 백성들은 가차없이 때려잡았다.
육이오전쟁 때도 그랬다.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해야지, 전쟁 난다는 첩보를 다 무시해놓고 휴전선 장병들의 3분의 1을 휴가보내놓고, 장성들은 용산 육군회관 낙성식에서 댄스파티시켜놓은 위정자들이 무슨 할 말이 있어 입을 벌리는가. 이에 대해서는 따로 쓴 글이 있으니 거기 가서 살펴보시기 바란다. <육이오전쟁의 영웅 임부택 장군> <오판이 일으킨 전쟁, 육이오>
난 지금도 우리의 잠재적인 적국인 일본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일본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본은 우리의 전통적인 적이다. 과거에 그래왔고, 미래에도 그럴 개연성이 높으니 우리의 주적이 맞다.
일단 적을 이기려면 적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일본은 삼국시대부터 우리들의 적으로 나타났다. 수많은 침략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미봉으로 그치고 말았다. 조선시대에 통신사를 그렇게 많이 보냈지만, 이 통신사 놈들은 일본에 가서 우쭐거릴 생각이나 했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나라인지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쟁 날 건지 보러 오랬더니 기껏 풍신수길이 관상이나 보고는 쥐새끼 같이 생긴 놈이 전쟁은 무슨 놈의 전쟁, 이랬던 김성일이 경을 쳤잖은가.
(그래도 김성일은 존경받는다. 여기저기 서원마다 배향이 돼 있다. 기사보기)
지금도 일본이라고 하면 쪽바리니 난쟁이니 하면서 깔아뭉개려고만 하지 그들이 진정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밖에 못딴 노벨상 가지고도 돈으로 샀느니 뭐니 밟아으깨려고 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벌써 16명이나 받았다. 이 분야 저 분야 다 살펴봐도 일본은 위대한 나라다
국토도 우리의 몇 배요, 인구도 몇 배요, 경제력도 몇 배다.
일본을 우리 국민처럼 하찮게 여기는 나라가 지구상에는 없다. 아, 북한이 하나 더 있군.(이 대목에서 웃음이 나온다면 우리 현실이 참 슬픈 것이다.)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 적의 장점은 장점대로 인정하고, 단점을 찾아낼 생각을 해야지 무작정 깔아뭉개가지고는 안된다.
독도 얘기 나오면 와 하고 거리로 쏟아져나왔다가 쓰레기만 남기고 집에 돌아가버리는 이런 국민들이 무슨 힘으로 일본에 대항하겠는가.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알아보고, 일본 아이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들이 우기는 논리가 있을 텐데 그건 뭔가 들어봐야 한다.(말 나온 김에 우리 독도 영유권 주장 논리도 배우고, 일본 논리도 배워보시길. 한일양국 입장비교. 이외에 일본 시마네현이 운영하는 독도 사이트도 있다.)
사실 사설이 이렇게 길어진 이유는 다음 글을 쓰기 위해서다.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공약으로 내건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조치에 대해 정작 일본인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기사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가 농가부채 전면 탕감을 외쳤지만 한나라당 외에 국민들은 거의 이의가 없었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충청도로 수도이전 공약을 내걸 때도 한나라당 외에 이의가 별로 없었다. 또 지금 이병박 대통령이 대운하하겠다고 할 때 민주당 등 야당 외에 별로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한나라당에 비해 야당은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무슨 당 해서 여럿이고, 또 그런 시민단체, 정치결사가 많기 때문에 시끄러워 보일 뿐 실제로 국민들이 직접 무슨 여론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이 강행하기로 작정했으면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새만금이나 고속철이 전면재검토란 이유로 10년이상 완공이 늦어져도 반발이 없었다. 4대강 정비 같은 경우 국민적 토론이나 의견 발표는 거의 없고, 야당만 무작정 반대하는 형국이다.
전부터 그랬다. 찬성하는 쪽은 무작정 찬성하고, 반대하는 쪽은 무작정 반대한다. 요즘 4대강 정비를 반대하는 측의 논리를 보면, 4대강 예산이면 신종플루 막는다, 그 예산이면 무상급식 가능하다, 그 예산이면 시프트 125만채 공급한다, 이따위 논리로 내세우니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삽질, 2MB, 쥐박이, 이 치졸한 말장난이 어떻게 4대강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또 한나라당은 입 딱 다물고 아무 의견이 없다. 찬성도 반대도 안해야 조용하니, 조용한 게 진짜 찬성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4대강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비아냥하고 욕설하는 것으로 가득 찬 뉴스꾸러미 보기)
일본을 보자. 고속도로 무료화에 대해 국민 63%가 반대한단다. 교통체증, 환경오염, 국민 세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내세운단다.
중소기업은행빛 원금 탕감 유예 공약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은 반대다.
하토야마 정권 지지율이 71%나 되는데, 자민당을 몰락시키고 선택한 민주당의 공약에 대해서도 이처럼 선택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 같으면 어림도 없다. 찬성이면 다 찬성이고, 반대면 다 반대지 이런 일은 없다. 지금 야당은 이명박이 하는 건 다 악이라고들 한다. 전에 김대중, 노무현 시절 그때 한나라당 역시 두 사람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상대당 대통령에 대해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배신자라고 몰아부치고(관련 글보기) 저희당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역시 배신자로 매도당한다.
난 솔직히 말해 분별할 줄 아는 일본 국민들이 부럽다. 생각할 줄 아는 일본인들이 부럽다.
우리는 과연 생각하는 법을 알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찬성하는 법, 반대하는 법은 알고 있는가.
찬성하면 입 다물고, 반대하면 거리로 몰려나가는 것으로 배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토론법이라면 욕설과 비아냥거리는 법부터 배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반성하자. 반성없이는 아무것도 바로볼 수 없다.
철저한 반성 위에 새 역사가 설 수 있다.
법도 역사도 힘없는 사람들만 때려잡는다.
정작 국적(國賊)은 다 살려준다.
항상 본질을 챙겨야 한다. 국적을 때려잡지 않은 채 힘없는 백성들만 친일파니 매국노니 몰아부쳐 무작정 때려잡으면 그런 역사는 언제고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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