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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바우덕이가 매춘부라고 깐죽대는 사람

나는 사람을 믿지 말라는 글을 여러 차례 썼다.

사람은 희망이기도 하지만 재앙이기도 하다.

사람 하나 때문에 망해가던 나라가 일어나기도 하고, 강대국이 한 사람 때문에 망해없어지기도 한다.

 

사람이라는 게 참 하찮게 보자면 한없이 하찮고, 위대하기로 말하자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러니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우러를 필요도 없고, 또 깔아뭉개서도 안된다.

 

지난 임진강 방류 사태(조선의 한밤중 댐 방류로 한국 야영객 6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 때도 보았지만 아무리 첨단장비를 설치해도 사람이 노닥거리면 그런 사고가 난다.

 

어제는 개인적으로 이 블로그에 들어와 친일파 척결을 주장하면서 같잖은 논리로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비아냥거리는 블로거 한 명을 블럭시켰는데, 평소에 비분강개하는 놈들은 막상 일이 생겼을 때는 아무 일도 못한다. 임진왜란 때 그 말 많던 조정 대간들이 어디로 숨었는지 찾아도 안보이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병자호란 때는 오랑캐하고 무슨 강화를 하느냐, 싸우자, 싸우다 죽자 외치던 놈들, 막상 도망가기 바빴다. 일제 때도 민족이 어떻고 항일 운운한 지식인 중에 친일파 많고, 삼일절에 독립선언문 쓰고 만세 외치고도 친일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평소 목소리만 큰 사람들은 위급할 때는 쓸 데가 없다. 장관, 의원 중에 유독 군 면제자 많은 것하고 일맥상통하는 일이다.

 

우리 아버지는 일제에 징병되어 끌려가다 극적으로 도망쳐 오셨는데, 그냥 따라갔더라면 남태평양 섬 어딘가 '부적절한 장소에서 부적절한 전쟁'을 하다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난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일제 때 독립군으로 목숨 바치거나 젊음을 바친 분들의 면면을 보면 조선 말기에 말단 관리라도 하던 사람은 잘 보이지 않고 대개 농사 짓던 청년, 출사하지 않은 선비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마디로 평화시에 국록을 먹고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 치고 비바람 찬서리를 맞는 독립운동에 나선 이가 별로 없다. 난 우리 시대의 민주화운동도 1980년대 초까지만 믿지 그 이후 이른바 386이라는 사람들은 믿음을 주지 않는다. 내가 대학다닐 때는 그야말로 청춘을 바치고, 인생을 걸어놓고 독재타도 운동을 하던 선후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들어 학생운동은 교수들 몰아내고, 학교내 이권 장악하고, 학교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재미로 본질이 흐려진 측면이 있다. 당시 내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조교를 했는데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처럼 오늘날 친일파 척결 운운하는 사람들 중에는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정치 운동을 하는 자들이 많이 숨어 있다. 친일파 척결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한낱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들이다. 친일파나 친일부역자는 한나라당에도 있고, 민주당에도 있다. 지난 정권에서 열린우리당에 일제 헌병 아들 신기남, 딸 이미경 같은 이가 있었고, 조병갑 손녀딸 조기숙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그런 건 다 상관없고 오로지 한나라당만 잡아족칠 생각이나 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니 정작 친일파 척결이 안된다. 한나라당 내 친일파를 없애려면 민주당 내 친일파부터 없애야 선명한 동력을 얻어 추진이 가능한데, 우리 편은 친일을 했든 부역을 했든 무죄고, 상대만 잡아죽이려고 하니 결국 파리 한 마리 못잡는 것이다. 뻔히 아는 한나라당 내 친일파 자식들이 모두 건재한 데는 친일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활용하려한 지난 정권 사람들의 잘못이 크다.

 

오늘 주제는 이게 아닌데 너무 많이 샜다.

어제 2009년 9월 30일 남사당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안성시가 그간 반대와 비아냥속에 홀로 꿋꿋이 지켜온 남사당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기쁜 날이다.

 

그런데 이 기쁜 날에 안성시에서 바우덕이를 매춘부라고 비난하는 기사가 났으니 코멘트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래서 해당 신문을 찾아가 읽어보니 하찮은 잔재주로 안성시민들을 현혹하고 무민시키는 글이라서 이런 잡설에 나까지 나서서 코멘트를 할 수 없다고 회답했다.

 

시에서야 답답하겠지만 작정하고 덤비는 반대파들에 일일이 끌려다녀서는 안된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나 있다. 가자고 하면 가지 말자고 하고, 가지 말자면 가자 하고, 하자면 못하게 하고, 하지 말자면 왜 안하냐고 성질 부리고 덤비는 무리가 반드시 있다. 경부고속도로 놀 때도 공사 못하게 드러누운 사람 있고, 포항제철 세울 때도 못하게 방해한 이 있고, 고속철 공사도 필요없다고 반대하고, 매사 반대만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들의 자리가 양지에는 없고 음지에만 있다보니 부정적인 데 앉아야만 안식을 구하는 이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

 

바우덕이를 매춘부라고 하는 글을 보니, 안성에 위대한 인물도 많은데 왜 하필 매춘부를 위인으로 삼아 기리려 드느냐면서, 여러 인물 중에 삼일만세운동했다는 기생 하나를 추켜세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작 몸팔고 웃음 파는 게 직업인 기생에 대해서는 '기생'이라고 줄곧 쓰고, 남사당 기예를 직업으로 한 바우덕이는 시종 매춘부라고 적었다.

 

진작부터 논란이 있던 바우덕이 생몰년에 대해 그 일설을 주장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글쓴이는 막상 취재의 기본이랄 수 있는 기초 조사를 거부했다고 자랑했다. 바우덕이가 살던 마을에 가서 조사를 하는 게 기본인데 일부러 안했다고 자랑한다. 바우덕이가 살던 청룡리 마을 사람들은 시에 의해 쇠뇌당한 사람들 뿐일 테니 물어볼 가치가 없어서 그랬다는 희한한 주장을 편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도 마음껏 재주껏 되지도 않는 주장을 갈겨써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는 세상인데 왜 유독 그 마을 사람들만 군부시대나 봉건시대 사람들 대하듯이 경멸하고 조소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바우덕이 평전이 아닌 소설을 썼기 때문에 학자들처럼 치밀한 고증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취재를 해서 플롯을 짰다. 청룡리 마을 주민들한테서 바우덕이 생몰연대에 대해 듣고, 일화나 전설을 받아 적고, 남사당 실제 단원들을 찾아가 인터뷰도 해서 나름대로 생몰년도 정하고, 일생을 구성할 수 있었다.

 

바우덕이는 천민이다. 천민에 대해서는 왕조실록에 잘 등재하지 않는 법이다. 실록에 보이지 않으므로 옥관자 얘기는 거짓이라는 논리를 펴는데, 실록에 그런 내용까지 적히지는 않는다. 더구나 실록은 왕의 동정에 대해 적는 거지, 왕의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준 자그마한 옥돌 하나까지 적지는 않는다. 혹 대원군 실록이 있다면 적힐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 그런 건 없다. 바우덕이가 국왕인 고종을 만난 적이 없다는데 어떻게 고종실록에 그 사실이 나온단 말인가.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일 뿐이다. 옥관자 얘기도 그렇다. 정3품관들이 쓰는 형태의 옥돌을 준 것이지 공명첩이나 실직으로 준 바가 없다. 줄 수도 없다. 대원군은 고종을 대리한 대왕대비 조씨의 또다른 대리인이므로 그가 직접 관직을 제수할 권한이 없다. 그냥 인사동에 가면 흔해 빠져서 얼마 안줘도 살 수 있는 작은 옥돌 하나 받은 걸 뭐 그리 대단하다고, 실록에 적어 올려야만 진짜지 실록에도 없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고 우긴다면 참으로 가소롭고 불쌍한 일이다.

 

바우덕이를 매춘부라고 선전해서 안성시가, 안성시민이 무슨 이익을 얻지는 못한다. 다만 글쓴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개인적인 조직 내 명성을 노릴 수는 있을 것이다. 바우덕이는 최대 100명까지 될 수 있는 남사당이라는 기예단을 이끈 꼭두쇠이고, 그러다보면 더러 몸을 팔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소설에 그런 이야기를 삽화로 만들어 넣었다. 그렇다고 남사당을 매춘부라고 덮어씌워서는 안된다.

 

안성시는 바우덕이 개인을 추앙하거나 위인이라고 선전한 바가 없다. 교과서에 나온 건 해당 교과서를 기술한 사회과 교사가 오버한 거지 안성시 공무원들이 쓰라고 해서 쓰는 세상이 아니다. 내가 소설 바우덕이를 쓸 때 안성시 누구도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요구한 적이 없다. 지금 세상이 어떤지 다 알면서 이렇게 거짓말하면 안된다. 교과서가 잘못됐으면 교과서만 갖고 얘기해야지 그걸 왜 시정하고 연결시키고, 어떻게든 시장을 엮어 욕먹이려고 견강부회하는지 그 속이 너무 뻔하다. 시장 선거가 코앞이란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나 역시 바우덕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이지만 결코 그를 위대한 예술가라고 강변하지 않았다. 다만 천민이면서, 천애고아이면서, 조선시대 핍박받던 여성이면서 그와 같은 예술 활동을 했다는 걸 높이 치는 것이다. 

 

나이키 신발 신고 엘시디 텔레비전 보고 현대자동차 타고 인터넷하고 쌀값이 너무 싸서 잘 사먹지 않는 이 좋은 시대에 태어나 입을 열었다 하면 불평불만이고 분수없이 나대는 걸 복인 줄 알아야 한다. 나 태어날 때 어머니 산후조리할 쌀이 없어 삼촌 한 분이 일주일 품팔아 쌀 반말 얻어왔다는 이야기를 무슨 가슴으로 이해할 것인가. 그까짓 3~4만원이면 한 포대 살 수 있는 쌀을 사기 위해 그 미련한 짓을 했느냐고 대들지도 모르겠다. 하도 쌀이 남아 돌아 나락이 서 있는 논을 통째로 갈아엎는 이벤트만 보아온 젊은이들이 바우덕이가 살던 시절이 어땠을지 상상이 될까.

 

모르긴 해도 바우덕이가 몸을 팔았다면 그 값은 쌀 한 되, 보리 한 말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던 조선 후기 민중의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없이 벌린 입이라고 마음껏 떠들어대선 안된다. 감히 매춘부라니. 불과 50년 전 내가 태어나 젖먹던 시절만 해도 이 나라 국민소득이 수십 달러에 불과했다. 일년 벌어야 지금 아이들 하루 용돈에 불과한 몇 만원밖에 안됐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보다 더 오래 전 일은 말해봐야 알아듣지를 못한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청년 시절, 깨묵만 먹고 살기가 지겨워 무작정 가출했다가 우리집보다 더 못사는 강원도 사람들 삶을 보고는 감지덕지 살기로 맹세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멀리 얘기할 것도 없이 얼마 전 강원도에 사는 어떤 소설가는 먹고살기 어려워 차에다 살림살이 싣고 다니며 밥 해먹고, 농촌에서 도둑질하다 잡혔다고 한다. 그 작가를 전문 도둑놈이라고 몰아부칠 텐가. 아무개 작가는 도둑놈이었는가, 이렇게 몰아댈 수 있을까.

 

이런 4류 나팔수들이 마음껏 떠들라고 우리 독립군들이 바람찬 만주벌판에서 총 맞아 죽고, 산업화 시대에 열두 시간씩 중노동하다 산재로 죽어갔단 말인가. 동생 하나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학력은 국졸로 접어버리고 여기저기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가까스로 기능공으로 입신한 우리 형은 그럼 노가다란 말인가.

 

안성시가 오래도록 공을 들여 일제 말기에 사라진 남사당을 복원한 지 십몇 년이 되었다. 이제 안성남사당은 안성시만의 유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안성남사당은 바우덕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냥 그 남사당 단원이었을 조선시대 무명의 어느 여인이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중 누군가가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팔았다고 해서 남사당의 예술적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안성시 입장에서야 저런 빅스피커(말 만들어 퍼뜨리는 나쁜 인간이라는 미국식 속어)가 귀찮고 성가시겠지만, 세상에는 박테리아도 있고  바이러스도 무수하지만 가끔 소독약 뿌리면서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일에 분개할 시간 있으면 시민들 위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연구하는 게 낫다. 그러니 속상하겠지만 그따위 잡글은 잊고 남사당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반기는 대다수의 국민들만 바라보라. 남사당이 이렇게 인정받기까지 안성시 공무원들,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남사당 단원들, 참 애 많이 썼다. 지지해준 시민들, 참 잘 하셨다.

 

- 안성남사당 공연은 매주 토요일 저녁에 안성시 보개면 전용 공연장에서 열린다. 매주 수천 명이 모여 이 세계문화유산을 즐긴다. 가서 보시면 참 좋구나, 역시 우리 문화로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안성시 공식 홈피에 들어가면 자세한 공연 안내를 볼 수 있다. 거기 가면 최근 나온 <만화 바우덕이>도 있고, <소설 바우덕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