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먹고살만해지니까 환경이니 생태니 하는 어휘가 부쩍 자주 들린다. 요즘엔 에코라는 영어까지 써가며 벼라별 데에 다 써먹는다.
지난 1996년 여름, 몇몇 지인들과 함께 중국 동북방 답사를 간 적이 있다. 그때 연길 근처 어디서 일제 때 넘어가 아직까지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한창 환경운동에 빠져 있던 선배가 이들을 대상으로 환경 교육을 시켰다. 난 그저 형편이 어떠냐, 독립군들 뒷바라지하거나 일제에 수탈당하느라 고생한 당신들에게 고국이 해주는 게 없어 미안하다고 말하던 중이었는데, 그래도 고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중이니 열심히 살아보자고 덕담을 하던 중이었는데 그는 느닷없이 환경문제로 줄거리를 틀어버렸다. 요약하면 이렇다.
- 왜 자꾸 한국처럼 되고 싶어 하느냐? 그거 나쁜 거다. 공기 오염되고, 천박한 물질만능사고가 횡행하고, 물 더러워지고, 토양 오염되어 먹을거리 역시 오염되어 암환자 많이 생기고.... 이대로 얼마나 좋으냐. 흙 밟으며 신선한 공기 마시며 이 전통문화를 지켜나가야 한다.
하도 오래 전 기억이라 그 선배가 말한 것을 그대로 적은 건 아니다. 하여튼 한국 부러워하지 말고 너희들 삶이 더 친환경적이니 이대로 좋은 줄 알고 살라는 훈계였다. 그 말을 들은 우리 동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내 선배는 나이키 신고, 청바지 입고, 좋은 배낭 메고, 선글라스 끼고, 지갑을 까보면 거기 자동차 운전면허에 신용카드가 있으니, 그 사람 생각으로는 배부르니 헛소리한다고 보일 것이 아닌가.
우리가 중국을 다녀온 이후로도 고구려 고토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한국으로 많이 들어왔다. 한달 80만원 벌어보려고 브로커들에게 몇 백만원씩 바쳐가며 '공기 오염
되고, 매연 가득한' 이 나라로 몰려들었다. '천박한 졸부들이 많이 사는 더러운 환경'속으로 그들은 자꾸만 뛰어들었다.
오늘날 환경운동을 주장하고 생태 운운하는 사람들은 천상에서 뚝 떨어진 하늘사람들 같다. 우리가 지난 세월 먹고사는 문제로 얼마나 고되게 살았는지, 그래서 사람만 힘든 게 아니라 땅도 힘들고 강도 힘들고 나무도 힘들고 물고기도 힘들었다는 걸 모른다. 낙동강 하나만 놓고 봐도 얼마나 많은 폐수, 오수로 신음했던가. 머리카락이라도 잘라 수출해야 먹고살 때니, 돈들여 오폐수 거를 능력이 안되니 그냥 강에 버렸다. 그래서 물고기 죽고 농업용수가 오염되어 그 물로 농사지은 곡식이 또 오염되고, 악순환으로 암환자 많이 생기고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에는 외국에 팔아먹을 자원이 없다. 가발이라도 만들어 팔아야지 저절로 돈이 되는 게 없다. 아랍처럼 우물만 파면 석유가 펑펑 솟구치면 좋겠지만, 남미 어디나 호주처럼 산을 파면 구리며 주석이며 비싼 광물질이 무진장 있다면 그거라도 파 수출하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석탄말고는 그런 것도 없고, 있던 금이나마 일제가 다 파가버려 지금은 없다. 조선이 지금 무연탄 파서 중국에 수출하는데 하도 헐값이어서 밥 먹고 살기도 바쁘다.
예로부터 문화(文化)라고 하여 사람은 글로 다듬어야 사람답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죽기살기로 자식들 공부시켜 머리 굴려 먹고살게 하려고 논 팔고 밭 팔았다. 논밭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머리 써서 먹고살라고 그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9위에서 12위 사이의 수출대국이 되었다.
그러고나니 이제 환경이니 생태니 따질 형편이 되었다. 환경론자, 생태론자들은 4대강 비판하며 내버려둬라, 지금 그대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둬라 소리치는데, 1980년대만 해도 큰비가 내리면 서울의 풍납동이니 송파구, 마포구, 김포는 단골 침수지역이었다. 아파트 일이층이 물에 잠겨 보트타고 다닌 게 불과 20년 전 일이다. 내버려뒀으면 지금도 그럴 것이다. 나도 물에 잠긴 도로를 건너 집에 간 적이 있다. 그런 일이 여름철마다 있어서 감전돼 죽는 사고가 꼭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한강을 손질한 뒤 그런 홍수 사태는 적어도 서울에서는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치수란 예로부터 성군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치수(治水)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물길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 다스리는 것이지 제멋대로 날뛰게 둘 수는 없다.
더구나 오늘날의 4대강은 우리나라 산업화에 희생당해 신음하고 있는 중환자다. 예의가 있는 인간이라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강을 치료해야 한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개발을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한창 4대강을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썩은 강을 정화하자, 마른 물길을 되살리자고 외쳤을 것이다.
환자를 고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 방법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보를 놓을 것인가 말 것인가. 보를 놓으면 뭐가 어떻게 되고, 안놓으면 그럼 어떻게 되는지 실질 토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토론은 어디서도 이뤄지지 않고 무작정 삽질, 삽질이라고 하여 우리나라 산업화에 평생을 바친 기성세대들을 비아냥거린다. 삽질 덕분에 고속도로 이용해 놀러다니고, 삽질 때문에 아늑한 아파트에 앉아 컴퓨터로 인터넷하면서, 삽질 때문에 전철 잘 타고다니면서 그런 예의없는 말을 해댄다. 삽질 아니었으면 쌀이 이렇게 남아도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락논 같은 천수답을 삽질로 경지정리해 관개수로 놓고 항공방제하고 현대식 농법으로 농사짓다 보니 이렇게 해마다 풍년이고, 해마다 여의도 하나만큼씩 경지면적이 줄어드는데도 소출은 도리어 더 느는 것이다.
쌀이 넘치고 곡식이 넘치니 이제 개울물 더러운 것도 걱정하여 지자체마다 나서서 정비하고 있다. 반대자들이 경멸하는 삽질을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용인 근처만 해도 작은 개울마다 삽질을 하여 물길을 터주고, 홍수 때 안전하게 시설물을 설치해놓고 보니 물고기가 늘고 수초도 잘 자라 여름철에는 물에 발 담그고 노는 시민들이 많이 생겼다. 계곡에는 작은 보를 설치하여 홍수 때 내린 물이 천천히 흘러가도록 해놓아 사시사철 개울물이 마르지 않는다.
나 어릴 때는 소 풀먹이러 돌아다니면서도 여간 조심하지 않았다. 논두렁에 농약 쳤을까 무서워 계곡까지 소를 끌고들어가 신선한 풀을 먹이려 애썼다. 물도 큰 개울물은 농약이 흐를까봐 겁이 나 계곡까지 가서 먹였다. 그때는 농약을 얼마나 많이 치는지 농약병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이 잡는다고 아이들 겨드랑이에 DDT 칠 때니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툭하면 싸이나(시안화칼륨, 배우 김민선이 미국산 쇠고기대신 먹겠다던 청산가리)를 개울물에 풀어놓고 물고기 건져다 먹기도 했으니, 그 무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맨 상류에서 손비누같이 생긴 하얀 싸이나를 물에 풀면 온동네 사람들이 뜰채를 들고나와 하얗게 배 뒤집고 죽은 물고기를 건져다가 먹었다. 내 고향은 금광이 있던 곳이라 제련용 싸이나가 흔했는데, 우리집에서도 작은형이 이 싸이나를 마른 무청(시레기)에 묻혀 토끼 다니는 길목에 걸어두거나, 종콩에 구멍을 뚫어 싸이나를 박아 밭둑에 뿌린다든가 해서 토끼, 꿩 같은 걸 많이 잡아먹었다. 내가 열일곱살에 집을 나왔으니 작은형 나이 불과 열대여섯살 때로 짐작된다. 지금 생각하면 불법이라는 건 너무 고상한 말이고, 그런 독극물에 오염된 고기를 맛있다고 헐레벌떡 달려들어 먹은 생각을 하면, 그거 아니면 고기 먹을 일 없던 그 시절 궁핍한 삶을 떠올리면 눈이 시큰하다.
하지만 요즘은 소에게 개울물 먹여도 큰일이 나진 않는다. 소 끌고 다니며 풀 뜯기는 사람도 없지만, 농약 안전성은 높아지고 약효는 커져 양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때보다 독성이 더 순해져 요즘에는 제초제 아니면 농약 먹고 죽는 일이 드물어졌다. 전에는 농약 아무거나 먹어도 자살 결심한 농부들이 대개는 죽었는데 요즘에는 제초제만 아니면 치료가 된다. 자살이라는 게 본디 욱하는 성미 때문에 저지르는 거라 한번 그러고나면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아직도 풀 나는 게 귀찮다고 아무 데나 제초제를 치는 사람들이 있어 기분이 나쁘지만, 그런 데만 피하면 괜찮을만큼 많이 좋아졌다.
지금 중국이나 조선에 가서 농약 치지 마라, 강 오염시키지 마라, 비료 쓰지 마라, 쓰레기 태우지 마라, 이러면 아마 눈총을 받을 것이다. 너희들은 아파트 살며, 자동차 좋은 거 타고다니며(적어도 메이드인코리아는 타니까), 냉장고마다 먹을거리가 가득 채워져 있고, 살빼느라 갖은 짓을 다하며 엄청난 비용 치르고, 쌀 남아돌아 불 지르면서 그따위 소리냐고 그들이 따지려 들 것이다.
그러니 환경, 생태를 주장하더라도 그런 배려까지 해가며 하는 게 옳다. 우리 얘기만 해야 한다. 수준에 맞춰 해야 한다. 집집마다 설겆이하며 버린 오수, 빨래하고 버린 세제 섞인 물, 화장실 통해 내려간 물이며 오물, 집집마다 배출하는 쓰레기 등이 그동안 어떻게 처리되는지 고민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다 돈이 든다. 재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기술도 필요하고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게 돼 있다. 산업화시대에는 한강은 물론이요, 안양천, 청계천, 경안천, 오산천 등등 바라보기도 끔찍했었다. 하수구 같았다. 아니, 오늘날 하수구는 도리어 더 맑고 깨끗하다.
이제 그럴만한 국부가 생겼으니 나라에서도 환경 문제를 신경쓰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도룡뇽 살리자, 올챙이 살리자고 주장해도 먹히는 시대가 되었다. 중국이나 조선이라면 정신나간 소리라고 욕먹지만 우린 안그런다는 게 생활수준이 이만큼 좋아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남 처지는 생각 안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한다며 선진국들이 후진국을 잡도리한다. 20년 전 연기 자욱하던 구로공단의 그 많은 공장을 중국이나 동남아에 다 보내 이제 서울은 깨끗해졌다고,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같은 선진국들이 죄다 그런 식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로 이산화탄소 배출 공장을 다 이전시켜 놓고나서 저희들만 배부른 소리한다. 이런 환경운동은 아주 나쁜 것이다.
따라서 환경, 생태는 절대 가치가 아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주장이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다. 시절 따라, 인연 따라 일이 되는 거지 억지 쓴다고 되는 건 없다. 4대강 살리자고 하면 살리는 일에 다같이 힘쓰면 되지 정치적인 불안감 때문에 양심이 시키지 않는 꾀를 부려서는 안된다. 2012년 선거만 아니면 환경, 생태 문제가 이렇게 시끄럽게 꼬이지는 않을 텐데, 같잖다. 솔직히 말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공사를 내년쯤 시작하여 2013년에만 완공시킨다 해도 야당들이 이처럼 극렬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못하는 이명박 대통령 사정도 역시 딱하다. 나라 위한다면 일이라면 1년 늦추지 못할 이유도 없다. 뻔한 게임 구경하자니 여아 모두 구역질 난다.
'파란태양 > 전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봄이네요 (0) | 2010.04.12 |
---|---|
꾸지뽕나무를 심다 (0) | 2010.04.06 |
과일 껍질째 먹어도 될까? (0) | 2009.12.02 |
금쌀이 나왔다는데 (0) | 2009.11.19 |
우리에 갇힌 야생 동물 (0) | 2009.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