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조 선생은 내가 아는 분이다.
서울대 그만둔 지 오래되었는데 굳이 '전 서울대 교수'라는 타이틀을 다는 기자의 소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정아라는 한 여성의 사기사건을 보도할 때도 굳이 '전 동국대교수'라고 하는 기자들이 있는 것처럼, 최창조 선생을 보도하면서 순수한 학자로 대하지 않고 '전서울대교수'로 묶어두려는 게 마땅치 않다.
또한 '4년만에 침묵 깬'이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간 저술 활동, 연구활동을 꾸준히 해온 것으로 아는데 꼭 언론에 등장하지 않으면 침묵했다고 규정해버린다. 숨 쉬고 살았으면 활동한 거지 제 기준에 안맞는다고 침묵이라고 하는 건 곤란하다.
내 경우도 늘 글을 쓰고 살지만, 이따금 책 잘 안읽는 독자들은 침묵이 길다고 엉뚱한 말을 한다. 침묵이 긴 게 아니라 수십 만 부의 히트작이 안나오고 있을 뿐 해마다 책을 내고는 있다. 난 논다는 말이 제일 싫다. 꼭 제 눈에 띄어야만 열심히 일하는 것이고, 안보이면 노는 줄 아는 이런 풍토가 마음에 안든다.
최창조 선생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몇 달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튼 내가 아는 최창조 선생에 대해 간략히 적고, 그 다음에 내가 생각하는 풍수를 말해야겠다.
최창조 선생은 땅을 생명이 깃들어 사는 터전 정도로 이해하는 분인 것같다. 대추나무는 물이 잘 빠지는 땅이 맞다, 미나리는 축축한 땅이 좋다, 포도는 자갈 많고 거친 땅이 좋다는 식의 개념과 비슷하다. 사람도 천식환자는 습도가 낮고 일조량이 풍부한 땅이 좋다든가 하는 식이다. 물론 최창조 선생이 이런 말을 직설한 적은 없고, 추정할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한 최창조 선생은 기복, 발복을 위해 땅을 고르는 행위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용에도 나오지만, 풍수를 미신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막상 제 부모상을 당하면 선생께 줄을 대어 묏자리를 알아본 일이 꽤 있는 줄로 안다. 어떤 놈들인지도 안다. 그럴 때마다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분이 치미는 모양이다.
최창조 선생은 빌딩을 산으로, 도로를 강으로 해석하는 현대적 의미의 풍수관을 갖고 계신 분이다. 인간 생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땅, 인간 생체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땅을 구분하여 가려주는 것이 그분의 역할인 듯하다. 그분이 파주 교하를 수도터라고 할 때는 그만한 합리가 있다. 좌청룡, 우백호 식의 뜬구름 잡는 말이 아니라 논리가 있다. 청와대 이전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이유를 들어보면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어쨌든 최창조 선생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그치고, 풍수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 적어본다. 최창조 선생이 주장하는 자생풍수와 다른 전통 풍수(중국식)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담은 미신이다.
명당이란 말 자체가 미신이다. 명당(明堂)이란 왕이나 황제가 정무를 보는 집을 말한다. 이게 사전적 정의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명당은 한 군데 밖에 없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 명당에 살 수 있는 사람 역시 나라 안에 단 한 명밖에 없다. 그 한 명이 죽어야 후계자가 승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왕이나 황제가 타는 여(輿)라든가 가(駕)도 일반인들은 탈 수가 없다. 왕자도, 재상도 안된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 왕이나 황제만 산다는 명당에도 살고 싶고, 왕과 황제만 타는 수레도 타보고 싶다. 그래서 산 사람이 그러면 국법을 어기는 것이니 안되고 죽은 사람에게 명당을 주고, 수레를 타게 하는 것이다.
본디 죽은 이에게는 관대한 법이다. 살아서는 결코 주지 않던 벼슬도 증직하고, 그럴 듯한 시호도 준다. 그래서 죽어서는 영의정도 되고, 판서도 된다. 왕은 아니어도 군(君)이나 공(公) 정도는 거뜬히 내려준다.
이런 식으로 발전해나간 것이 망자를 태워 보내는 상여요, 망자를 가리켜 '황제 수레에 탄 영가'라고 부른다. 상여에는 용을 그려도 무방하다. 시신에는 왕이나 입는 옷을 입혀도 된다. 그리고 이 망자가 들어가는 저승 집을 명당이라고 부른다. 그러기 위해 무덤 좌우에 미니 좌청룡 우백호를 쌓아 최상의 '명당 조건'을 구비해 주는 것이다.
이게 그 시작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어 왕의 아내를 가리키던 '부인'이란 말을 제 아내에게 갖다붙이고, '왕의 아내'를 가리키던 '마누라'를 또 갖다 쓰고, 당상관이나 돼야 쓰는 '영감' '대감'을 제 남편에게 갖다 붙였다. 왕자는 돼야 쓰는 '나리'를 머슴들이 제 주인을 부를 때 멋대로 쓴다. 왕자나 아주 대단한 공신 아니고는 붙이지 못하는 군을 요즘은 어린애들 호칭으로 쓰잖는가
인간의 욕망이란 이렇게 한없이 뻗기만 하다보니 '명당'이란 용어를 죽은 이들에게만 주는 집으로 쓰질 못한다. 아비가 명당에 묻혔으니 그 자손은 진짜 명당, 현실의 명당에 앉는 주인이 된다는 상상으로 뻗어나가, 이것이 발복 풍수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풍수사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하여 육조거리에 근무시킨 조선시대 왕들은 어째 비명횡사한 사람이 그렇게 많고, 절손되어 방계로 이어진 왕계가 그리 많단 말인가.
그냥 인간의 욕망이 남긴 풍습일 뿐이다. 그런가 보다 하면 그만이다. 기왕이면 부모 묘소를 명당이라는 좋은 땅에 모시고 싶은 자식들의 마음 정도로 보면 된다. 하지만 부모 뼈다귀 묻어 자식 잘 되기를 바란다면, 그 집은 잘 될 수가 없다. 사람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죽은 뼈가 하는 게 아니다. 사람 일을 다 해놓고 부모를 잘 모시는 거야 탓할 일이 아니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뼈다귀 힘만으로 발복을 원한다면 그게 도적이지 어찌 바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부모 욕되게 하는 짓이다.
이제 화장문화가 50%를 넘는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 이따위 명당 얘기는 많이 사라질 것으로 본다. 그대신 기후학, 지리학, 생명과학, 환경학, 심리학 등을 토대로 한 풍수가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패철만 들고다니면 되는 게 아니다. 상당한 인문과학 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역술인들 몇몇이 모여 풍수 책 두어 권 읽고 깝죽대는 지사들 다 물리치고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내가 보기에 최창조 선생의 풍수 사상만이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 가을에 피는 감국. 꽃은 말려서 끓인 물에 서너 송이 넣으면 쓴맛이 깔린 단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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