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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의리있고 진실한 사람

- 선배님, 이 친구, 아주 의리있고, 진실하고, 순박합니다. 한번 좋으면 그저 죽어라 따라다니는 순진무구한 사람이지요.

- 야, 임마. 내가 제일로 존경하는 우리 대선배님이셔. 인사드려라.

 

고향 후배가 젊은 청년 한 명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는데, 이 후배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청년이 허리를 깊숙이 꺾어 인사를 올린다. 눈매가 단정하고, 착하게 생겼다.

 

악수하고, 자주 만나 얘기하자, 술 한 잔 같이 하세, 그러면서 헤어진 이 청년은 알고보니 며칠 전 출소한 살인전과자다. 의리가 있다보니 보스가 시키는대로 사람을 찾아가 죽이고, 진실하다 보니 "내가 죽였소." 실토하여 교도소갔고, 그러고도 보스를 원망하지 않으니 순박하다. 또 제 손에 죽은 사람 불쌍한 줄 모르니 순진무구인지 뭔지 하여튼 뭘 모른다.

 

이 후배란 사람은 본디 뒷골목을 자주 다니면서 주로 이런 부류들을 사귀는데, 거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 의리, 진실, 순박 같은 말이 통용된다. 하지만 소개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인품 중 자신과 같은 것은 빼고나서 말한다. 같은 조직원이니 조폭이란 말은 쏙 빼놓는다. 저희 세계에서는 의리있고, 진실하고, 순박하겠지만 밖으로 나서면 조폭일 뿐이다.

 

우리는 A란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은 B의 정체를 혼동하기 쉽다. A는 B-A로 남는 건더기만 말한다. 두 사람의 공통분모는 말할 필요가 없으니 말하지 않는다. 사기꾼의 세계에도 의리가 있으며, 투기꾼들의 세계에도 의리가 있으며, 밤거리에도 의리가 있다. 어느 의리를 말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차 마시다 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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