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갓집이 김해에 있다보니 그간 <노무현대통령생가>라는 표지판을 수없이 보았다. 그때마다 언젠가 한번은 가봐야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관광버스 많이 드나들 때는 그게 불편해 안가고, 돌아가신 무렵에는 밀려드는 조문객 피해 안갔다. 개인적으로 조문하는 일은 수원연화장에서 마치고, 거기서 권양숙 여사가 코앞으로 지나가실 때 목례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원래는 사람이 좀 뜸하면 언제고 봉하에 가서 노무현 대통령을 찾아뵙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한때 노무현후원회 일원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대에 넘치는 일도 있고, 또 미치지 못한 점이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듣고 싶은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 많이 모이는 거 싫어하는 내 성미 때문에 결국 대통령 생전에는 이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내 기억 속의 노무현은 부산에 가 떨어지고 또 떨어지던, 돈이 없어 식당 차리고 물장사하려던 정치 낙오생이다. 그때 부산 동구 유세장까지 찾아가 박수치고, 헌금하고, 함께 밥 먹으며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40대 후반의 노무현이 그립다. 그 사이 난 그때의 노무현보다 나이가 더 많아졌다. 40대의 노무현을 통해 내가 바라던 꿈은 아직 피지 않았다. 내게 노무현은 피다 만 꽃이다.
- 우리 세 식구가 처제 내외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 걸개그림 앞에 섰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슴 한 켠이 시렸지만 그래도 이제는 역사인물이 돼버린 노무현 대통령 그림 앞에서 찡그리고 있을 수 없어 다들 웃었다. 노 대통령도 웃으시는걸...
- 이 사진 볼수록 기가 막히다.
맨앞이 생가다. 여기서 잠시 신혼 살림도 꾸린 모양이다. 새로 고쳐짓다보니 가까이서 보면 번들번들하지만, 실제로는 거주 공간이 10여 평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집이다. 이런 집은 아주 가난한 살림살이를 하는 곳이다. 봉하마을에는 지금도 이렇게 초라한 집이 몇 채 더 보였다.
- 뒷집이 노대통령이 퇴임 후 사시던 집이다. 아무리 봐도 호화저택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저 정도는 쥐꼬리만한 성공이라도 거둔 이면 누구나 지을 수 있는 정도다.
- 새 집 뒤로 보이는 바위가 부엉이바위다. 여기서 집을 내려다보다가 투신한 듯하다. 신문기사나 텔레비전 뉴스로 볼 때하고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지척이다. 태어난 집, 사는 집, 꿈꿀 때마다 떠올랐을 이 정겨운 고향땅에 몸을 던질 때 그 마음이 오죽 했으랴 싶다. 노대통령의 생사가, 역사가 이 사진 한 장에 다 들어 있다. 사진 위 오른쪽에 하얀 불상이 희미하게 보인다. 거기가 대통령께서 자주 가던 정토원인 모양이다.
- 생가다. 해설사 한 분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 여긴 봉하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맨먼저 보이는 곳으로, 저 바위는 사자바위다. 처음에는 저게 부엉이바윈 줄 알았다. 아래 차단막 앞에 흰 덮개가 보인다. 거기가 진짜 무덤이다. 초록색 끈으로 표시해놓고 단장 중이라는데, 그럴 거면 그 앞에 가림막을 설치할 일이지 이 엄동에 너무 쓸쓸해 보인다. 저 너줄한 공사 흔적이 다 뭐란 말인가. 마을에는 문닫힌 노사모 사무국이 있었다. 다 지나간 흔적들이다. 그 목소리들, 다 어디서 맴돌고 있을까.
- 노대통령이 살던 새 집을 무덤 쪽에서 바라본 것이다. 왼쪽에 보이는 게 경찰 초소이고, 여기서 내방객 확인을 거쳐 사람을 들이는 모양이다. 입구를 바라보며 말을 넣어볼까 말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노대통령이 안계신데..." 하고나니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보였다. 담밖으로 심은 나무들이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그 주인이 그만 떠나버렸으니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동네 주민들이 나와 팔고 있는 봉하오리쌀 등 기념품, 먹을거리가 다 부질없어 보였다. 처제가 봉하오리쌀 한 포대를 기념으로 샀다. 여기서 차 한 잔 이라도 마시려면 시간이 더 흘러야 할 것 같다. 물 한 모금 먹고 올 수가 없었다.
- 다른 데로는 카메라를 대기 싫어 더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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