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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어머니의 설

올해 설에는 우리 형제들이 '어머니 길'을 넘기로 했다. 청양군 운곡 신대리에서 대치면 상갑리로 넘어가는 약 2킬로미터(직선거리 1.8킬로미터)의 가패고개가 바로 우리 어머니의 길이다. 어머니는 이 산고개를 넘어 우리 아버지에게 시집오고, 이후 시집살이가 고될 때면 이 산을 넘어가 친정에 머물곤했다. 아버지하고 싸우는 날이면 으레 큰형을 찾아 냉큼 손을 잡고는 이 산을 넘어가 버려 나머지 형제들은 산고개를 오르는 어머니와 형을 망연자실 올려다보기만 했다. 저녁 무렵 가물가물 사라지는 어머니와 형을 바라다보면 눈물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 '큰지도보기' 누르면 어머니 길이 자세히 나옴

 

사실 어머니는 다섯 살 무렵에 생모를 잃어 친정에 간들 따뜻하게 맞이해줄 '친정엄마'가 없었다. 거기에는 계모인 여주이씨 외할머니와 탐진최씨 영원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가봐야 그리 큰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은 막내딸이라고 하여 외할아버지가 남모르는 정을 준 모양인데, 늘 어머니 손 잡혀 고개를 오르내린 큰형이나 기억할 뿐 나머지 네 형제들은 사정을 잘 모른다.

 

내 경우에도 어머니 손 잡고 외할아버지 집에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외할머니의 냉대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큰형은 산을 혼자 넘나들만한 때부터는 심부름차 자주 다닌 모양이다. 그쪽 마을에 친구들이 있어 놀러다니기도 했단다. 난 그런 친구를 둘만큼 외할아버지 댁에 자주 가지는 않았다.

 

이번 여행은,우리 오형제는 어머니 길을 따라 직접 눈덮인 산을 넘고, 어머니와 손자들은 자동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제 어머니 길을 따라가본다.

 

어머니 길을 가기에 앞서 아버지 무덤에 성묘를 했다.

 - 왕릉 부럽잖은 우리 아버지 묘원. 둥근 산 꼭대기에 쓰다보니 마치 왕릉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산은 밤나무밭이다.

- 아버지 묘 이장 후 처음 성묘간 세 손녀딸들이 할아버지 즐거우시라고 재롱을 피웠다.

 - 성묘간 가족들이 새해 소망을 담아 아버지 앞에서 재주를 부려보았다.

 

먼저 우리집에서 앞산 새앙골로 올라갔다.

 - 숨차게 오르니 운곡저수지가 보인다. 여기 서서 내려다보면 운곡면 일대가 다 보인다. 예전에는 이 길을 따라 대치면 상갑리 사람들이 장을 보러다녔다. 상갑리에서 장터까지 직선으로 3킬로미터다. 덕분에 운곡장 보러 다니던 외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를 알게 되고, 그렇게 하여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고, 우리 오형제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 다니는 사람이 없다보니 길이 없어졌다. 토끼가 뛰어간 자리를 따라 걷다보니 저절로 길을 찾게 되었다.

 - 사형제가 얼굴 내밀고, 네째가 카메라를 잡았다.

 - 산마루에 올라 주변 숲을 찍었다. 눈보라가 산정상에서 아래로 친 모양이다. 나무마다 하얀 눈이 붙어 있다.

 - 사진에 보이는 큰나무 두 그루가 있는 이곳을 우리는 참나무쟁이라고 불렀다. 한 아름이 넘는 이 참나무 두 그루는 어머니 시집갈 때부터 이곳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나 대여섯 살때부터 보아온 것이니 내가 본 것만 벌써 50년이 넘었다. 맨오른쪽이 큰형인데, 지금 자동차로 길을 돌아온 딸과 통화중이다. 할머니가 친정 집터를 찾지 못한단다. 여기던가 저기던가 벌써 상갑리 일대를 몇 번이나 돌았단다. 이 길을 다람쥐처럼 다니던 큰형이 길을 알려주고 있다.

 - 마침내 우리가 먼저 외할아버지 댁 옛터에 이르렀다. 뒤에 보이는 대나무숲이 집터다. 지금은 우물 밖에 남아 있지 않다.

 - 어머니 친정 집터에서 내려다본 저기 저 빨간색 지붕을 한 집이 어머니가 태어난 생가다. 거기서 지금 집터로 이사와 살다가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이날 아침 손녀딸 명원이를 바라보면서 "내가 저만할 때 어머니를 잃었는데....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회한에 젖으셨다.

- 어머니가 비교하는 우리 명원이. 이만할 때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잃었다. 그런데 벌써 여든한 살이나 되어 꼬부라졌다면서 혀를 찬다. 

- 겨우겨우 친정집 터를 찾아 손녀들 손잡고 올라오는 우리 어머니. 

 - 어머니가 옛집 터에서 손녀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모두 함께 외할아버지댁 마당터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차 한 대로는 돌아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눈 푹푹 빠지는 그 험한 산을 다시 넘어가기는 싫어서 차 한 대를 더 불렀다. 그래서 둘째 형수와 조카 선재가 뒤이어 달려왔다.

외할아버지 집터를 둘러본 뒤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의 부모 즉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묘소로 성묘를 가기로 했다. 묘소는 이 집터에서 약 2킬로미터 남쪽 산기슭에 있다. 

 눈길이라 내가 어머니를 업고 손녀들이 호위한다.

 - 탐진최씨 묘원에 함평이씨들이 몰려들었다.

 - 어머니가 잔을 바치고 있다. 이 묘에는 어머니의 아버지, 어머니, 계모 세 분이 합장되어 있다. 친어머니 얼굴이 생각나느냐고 물으니 어머니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난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도 생각이 나는데...

 - 작년 어머니 팔순 때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성함을 혼동했었다. 이 묘비를 보고 뒤늦게 고쳤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최영원, 친외할머니는 신평이씨, 새외할머니는 여주이씨다.

- 어머니가 안계시다면 우리가 이 묘원에 올 일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저 손녀들이 왜 다시 오겠는가. 오늘은 오직 할머니를 위해 손자손녀들이 재롱부린 것이다. 이 중 탐진최씨는 어머니 뿐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손자 선재가 할머니를 등에 업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는 80년 세월을 더듬어 옛집을 둘러보고, 모처럼 부모님에게 성묘를 했다. 이런 그림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발걸음이 마지막이 아니길 소원한다. <사진촬영/네째 이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