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리키, 일주일이 되다

강아지를 입양할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그게 혈통견이건 믹스견이건 상관없이 어떻게 좀 붙어서 살아보려고 애쓰는 걸 보면 참 안쓰럽다. 주인에게 애교를 떨어야만 살아남는다는 걸 진화를 통해 체득해서 그렇다고 진화론자들인 태연히 말하지만, 그래도 보기에는 안됐다.

 

리키를 입양해오던 그날도 조수석에 담요놓고 앉혀놓았는데, 그새를 못참고 낑낑거려 기어이 한 손으로 안고,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왔다. 저하고 나하고 아는 사이도 아닌데, 친근하게 굴기로는 10년지기나 다름없다.

 

집에 와서도 착착 안기면서 어떻게든 늘어붙는다. 살려고 애쓰는 짓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물론 도도한 아이들이 가끔 있는데, 적어도 내가 길러본 요키들은 애교를 수단으로 살아남는 아이들인 것같다.

 

리키는 입양 일주일만에 중성화수술 흔적인 실밥을 제거했다.

새 가족을 맞은 주치의는 싱글벙글했다. 우리 집에 개 한 마리가 늘면 이 병원 수입이 는다.

원장은 자청해서 귀검사, 변검사를 실시했다. 기생충이나 귓병이 없었다.

그러고서 구충제 먹이고, 심장사상충 약을 먹였다. 아파트에 살고는 있지만 밖에 자주 나가므로 언제 모기에 물릴지 몰라 주의를 해야 한다. 심장사상충 걸려도 대개 치료는 되는데, 그때 심장에 무리가 생겨 나중에 심장질환으로 발전하지 않나 하는 의심이 있다. 심장판막증으로 죽은 아아 둘이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치료를 받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골에 살다보면 예방약 먹이는 걸 한두 달만 게을리해도 금세 걸린다. 그래서 예방에 더 조심하고 있다.

예방주사는 12개월령에 맞춰 1년 1회씩 놓기로 했다.

 

하지만 우려하던 슬개골에 대해 중성화수술을 집도한 수의사나 우리집 애견 주치의가 한결같이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를 다 만져보더니 그렇게 말한다. 한쪽이 35만원이라니 양발은 70만원이다. 게다가 용의주도하게 하려면 분당 해마루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거기 가면 일단 100만원은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적응이 끝나면 수술을 고려해야겠다.

 

대소변 가리는 건, 우리집에는 라이벌이 없다보니 사흘만에 정리가 되었다. 화장실에 일 잘 본다. 처음에는 마킹하느라고 여기저기 싸댔는데, 결국 마킹이 다 끝나고 라이벌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정상배설은 화장실로 최종 정리되었다.

 

중성화수술한 인덕원사거리 병원 기록에는 리키 몸무게가 1.7킬로그램으로 나왔는데, 어제 병원에서 재보니 1.9킬로그램이다. 일주일만에 100그램 이상 불어난 셈이다.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주는 사료로는 참지 못하여 한밤중에도 침실문을 긁어대고, 새벽에도 배고프다고 울부짖는다. 참지 못하면 화분에 있는 황토알까지 집어먹는다. 하는 수없이 10세짜리 바니와 같은 양의 사료를 주고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난리다. 어제는 내가 잠 설치고, 그제는 집사람이 설쳤다. 먹이에 대한 집착이 너무 집요하다.

 

리키는 사람하고 같이 잔 적은 없는 것같다. 침대에 올려놓아도 어떻게 자는 건지 잘 모르는 듯하다. 같이 자자고 떼를 쓰지 않아서 없어서 참 좋다. 배만 부르면 저 혼자 넉넉히 잠을 잘 잔다. 오래도록 혼자서 자온 듯하다.

 

리키가 온 후 이름 문제로 한동안 고민했다. 마이크로 칩 등록 때 '도조 주니어'로 정했는데 몇 번 불러보니 도조의 환생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죽은 도조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키가 도조가 되면 진짜 도조는 내 가슴 속에서 영원히 지워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개명하려고 벼라별 이름을 다 지어보았다.

 

처음에는 갈매기처럼 끼룩끼룩 하는 소리가 특이하여 조나단이라고 불러보았는데, 발음이 어려워 그만두기로 했다. 강아지 이름은 조카들이 쉽게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여덟살, 여섯살인 조카들이 조나단이라고 발음해내기가 쉬울 것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끼룩이도 생각해 보았는데 너무 천한 듯하여 포기했다. 아랫턱이 짧아 혓바닥이 늘 조금씩 나와 있는데, 그걸 특징지어 '혓바닥'이라고 불러보았는데 역시 발음이 어려워 포기했다. 영어, 일어 등으로 혓바닥을 불러보아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사료 먹을 때 자꾸 흘릴 정도로 아랫턱이 짧은데, 그런 장애를 굳이 부각시킬 필요도 없다고 하여 그만두었다.

 

결국 '도조 주니어 리키'라는 원안대로 가고 부르는 이름은 '도조'에서 '리키'로 바꿨다. 지금도 좋은 이름 없나 찾는 중이지만 이렇게 정리될 듯하다. 애견 이름은 일주일 정도 부르면 대개 그대로 굳어지는 법이다.

 

하늘 간 도조 역시 유기견이었는데 입양 후 사흘간은 참 얌전한 아인 줄 알았다. 그러다 나흘째던가, 꽝꽝 처음으로 짖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깜짝 놀랐는데, 리키는 입양 다음날 점심 무렵, 아파트 마당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꽝꽝 짖어댔다. 그만큼 적응이 빠른 것같다.

 

리키는 지금도 어디로 떠나야만 하지 않나 두려워하는 것같다.

밖에 볼 일이 있어 나가려고 옷을 갈아입으면 거의 미친 듯이 긴장한다.

어제 병원에서도 바들바들 떨었다. 병원을 벌써 싫어한다. 하긴 40킬로그램쯤으로 보이는 골든 리트리버 한 놈은 차에서 버티고 안내리는 걸 보았는데, 리키는 몸이 작아 버티질 못한 것뿐이다.

 

리키가 완전한 가족이 되려면, 제 가족이 저를 버리지 않는다는 걸 확신해야 하는데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걸리리라고 본다.

십수년 전에  아이들 여덟 마리를 기르다가 처음 이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날 아침 아기 적에 입양된 아이들은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쳐 짐을 끌어내건말건 아무 걱정도 안하는데 유기견 출신들은 굉장히 불안해서 멀리 나가지 못하고 자동차 주변에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걸 보았다. 혹시나  저희들을 버리고 가지 않나 하여 걱정스러운지 내 차 옆에 딱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다른 놈들은 동네로 뛰쳐나가 어찌나 쏘다니는지 잡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녀석들은 우리가 저희들을 버리리라는 상상조차 안하기 때문에 마음놓고 돌아다닌 것이다. 그날, 불안해하는 유기견들을 먼저 차에 태워줬더니 다들 안심하는 걸 보았다. 그래서 그뒤로 이사를 하거나 멀리 여행할 때면 유기견들을 먼저 차에 태우곤 한다.

 

어제도 이마트에 가는데 바니는 집에 두고 리키만 데려갔다. 바니도 유기견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5년여 함께 살면서 주인이 저를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진 아이라 불안감을 좀 덜 갖는 편이다. 아마도 앞으로 서너 달은 어딜 가든 리키를 데리고 다녀야만 할 것이다. 사람이나 개나 적응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예쁜 리키 보시면서 유기견 입양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깨닫는 분들이 많이 계시길 기원합니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엔돌핀이 쭉쭉 솟아난답니다. 혹시 이 글 읽고 유기견 입양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리키의 고향으로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