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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리키가 왕이다

개를 기르다보면 서열 전쟁으로 늘 시끄럽다.

우리집에는 수많은 서열 전쟁이 있었다.

말티즈 도담이가 세 살 때 잉글리쉬코커스파니엘 도롱이를 입양했는데, 도롱이는 도담이의 장남감이었다. 하지만 1년 뒤 원래 덩치가 말티즈보다 큰 코커스파니엘 도롱이가 드디어 도담이를 밟고 일어섰다. 우열이 가려지기 전까지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코 깨물리고, 등짝 물리고, 늘 빨간약과 항생제를 들고 다녀야 했다.

우리 도담이는 분한 나머지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미처 해결도 못하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 입양 2개월쯤 되는 코커 스파니엘 도롱이다. 도담이 앞에서는 감히 서있는 것조차 황송할 지경이었다.

- 성견이 된 도롱이가 조수석에 앉아서 운전석 아빠 자리를 차지하고 가는 형 도담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 사진에서는 도롱이가 도담이를 제치고 앞서 달려간다.

- 늠름한 도롱이 자태다.

 

 

그러자마자 도담이 새끼 한 마리를 데려왔는데, 이 아이 희동이는 도담이가 아빠지만 엄마는 시골의 믹스견이었다. 희동이는 오자마자 도롱이의 장남감이 되었다. 도롱이가 보는 데서는 먹을 것도 주지 못하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지 못했다.  

 

그런데 희동이는 이상한 핏줄을 타고나서 날이갈수록 몸집이 커지더니 나중에 보니 대형 삽살개로 자라났다. 믹스견 엄마한테 숨어 있던 유전인자가 돌출된 것이다. 그러니 한동안 잠잠하던 집안이 또 난리가 났다. 연일 전투였다. 이 전투는 꽤 오래갔다. 도롱이가 늙어 힘을 못쓸 때가 돼서야 끝이 났다.

  - 삽살이를 닮은 말티즈 믹스견 희동이.

 

2주전 1.7킬로그램의 요크셔테리어 유기견 리키가 우리집에 왔다. 4.7킬로그램의 말티즈 바니가 당연히 경계할 일이다. 바니는 리키를 확실히 잡아놓았다. 게다가 바니는 암컷, 리키는 수컷이다보니 치열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몸집 차이가 크고, 앞으로도 역전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또 전쟁이 난다. 물론 사내놈들처럼 치열하지는 않다.

우리 바니는 하반신을 잘 못쓰는 장애견이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거실 카펫 위에서 놀게 해주는데, 절룩거리며 걷는 걸 지켜보던 리키가 그만 용기를 냈다. 바니 주변을 돌면서 살살 약을 올리는 것이다.  바니가 벌컥 화를 내도 폴짝 뛰어버리면 사정권에서 벗어나고, 더 화를 내도 저를 따라오질 못한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리키는 바니 꼬리를 냅다 물거나 앞발로 아무 데고 친다. 그러면 '무는 개' 바니가 어응하고 몸을 돌리면 그제야 보란듯이 폴짝 뛰면서 사정권을 벗어나 다음 기회를 노린다. 고양이가 쥐를 놀리는 것같다.

둘이 노는 걸 보니 재밌기도 하고 바니가 불쌍하기도 하다.

리키는 입양 2주만에 우리집을 완전정복했다.

바니 누나는 리키의 속도에 지고, 아빠는 리키의 애교에 넘어간다.

리키가 왕이다. 

 - 이 사진만 봐가지고는 쥐만한 리키가 고양이만한 바니를 갖고 논다는 게 짐작이나 될까. 리키가 바니를 놀리는 동영상은 도저히 촬영불가다. 리키가 너무 재빠르기 때문에 포착이 쉽지 않다.

 

<이렇게 예쁜 리키 보시면서 유기견 입양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깨닫는 분들이 많이 계시길 기원합니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엔돌핀이 쭉쭉 솟아난답니다. 혹시 이 글 읽고 유기견 입양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리키의 고향으로 안내합니다.>